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음유시인

입력 2017-08-28 18:26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파리 센강에 있는 작은 섬의 목조주택 5층. 노트르담 성당이 마주보이는 그 집에서 ‘노래하는 시인’ 조르주 무스타키를 처음 만났다. 낡은 청바지와 스웨터 차림으로 등받이 없는 의자에 앉아 조곤조곤 얘기하는 은발의 음유시인(吟遊詩人). 부드럽게 물결치는 흰 수염 사이로 홍조 띤 얼굴이 소년처럼 맑았다.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였지만 목소리도 싱그럽고 감미로웠다. 영혼의 현을 건드리는 특유의 음색이 깊은 우물에서 나오는 울림 같았다.

1980~1990년대 네 차례 내한공연의 추억을 얘기하며 그는 “한국인의 열광적인 반응을 평생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센강을 내려다보면서 “다시 한번 한국에 가고 싶다”던 그의 바람은 건강 때문에 끝내 이뤄지지 못했다. 그로부터 12년이 흐른 2013년 그의 부고를 들었다. 그때의 안타까운 마음을 담아 “심야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샹송 ‘나의 고독’과 더불어 그는 영원히 외롭지 않을 것”이라고 쓴 기억이 난다. ‘난 결코 외롭지 않네, 고독과 함께라면…’이라는 가사를 떠올리며.

음유시인이라면 이렇듯 샹송부터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고대부터 중세까지 하프를 타며 시를 노래한 가객은 많이 있었다. 그러다 샹송이라는 이름으로 발전하기 시작한 것은 11~13세기라고 한다. 시와 노래가 어우러진 샹송의 특성도 이때 갖추게 됐다. 17세기 초 센강에 퐁 뇌프 다리가 생기자 이곳으로 가수들이 몰려들어 샹송의 명소가 되기도 했다.

이후 ‘샹송의 여왕’ 에디트 피아프를 비롯해 자크 프레베르의 시에 곡을 붙인 ‘고엽’의 주인공 이브 몽탕, 시를 직접 쓰고 번역한 ‘고독의 음유시인’ 조르주 무스타키, 철학적인 가사로 유명한 레오 페레 등 거장들이 잇달아 등장했다. 요즘은 부드럽게 읊조리는 듯한 음조와 잔잔한 미성으로 노래하는 가수들을 음유시인이라고 통칭한다. 밥 딜런은 시적인 가사로 지난해 노벨문학상까지 받았다.

우리나라에서는 조동진 최백호 정태춘 김현성 김광석 등이 대표적인 음유시인으로 꼽힌다. 그중 맏형 격인 조동진이 어제 세상을 떴다. 향년 70세, 데뷔 50주년에 ‘작은 배’를 타고 하늘로 갔다.

서정적인 노랫말과 중저음의 나직한 음역대로 커다란 울림을 줬던 우리 시대의 음유시인. 지난해 20년 만에 새 앨범 ‘나무가 되어’를 내면서 “그렇게 빨리, 그렇게 많은 시간이 지났을 줄 몰랐어. 기타를 집어넣는 데 10년, 다시 꺼내는 데 10년 걸린 셈이네”라며 멋쩍어하던 그였다. 암 투병 중에도 소속사 후배들과 내달 레이블 공연 ‘꿈의 작업 2017 우리 같이 있을 동안에’를 준비하던 중 이렇게 황급히 떠나다니! 미처 못다한 노래는 하늘에서 부를까. 그곳에선 ‘나뭇잎 사이로 여린 별 하나’와 ‘그 별빛 아래로 너의 작은 꿈’도 보일까.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관련뉴스

    top
    • 마이핀
    • 와우캐시
    • 고객센터
    • 페이스 북
    • 유튜브
    • 카카오페이지

    마이핀

    와우캐시

    와우넷에서 실제 현금과
    동일하게 사용되는 사이버머니
    캐시충전
    서비스 상품
    월정액 서비스
    GOLD 한국경제 TV 실시간 방송
    GOLD PLUS 골드서비스 + VOD 주식강좌
    파트너 방송 파트너방송 + 녹화방송 + 회원전용게시판
    +SMS증권정보 + 골드플러스 서비스

    고객센터

    강연회·행사 더보기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이벤트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공지사항 더보기

    open
    핀(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