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운더리] 재개발 갈등 이후…2017 '성북동 비둘기'

입력 2017-08-30 12:09  

서울 마지막 달동네 '북정마을' 이야기

재개발 무산 이후 시작된 마을가치 발견
'성북동 비둘기'는 아직 떠나지 않았다





#영상 서울 마지막 달동네 '북정마을'

성북동 산에 번지가 새로 생기면서
본래 살던 성북동 비둘기만이 번지가 없어졌다
새벽부터 돌 깨는 산울림에 떨다가
가슴에 금이 갔다


- 김광섭 시 '성북동 비둘기'(1968) 중

1968년 시의 '성북동 비둘기'처럼
2014년 재개발 갈등으로
가슴에 금이 간 서울 성북동 주민들의 마음.

3년이 흐른 2017년
금이 간 마음들을 어루만지는
북정마을의 움직임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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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 관심있는 사람들을 찾는 게 저의 가장 첫번째 미션이었어요."

성북동 주민센터 직원인 박예순 씨. 재개발 해제 이후인 2015년 성북동 '마을 코디네이터'로 발령받아 마을에 처음 왔을 때를 이렇게 회생했다. 그 첫 활동이 마을계획단을 조직하는 일이었다. 성북동에 연고가 있고, 마을 재건에 관심있는 주민을 끌어모아 마을계획단을 설립하는 일이었다.

3년 새 40여명의 계획단이 꾸려졌다. 재개발 갈등으로 두 동강난 마을 주민의 마을을 치유하고, 성북동의 가치를 보존 발전시키기 위해 8가지 사업을 일궜다. 계획단원은 이들 사업에 골고루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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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거창한 계획으로 갖고 시작한 건 아니다.
"일단 같이 모여서 서로를 알아가자는 취지로 시작되었던것 같아요."


성북동 주민 지강숙 씨는 2년째 마을계획단원이다. 창단부터 함께 했다. 처음엔 주민들끼리 소통부터 시작하는 여건을 마련하려 애셨다. 그제서야 비로소 '재개발'을 다시 논할 수 있게 됐다. 특히 재개발 무산 이후 변화하는 마을 모습도 자연스럽게 꺼낼 수 있었다. 핵심은 어떻게 하면 성북동이 지닌 가치들을 지켜나갈 수 있느냐였다. 성북동 가치의 재발견. 그 구체화 방안이 현재 8가지의 주민사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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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동 마을계획의 핵심은 '북정마을'이다.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라 불리는 성북동 속 작은 마을. 가보면 왜 달동네인지 알 수 있다. 마을버스가 숨이 헐떡이며 올라야하는 가파른 동네 어귀. 높은 언덕배기에 우후죽순 들어선 낡은 단층 건물들. 이 공간을 수백년째 둘러싸고 있는 서울 성곽 문화재. 문화재 보존에 가로막혔던 재개발 논의들. 실제 2014년 서울시의 재개발 계획인 무산되면서 주민들 상처의 골도 깊어졌다.

변화는 재개발 무산 이후 시작됐다. 저렴한 집값에 젊은 주민들이 이사를 오기 시작하면서다. 지금은 새로운 터전이 영글고 있다.북정마을에서 '아임그린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김기태-최연우 부부도 그런 사람들이다.

김-최 부부는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면서 투숙객에게 서울 성곽과 어울리는 전통문화 체험 프로그램을 선보이고 있다. 남편은 꽃을 덖어 꽃차 블렌딩을, 아내는 기존 베이킹에서의 '슈가플라워'를 한국적으로 재해석한 '앙금플라워'를 얹어 떡케이크 만든다. 재개발로 철거될 운명이던 낡은 마을이, 이젠 과거를 바탕으로 새롭게 변화하고 있는 셈이다.
"활동들 하나하나가 매우 진지하고, 오랜기간 고민해서 나온 것들이었어요. 우리도 참여한다 마을을 예쁘게 가꾸는 데에 도움이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김-최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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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개발 관련해서 움직이는 것이 아니냐는 오해도 받았어요. (박 코디네이터)"

한때 주민들 간 오해도 생겼다. 마을계획단 활동이 다시 '재개발' 이슈와 무관하지 않다는 시각이었다. 박예순 마을코디네이터도 마음 고생을 겪었다. 재개발에 찬성하는 주민들의 시각에선 재개발을 방해하는 것처럼 보였고, 반대 입장에선 재개발을 부추기는 것 아니냐는 오해를 산 것이다.
박 코디네이터는 "공무원은 어떤 정책에 있어서든 중립적인 입장을 유지해야하는 것이 옳다"며 "마을계획단이라는 것은 특정 이해관계를 떠나 주민과 행정기관 사이에 소통의 창구를 열어주는 긍정적활동이기 때문에 재개발과 직접적으로 관련되어서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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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을 아름답게 꾸며가는 일은 분명 긍정적인 일이니까요.(김-최 부부)"

김-최 부부도 재개발을 둘러싼 주민 갈등은 익히 알고있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 갈등이 마을계획단 활동에 지장을 준 적은 없다고 했다. 김-최 부부는 "재개발에 반대하고 성북동과 북정마을의 모습을 지키려는 주민들이 더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배경을 말했다.
재개발 무산 이후 기존 성북동의 가치를 유지하려는 사람들이 직접 발품을 팔아가며 주민자치사업을 이끌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그런 움직임이 마을에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했다.
"서로를 알아가고, 삶을 공유하고. 그러면서 하나의 마을이 만들어지는 것 같아요.(지강숙 마을계획단원)"

지난 8월 19일 북정주민과 예술인이 함께 참여하는 예술 공연이 처음 성곽 앞에서 열렸다. 공연 내내 남녀노소 주민들이 하나처럼 호응하며 즐겼다. 박 코디네이터는 인터뷰 중 "(이런 사업이) 성북동이라서 가능한가?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던 모습들을 여기서 볼 수 있었다"고 했다. 금이 간 마음의 상처를 다시 어루만지려는 노력들. 박 코디네이터의 말처럼 성북동이라서 가능한지도 모를 일이다.

당신이 재개발로 몸살을 앓는 곳에 살고 있다면 성북동을 가보기를 권한다. 재개발이 정답이 아니라면, 북정마을은 재개발 무산 이후 오히려 더 새로운 대안을 실험하고 있다. 그 대안은 과거의 오랜 가치와 미래의 변화를 한데 품고 있다. 산업화로 마음에 금이 갔던 '성북동 비둘기'가 2017년 현재도 성북동에 살고 있는 이유다.


# 바운더리(boundary) ? ① 경계 ② 경계선,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책임= 김민성, 연구= 문승호 한경닷컴 기자 w_moon91@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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