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청와대 업무분장에서 노사관계는 일자리수석 몫이다. ‘일자리 정부’를 자임한다는 측면에서는 자연스럽지만 경찰, 검찰이 바빴던 과거 ‘공안’ 개념으로 보면 달리 보일 수도 있다. 노무현 정부 초기에도 민정수석이 주로 맡았다. 정권 출발 석 달 만에 화물연대 파업, 넉 달 만에 철도 파업이 벌어졌던 때였다. 당시 정부 대응 중심에 ‘문재인 민정수석’이 있었다. 그때는 노사 문제가 ‘노동변호사’ 출신 대통령과 민정수석의 큰 고민거리였다고 한다.
‘노정(勞政)관계를 어떻게 가져갈 것인가’는 우리 정치권의 최대 딜레마 중 하나다. 거대 공기업이 즐비한 서울시장 선거에 나서는 진영도 같은 계산을 하게 된다. 그만큼 한국 노조는 강력하다. 견제도 어렵다. 경제영역을 넘어 국회, 법원에까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파워그룹이다. 노조를 보는 시각이 ‘적폐 그 자체’이거나 ‘합작 상대’일 정도로 극단적인 것은 이런 현실 때문이다. 그 중간에 개혁 대상, 긴장관계, 연대 파트너 정도가 상정된다.
노사문제, 민정서 일자리수석이
문재인 정부가 지향하는 노정관계는 어떤 것인가. 고용노동부 장관에 한국노총 산하 전국금융노동조합연맹 상임부위원장 경력자가 임명됐다. 노사정위원장에는 민주노총 설립을 주도한 금속연맹위원장 출신이 기용됐다. 공약과 그간의 노동·고용정책들도 노동계 편향적이다. 민주노총이 ‘적폐, 해산’을 외치며 한국경영자총협회로 몰려갔을 때 경찰이 방관적 태도를 보인 뒤 기업계의 공포감이 계속되고 있다. ‘경총·전경련 패싱’을 우려할 정도다. 최저임금과 법인세 인상, 비정규직 전환 같은 큰 사안에도 재계가 침묵하는 배경일 것이다. ‘노정합작’으로 인식하며 과하게 위축된 기업계에도 문제는 있지만, 그래도 성명서 한 장 못내는 불균형이 유감이다. 한국의 사회적 먹이사슬 구조가 아직은 그렇다.
“상생협력하자고 해서 갔더니 정부와 노조가 협공하며 경영자들을 압박하더라.” 산업자원부 장관 주재 섬유업계 노사간담회에 갔던 인사의 말은 노정연대가 고용부 차원만의 이슈가 아님을 잘 보여준다. 이사회 참석 등을 내세운 국민은행과 일부 증권사 노조의 경영참여 요구도 같은 맥락이다.
‘기울어진 운동장’ ‘노사노(勞使勞) 구도’라는 비판이 계속 이어지면 결과는 어떻게 될까. 기업경영의 자율성이나 사적 자치라는 큰 원리원칙이 하나둘 훼손될까 걱정이다. 기업별 급여수준을 공표하라는 임금분포공시제가 대표적이다. ‘노조 교섭력을 높여주기 위해 필요하다’는 논리지만, 민간의 임금까지 정부 통제하에 두겠다는 발상이 읽힌다. 정당성이 없을뿐더러 순서도 틀렸다. 공개한다면 수당체계가 복잡한 공공 부문에서 먼저 할 게 많다.
노사정위, 정(政)이 된 노(勞)출신에 달려
그래도 기대는 있다. 강 건넌 뒤 뗏목 버리듯 정(政)자리에 선 노(勞) 출신의 대변신이다. 이들이 “완전히 변해버렸다”는 옛 동료의 원성을 많이 들을수록 노·사·정 합의로 나올 성과도 비례해서 많아질 것이다. 독일의 하르츠개혁이 좌파 정부의 성과라는 점은 그래서 더 주목된다. ‘노조는 임금동결, 사측은 근로시간 단축, 정부는 재정지원’으로 실업률 12% 위기를 극복한 바세나르협약 역시 참고할 만하다. 노무현 정부가 연구한 모델이다. 북유럽 복지의 기반인 벨기에 겐트시스템 같은 합의도 있다.
일차 관건은 김영주 고용부 장관과 문성현 노사정위원장 역할이다. 노·사·정이 머리를 맞대기 전에 주문하고 싶은 게 있다. “알아! 다 안다니까!”라며 재계와 비판자 말을 막지는 말라는 것이다. 침묵이 길어지는 경총이나 전경련에 의사 표시를 진지하게 권해 보면 어떨까. 정부는 노조 편도, 사용자 편도 아니어야 한다.
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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