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께 한국거래소에 '(주)레온'의 이름을 올릴 겁니다. 전문 경영인(CEO)을 모실 것이고, 저는 연구개발(R&D) 부서에서 최고 연봉자로 일 할 생각이에요. 제가 만든 모든 것이 세상에 처음으로 나오는 제품일 테니까요."
박동순 대표(56·사진)는 기자와 이야기를 나눈 두 시간 내내 자세를 고쳐 앉지 않았다. 20여년 간 연성인쇄회로기판(FPCB)만 붙들고 살아온 세월이 고스란히 몸에 밴 것 같았다.
'80 학번'을 달고 토목과에 입학한 그는 대학생활보다 노래를 부른 시간이 더 많았다. 통기타를 어깨에 메고 명동, 이태원, 이대역 업소를 오가며 노래했다. 수입도 좋았다. 졸업하자마자 번 돈으로 낙원상가쪽에 4평짜리 무역회사 사무실을 차렸다. 그 이후로 30년간 스스로에게 화두를 던지며 창업과 개발을 반복하는 중이다.
▶ 이력이 남다르다.
"직장생활을 하지 않고 창업했다. 1987년에 졸업했는데 토목과가 서류 낼 곳이 없었다.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 지역의 건설붐이 꺼진 시기다. 그래서 20대 후반에 창업했다. 통기타 치면서 업소에서 노래해 번 돈으로 담배를 수입했다. 틈틈이 재료공학도 공부(서울과기대 재료공학 석사)했는데 1996년부터 4년간 연구해 반도체 웨이퍼에 뿌리는 감광액(LPR)을 국내 최초로 개발했다. 이듬해 직원 한 명을 데리고 엠시텍이란 FPCB 생산 업체를 세웠다. 상장 직전에 '가짜 어음' 사기를 당했고 2006년 8월, 최종 부도처리됐다. 레온이 세 번째 창업이다."
▶ 파산 이후 재기하기까지 쉽지 않았을 텐데.
"악몽의 세월이었다. 살던 집까지 팔았다. 엠씨텍의 관리인 자격으로 2년 이상 파산 업무를 보았다. 300여명에 달했던 직원들 퇴직금에 밀린 월급까지 챙기고 세금까지 다 냈다. 회사 정리하느라 꼬박 6년이 걸렸다. 숨어 다니지 않아서 재기할 수 있었다. 내부에서 명판도장을 파 준 직원의 법정 증언으로 소송에서 이겼고 '가짜 어음'으로 사기 친 사람은 실형(징역 12년)을 살고 있다. 횡령·배임 없이 '양지'에서 경영한 덕에 면책받고 (주)레온 대표에 이름을 올릴 수 있었다."
엠씨텍은 2006년 당시 대우증권(현 미래에셋대우)이 상장 주관사를 맡아 상장을 준비하고 있었다. 반도체 기술에서 사용하던 '미세 패턴(fine pattern)'을 회로기판에 적용, 원천기술을 바탕으로 일본 소프트뱅크 아시아인프라스트럭처펀드(SAIF) 등으로부터 100만 달러 가까이 투자유치에 성공하기도 했다. 엠씨텍의 기업가치는 1780억원에 달했었다.
▶ 제2의 인생이 시작됐다. 어떻게 도전했나.
"'유레카(알아냈다)'의 순간을 경험했다. PCB 업계에서만 20년째 일하고 있다. FPCB는 1세대다. 그렇다 보니 개발 의뢰가 이곳저곳에서 많이 들어왔다. PCB는 열에 약하다. 어느 날, 열에 강한 제품을 연구하다가 실수로 액체가 담긴 컵을 엎었다. 그 순간에 불투명한 제품이 투명해졌다. 재료 공법에 대한 특허를 냈다. 지체 없이 반월공단에 땅을 사고 공장을 지었다."
▶ 일본에서 가장 큰 광고회사 덴쓰(電通)와 독점계약을 맺었다.
"애초부터 일본 시장으로 갈 계획이었다. 국내 디스플레이 시장은 워낙 경쟁도 치열하고 저가의 중국 제품으로 설 자리가 거의 없다. 제품의 질보다 가격이 우선이다. 일본은 반대다. 가격보다 퀄리티(질)를 더 따진다. 일본 상사기업과 연락해 기업설명회(IR)를 했다. 그 자리에 덴쓰 직원도 있었다. 덴쓰에서 연락이 왔고 양해각서(MOU)에 서명했다. 작년 11월 기본합의서에 이어 지난 5월에 본계약(5년간 독점)을 맺었다. 판매 단가도 결정됐다. 9월부터 본격 수출(매출)이다."
▶ '투명 플렉서블 LED디스플레이'에 대해 자랑해 달라.
"LED디스플레이는 딱딱하다. 이것을 플렉서블(Flexible) 하게 만들었다. 기존 디스플레이를 곡선으로 배치하려면 평평한 LED를 꺾어서 붙여야 하는데 레온의 제품은 한 번에 원을 그릴 수 있다. '투명하고 가볍고 열에 강하다'는 게 따라올 수 없는 경쟁력이다. 이 디스플레이는 두께가 5cm 미만(최소 1.5cm)으로 시공과 운반 그리고 수리까지 쉽다. 기술자가 아니라도 설치하고 운반할 수 있다. 일본은 지진의 2차 피해를 두려워 한다. 디스플레이가 떨어지거나 넘어져서 사람이 다치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투명 LED는 레온만 만들 수 있다. 필름 자체를 아무도 못 만든다. 세계 최초다. 원천기술에 대한 국내 특허는 15개 정도이며 미국과 일본에서도 특허를 걸고 있다."
레온의 투명 LED디스플레이는 기존 FPCB 공정(16가지 정도)에다 5가지 공정이 더 추가됐다. 하나의 공정조차 외주를 주지 않는 곳이 레온이다. 설계부터 소프트웨어 개발, PCB 제작, 조립에 이르기까지 모든 공정을 '원 스톱 시스템'으로 처리한다.
▶ 국내에서도 이 디스플레이를 볼 수 있나.
"국내에선 SK텔레콤과 활발히 영업을 뛸 예정이다. 2017 스페인 MWC(모바일 월드 콩그레스)에서 SK텔레콤의 부스 전체를 투명 디스플레이(80인치대, 무게 15kg)로 설치한 데 이어 조만간 대형 호텔 내 수영장 바닥에 투명 디스플레이(100% 방수)를 설치하게 된다. 또 지하철 옥내 광고판(스크린도어 등)과 전국 대학교의 현수막을 대체하기 위해 사업주체와 협상 중이다.
▶ 중국 진출은 안 하나. 못하나.
"중국에 일부러 안 가고 있다. 일본과 미국에서 수익을 내고 힘을 키워 덴쓰 같은 중국기업과 손잡고 들어가야 한다. 중국은 '질'보다 '가격'이기 때문에 가격으로 승부를 내야 한다. 레온의 디스플레이는 판매 마진이 상당히 높다. 세계 최초라서 싸게 팔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중국에서는 마진률을 낮춰 가격으로 승부할 생각이다. 중구 현지 기업에게 단가 조정으로 시장을 지배할 수 있는 힘을 주려고 한다."
▶ 회사에 투자하려는 곳이 있나.
"얼마 전 싱가포르 국영 투자회사로 유명한 테마섹의 계열사와 싱가포르 광고기획사 등 세 곳을 만났다. 한 곳은 싱가폴 쇼핑몰에 레온의 디스플레이를 설치하고 광고해서 이익을 나누자는 구체적인 제안까지 했다. 1~2개월 안에 투자(구주 인수 방식) 여부가 결정될 것 같다. 당초 투자사들은 덴쓰로부터 매출이 발생한 이후에 펀딩하려고 했는데 내가 거절했다. 수익이 나고 외형이 커지기 전에 주주 구정을 끝내려고 한다. 매출 발생 이전에 상장 주관사(교보증권)와 일찌감치 계약한 것도 같은 이유다. 그래야 회사가 투명하고 강해진다."
▶ 광고 분야 다음으로 노리는 시장이 있나.
"물론이다. TV뿐만 아니라 영화관 스크린까지 대체하고 싶다. 세계 디스플레이 시장 규모는 600조가 넘는다. 대기업들이 손 못 대는 디스플레이를 내놓을 것이다. 레온은 완전히 평평한 라운드 디스플레이를 만들 수 있다. 가격도 너무 싸다. 영화관의 스크린을 커브드(curved)로 달 수 있다는 얘기다. 궁극적으로 디스플레이 뒷면에 칩을 없애려고 한다. 투명도와 미세 패턴이 놀랍게 좋아질 것이다. 내년 1분기 중 적용할 수 있게 준비 중인데 별도의 디스플레이 구동부 없이 AC 전원으로만 TV를 볼 수 있게 개발하고 있다. 캠핑용으로 생각해 둔 접이식 디스플레이도 나온다."
▶ 언제 상장할 계획인가.
"빠르면 내년(2018년)에 주식시장에 진입하고 싶다. 직접 상장할 것이다. 스팩(기업인수목적회사) 합병 등은 생각해 본 적 없다. 상장 주관사의 계획 안에서 모든 상장 단계를 밟을 예정이다. 일러도 지금부터 그렇게 해야 대표이사와 직원들이 딴 짓 못한다. 회사가 정확하고 건강해 질 수 있다. 이 모든 게 커다란 실패로 얻은 값진 배움의 결과다."
▶ 경영철학을 들려 달라.
"'수상(손금)보다 관상(인상)이, 관상보다 심상(마음)이, 심상보다 용상(씀씀이)이 낫다'는 말이 있다. 어떻게 마음을 먹느냐에 따라 심상, 관상, 수상이 바뀔 수 있다는 얘기다. 한 마디로 '세상에 못 할 건 없다'고 본다. 증시 상장과 동시에 전문 CEO에게 경영을 맡기고 R&D 부서로 내려갈 거다. 그래야 임직원이 진짜 소통할 수 있다. 난 대주주다. 대주주에게 보직은 중요한 게 아니다. 대주주가 바쁘게 일라면 기업이 '갓길'로 안 빠진다. 대주주가 욕심을 키우면 쓸데 없는 결정을 많이 내린다. 대주주가 망설이는 일을 CEO가 해 낼 수도 있다. 나도 급여를 받을 생각이다. 법인카드에 손 대지 않기 위해서다. 월급이 많아야 회사가 단단해진다. 다만 연봉 수준은 직책이 아니라 얼마나 중요한 일을 하는지에만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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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 = 정현영 한경닷컴 기자 jh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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