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세액공제 전환 후 1000만~4000만 소득구간 면세↑
복지재원 마련에 소득세 역할 중요… 각종 공제제도 조정해야
전병목 <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조세연구본부장 >
근로소득세 면세자 축소와 조세정의
소득은 있지만 소득세를 내지 않는 면세자 비율이 높아지고 있는 데 대한 논란이 뜨겁다. 이종구 바른정당 의원은 연소득 2000만원 이상 근로자들이 세액공제를 받은 뒤에도 최소 월 1만원, 연 12만원의 근로소득세를 내도록 하는 ‘면세자 축소법’을 지난 22일 발의했다. 근로소득세 면세자 비율은 2013년 32.2%에서 2014년 47.9%, 2015년 46.5% 수준으로 크게 높아졌다. 2014년부터 근로소득에 대한 특별공제제도가 소득공제에서 세액공제로 전환됐기 때문이다. 소득공제 방식은 의료비, 교육비, 기부금 등의 특정지출액을 소득세액으로 계산하기 위한 기준소득, 즉 과세표준에서 빼는 방식이다.
이 방식은 동일한 특정지출액에도 불구하고 소득자의 소득수준에 따라 세액감소액이 달라진다는 특징이 있다. 즉 한계세율(초과수익에 대해 세금으로 내야 할 비율)이 6%인 저소득자는 지출액의 6%만큼 세액이 감소하지만 한계세율이 38%인 고소득자는 지출액의 38%만큼 세액이 감소한다.
반면 세액공제 방식은 소득수준에 관계없이 특정지출액의 일정 비율(약 12~15%)만큼 세액을 줄여주는 방법이다. 이에 따라 2014년부터 시행된 세액공제 방식은 저소득자의 세액감소액을 높여주고 고소득자의 세액감소액을 줄여주는 효과를 나타냈다. 기존 6% 세율이 적용되던 과세표준 1200만원 이하(개인 소득기준 2200만원 내외) 소득자의 경우 세액공제 전환으로 세액공제액이 기존 6%에서 12~15%로 늘어남에 따라 세부담이 더 줄어들었다. 결국 저소득구간에서 늘어나는 세액공제로 인해 세부담이 없는 면세자 비율이 높아진 것이다.
이는 소득구간별 면세자 비율 변화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 주로 연소득 1000만~4000만원 소득구간에서 면세자 비율이 크게 늘어났다. 형평성 차원에서 특정 지출에 대한 혜택의 크기가 소득수준에 관계없이 일정해지도록 했지만 그 대가로 면세자 비율이 대폭적으로 높아졌다.
소득세 면세자 비율에 대한 평가는 그 절대적 수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원칙에 기반한 소득세의 존재이유를 침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소득세 면세자 비율이 지나치게 높으면 소득세의 존재이유를 훼손하게 되고 과세기반이 축소돼 제도의 안정성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런 관점에서 현재 46.5% 수준의 근로소득세 면세자 비율은 우려할 만한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영국 면세자 비율은 3.2%
또 전체 근로소득자의 절반 가까이가 소득세를 내지 않는다는 것은 국민의 납세의무를 규정한 헌법정신에 위배될 수 있다. 헌법상 국민의 납세의무는 의사결정의 합리성과 함께 국가 구성원의 통합을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국민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는 사회적 의사결정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의사결정에 따른 부담도 함께 나누는 것이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소득세는 누진적 세율구조로 재원조달기능과 함께 소득재분배기능도 수행하는 핵심 세목이어서 합리적 의사결정 구조를 뒷받침할 수 있어야 한다. 외국도 소득세는 가장 세입 수준이 높은 세목 중 하나로 면세자 비율이 한국보다 10%포인트 이상 낮다. 2014년 기준 근로소득세 면세자 비율은 미국 32.5%, 일본 15.4%, 영국 3.2% 등으로 한국의 46.5%(2015년)에 비해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특히 한국과 비슷한 근로소득세 과세구조를 가진 일본 수준을 약 세 배나 초과하는 것은 앞으로 소득세를 통한 세원 확보 및 재분배기능 강화에 제약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소득재분배 없이 과세기반만 축소
면세자 비율 논의에서 고려해야 할 또 다른 관점은 소득수준을 감안한 수직적 형평성과 소득재분배기능의 관계다. 면세자 비율이 크게 높아진 것은 수직적 형평성을 강화하기 위해 중하위 소득층을 대상으로 다양한 세액공제제도를 확대·적용했기 때문이다. 또 수직적 형평성의 강화는 소득세의 재분배기능 강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도 하고 있다. 그러나 수직적 형평성 강화에 집중한 나머지 소득재분배 효과를 결정하는 또 다른 요인인 평균 세부담에 대한 고려는 미흡했다. 아무리 누진도가 높은 세부담 구조라 할지라도 실제 세부담 수준이 낮으면 소득세로 인해 변화하는 소득 규모가 작아 재분배효과 역시 작아진다. 따라서 면세자 비율을 늘리는 방식의 누진성 강화는 그렇지 않은 방식보다 세부담 증가를 제한해 궁극적인 소득재분배 효과는 낮아진다. 이런 방식은 과세기반을 축소해 소득세에 대한 조세저항을 높일 수 있고 소득세 부담 관련 정책을 왜곡시킬 수 있다.
따라서 현재 절반에 육박하는 근로소득세 면세자 비율은 줄일 필요가 있다. 저출산·고령화, 복지 기대 증가 등으로 늘어날 복지지출을 조달하기 위해서는 가장 대중적인 재원 중 하나인 소득세의 역할 증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2015년 기준 한국 개인소득세 수입 규모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4.4%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8.6%보다 상당히 낮다. 이들 선진국과 비슷한 복지수준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향후 부담 증가가 필수적이다. 그러나 절반에 가까운 면세자 비율을 유지하면서 이런 부담 증가를 이루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러면 어느 수준으로, 어떻게 면세자 비율을 축소해야 할까. 먼저 면세자 비율의 축소 목표는 소득 분포를 감안해 결정해야 한다. 만약 면세점 이하의 낮은 소득 근로자로 인해 면세자 비율이 높다면 이는 조세정책의 문제라기보다 노동시장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이 경우 면세자 비율 축소는 노동시장 개선을 통해 이뤄져야 한다.
한국은 근로소득세 면세점이 1500만~1700만원(1~2인 가구) 수준이고 2015년 기준 근로소득 1500만원 이하 소득자는 534만 명(근로소득자의 30.9%)으로 전체 면세자 806만 명의 66% 수준이다. 이들의 경우 인위적인 면세자 비율 축소 정책보다는 소득 증대를 통해 과세자가 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에 따라 면세자 비율에 대한 정책 목표는 면세점 이하 계층을 포함한 30% 이상 수준으로 설정할 수 있다.
과도한 공제제도 손봐야
면세자 비율 축소 방안은 소득세 구조 개선과 함께 모색돼야 한다. 사실 면세자 비율은 소득세를 내는 사람과 내지 않는 사람으로만 구분한 매우 단순한 지표다. 그래서 이 지표만을 정책 목적으로 삼는 것은 소득수준별 부담구조에 생각하지 못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많은 전문가들이 지적한 근로소득공제 등 과도한 일괄공제의 조정 등을 통해 면세자 비율 축소를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각종 공제제도를 고정해 소득 증가에 따라 자연스럽게 면세자 비율이 축소되도록 기다릴 수도 있지만 이는 상당한 시일이 걸린다는 단점이 있다. 적극적인 재원확보 노력이 필요한 시기에는 조세저항의 빌미가 될 수도 있다.
소득세는 능력에 따른 세부담을 실현하는 중요한 세목이다. 앞으로 복지재원 조달을 위해 상당한 역할 증가가 필요하고 이미 최고세율 인상 등으로 구체화되고 있다. 이런 방향으로의 변화에 많은 납세자가 동의하고 기꺼이 참여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면세자 비율을 축소해야 한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고 먼 길을 가기 위해서는 함께 가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전병목 <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조세연구본부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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