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황 보니 청탁' '친하니까 공모'…법조계, 유죄 판결 논리에 '갸우뚱'

입력 2017-08-27 19:32   수정 2017-08-28 05:35

이재용 1심 선고 이후

이재용 1심에 '없던 법리' 적용…논란 확산
법원, 박근혜·최순실 오랜 지인 '한 몸'…구체 근거 없이 공모관계 판단
박근혜·이재용 독대내용 등 자의적 추론…생각과 정황만으로 유죄 판결



[ 고윤상 기자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5개 혐의를 전부 유죄로 판단한 1심 결과를 두고 법조계를 중심으로 논란이 들끓고 있다. 특히 핵심인 뇌물죄에 대해 명확한 사실이나 공감할 만한 근거가 제시되지 않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특검 기소장에 이어 판결문에서도 ‘추론’을 앞세우고 있고, 간접 증거의 증거 능력을 직접 증거에 버금가게 적용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한 판사 출신 변호사는 “1심이 중요 쟁점을 명확하게 판단하지 않고 뭉뚱그리는 바람에 2심에서 사실관계와 이에 따른 법리 적용을 두고 더 치열한 다툼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공모·묵시적 청탁 근거 제시 안해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27부(부장판사 김진동)는 지난 25일 삼성이 최순실 씨의 딸 정유라 씨를 포함한 승마지원단에 지원한 73억원과 최씨 조카 장시호 씨가 운영한 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지원한 16억원을 뇌물이라 판단했다.

재판부는 판결의 대전제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씨가 범죄를 ‘공모’했다고 적시하고 있다. 공동정범이기 때문에 최씨에 대한 지원이 곧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지원과 다를 바 없다는 논리다. 문제는 공모의 존재 여부에 대해 객관적으로 납득할 만한 사실과 정황을 제시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공모와 관련해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은 최씨와 오래전부터 개인적인 친분관계를 맺어 왔고 대통령 취임 이후에는 국정 운영에 있어서도 최씨의 관여를 수긍하고 그의 의견을 반영하는 관계에 있었다”고 적시하고 있다.

이런 설명에 대해 법조계에서는 ‘친구니까 공범’이라는 식의 논리 비약이라는 지적이 만만찮다. 한 판사 출신 변호사는 “재판부의 판결 논리를 구성하는 가장 핵심 근간은 공모관계인데 이에 대한 입증이 부실한 편”이라며 “양측 당사자가 모두 부인하고 있고 공모에 대한 직접 증거가 없을 때는 피고인에게 유리한 쪽으로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재판부가 이 부회장에 대한 뇌물공여죄를 유죄로 판단하면서 제시한 ‘간접적·묵시적인 부정한 청탁’도 논란이다. 법조계에서는 묵시적인 청탁이라 할지라도 양측이 서로의 요구를 알고 있었다는 증거가 제시됐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중견급 형사 전문 변호사는 “묵시적 청탁이라 하는데 구체적인 근거가 전혀 제시되지 않았다”며 “법관의 주관적 판단에 따라 다르게 볼 수 있는 부분이라 2심에서 치열하게 다툴 여지가 크다”고 설명했다.

“독대 내용과 피고 생각을 추론”

피고인의 생각을 근거 없이 추론하거나 알려지지 않은 독대 내용을 정황 증거만으로 명확한 사실인 것처럼 적시한 부분도 도마에 올랐다. 판결문은 “이 부회장도 정유라를 알고 있던 것으로 보인다”며 “(정씨 지원이) 곧 대통령에 대한 금품 공여와 같다는 사실 알고 있었다고 할 것”이라고 생각을 추론했다.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의 3차 독대(2016년 2월15일) 내용도 추론으로 구성했다. 재판부는 “안종범 수첩 내용에 따라 영재센터 지원에 대한 언급이 나왔다고 볼 여지가 크고, 피고인 측 관련자들의 진술 신빙성이 높지 않다”고 밝혔다. 법조계에서는 간접 증거인 안종범 수첩의 증거능력이 맥락에 따라 달라진다고 지적했다. 재판부가 앞에서는 뇌물공여죄에 대한 명시적 청탁은 없었다는 근거로 수첩을 언급하고 뒤에 가서는 독대 내용의 추론 근거로 활용해서다.

미르·K스포츠재단에 지원한 것은 문제가 없다고 하고 승마·영재센터 지원건은 뇌물이라고 하는 것도 이중 잣대라는 비판이 만만찮다. 삼성이 재단 지원을 할 때는 강압에 의한 피해자로 인정받았다가 뒤에서는 ‘승계작업’을 위한 적극적 뇌물공여자로 탈바꿈하기 때문이다.

고윤상 기자 ky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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