한국 가계와 기업, 정부 부채의 총량과 증가 속도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올해 1분기 말 기준 가계와 기업의 대출금 등 민간 신용액은 국내총생산(GDP)의 두 배 정도로, 경제성장을 제약하는 임계치를 넘어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래 처음으로 국가 부채가 GDP를 초과했다. 중국은 기업 부채가 GDP의 1.6배에 달한다. 저성장과 금융위기 재발을 막기 위해 세계 각국이 부채와 버거운 싸움을 하고 있다.
사업을 하려면 설비와 시설 등에 상당한 자금이 소요된다. 자기자본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이때 타인 자본인 부채의 이자보다 자본운용에서 발생하는 이익이 크다면 부채를 활용하는 게 효율적이다. 이러한 부채의 레버리지(지렛대) 효과는 기업이 성장할 때는 좋다. 그러나 경영 상황이 악화하면 과도한 레버리지는 이자 비용과 원금 상환 부담으로 기업 생존을 위협하는 무기로 돌변할 수 있다. 부채는 기업을 성장시키지만 생존에 위협을 가할 수도 있는 양면의 칼이다.
급격한 인구 감소, 4차 산업혁명 등으로 국내외 경영 환경이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기업은 경영 위험을 줄이기 위해 레버리지 비율을 낮추는 추세다. 부채 축소(deleveraging)는 기업의 이자 부담을 줄여 재무 건전성과 안정성을 가져온다는 측면에서 환영할 만하다. 그런데 최근 주요 기업은 부채 비율이 높지 않고 상당한 잉여 현금을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설비나 연구개발(R&D) 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다. 경영 환경 변화에 대한 대응이나 전략 수립이 쉽지 않아 섣불리 나서지 못한 채 관망하고 있는 것이다.
기업의 안정성은 부채비율(부채/자본)로 가늠할 수 있다. 한국은행에 의하면 2015년 말 대기업의 부채비율은 107%인 데 비해 중소기업은 182%로 높다. 중소기업이 레버리지 효과를 기대한 것이라기보다 재무 구조 자체가 상대적으로 열악한 탓이다. 그러다 보니 중소기업이 대기업보다 높은 금리를 적용받고 있다. 이런 상황은 대·중소기업 간 수익성과 안정성 격차를 더 벌린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더 기울게 한다.
정부는 가계 부채를 줄이기 위해 대출 한도 축소, 금융 취약계층 보호 등의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과중한 가계 부채는 이자 부담 등으로 가처분소득을 줄여 소비를 축소하고 경제성장의 발목을 잡는다. 아직은 기업 부채가 가계 부채보다 덜 심각하다. 그러나 소비자가 줄고 금리가 오르면 기업의 매출 감소와 수익성 악화로 힘들어진다. 개인 부채뿐 아니라 중소기업의 부채와 금리 부담을 완화하기 위한 대책도 동시에 필요하다.
이기화 < 다산회계법인 대표 pcgrd21c@gmail.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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