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진출 한국 협력사에 석달 넘게 부품대금 안줘
"납품가 20% 낮춰라" 요구도…현대차는 거부
'중국 갑질'에 납품대금 수천억 못받아
한국 부품사 800여곳 고사 위기
한국회사 몰아내고 중국회사로 교체 노렸을 수도
업계 "이러다 다 죽는다…정부 무엇하고 있나"
[ 장창민/강현우/베이징=강동균 기자 ]
현대자동차의 중국 합작파트너인 베이징자동차가 베이징현대(합작사)에 부품을 공급하는 한국 협력사들에 최대 6개월 넘게 납품대금 지급을 거부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자동차 판매 부진으로 경영실적이 나빠지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베이징차는 여기에서 한술 더 떠 밀린 대금 지급 조건으로 현대차에 한국 부품사의 납품 단가를 20% 이상 깎아줄 것을 요청했다.
현대차가 이 제안을 거절하면서 수천억원을 물린 현지 협력사의 자금 사정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30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와 베이징차의 중국 합작법인인 베이징현대를 좇아 현지에 진출한 한국 부품업체 130여 곳(1차 협력사 기준)이 지난 3~6개월간의 납품대금을 받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발단은 중국의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보복’으로 현지 판매가 급감하면서 합작법인의 자금줄을 쥐고 있는 베이징차가 대금 지급을 차일피일 미루면서다.
베이징현대는 현대차와 베이징차의 50 대 50 합작사다. 현대차는 설계·생산·판매를, 베이징차는 재무를 맡고 있다. 현대차 단독으로 부품사에 납품대금을 지급할 수 없는 구조다.
프랑스계 부품사의 납품 중단에 따라 며칠간 가동을 중단한 베이징현대 공장 네 곳은 이날 가동을 재개했지만 협력사에 대한 대금 지급은 여전히 이뤄지지 않고 있다. 현지에 나가 있는 자동차 부품 관련 한국 기업은 145개(한국자동차산업협동조합 소속 기준)에 달한다. 이들 기업이 베이징과 허베이 등에 지은 공장만 290곳이 넘는다.
이 같은 상황에서 베이징차는 최근 “한국 협력사들이 납품 대금을 20% 일괄 인하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현대자동차 측에 협력사를 설득해줄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현대차 측은 난색을 보이고 있다. 부품 단가를 한 번에 크게 낮출 경우 부품사들의 생존기반이 뿌리째 흔들릴 수 있어서다. 사정이 어렵다고 한 번 깎으면 나중에 되돌리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현지 업계는 베이징차와 현대차의 이 같은 갈등이 해소되지 않을 경우 부품업체에 대한 대금 지급을 기약할 수 없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베이징차의 ‘단가 후려치기’
베이징차의 납품 단가 인하 요구는 표면적으로 베이징현대의 자동차 판매량 급감에 따른 재무구조 악화를 배경으로 깔고 있다. 중국 법인인 베이징현대와 둥펑위에다기아는 지난 2분기 5000억원에 가까운 적자를 본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속으로는 다른 계산이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베이징차는 그동안 현대·기아차 계열을 포함한 한국 부품사들이 베이징현대에 납품하면서 이익을 독식하고 있다는 불만을 여러 차례 제기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베이징의 한 소식통은 “베이징차가 이번 기회에 현대차 중심의 산업 생태계를 자사에 유리한 쪽으로 바꾸려고 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베이징차는 현대차 측이 납품 단가 인하에 동의하지 않자 최근 한국 부품사를 상대로 개별 회유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한 부품사 대표는 “베이징차 측에서 부품별로 20~40%가량 가격을 낮추면 곧바로 밀린 대금을 지급하겠다는 뜻을 전해왔다”며 “거의 반강제적으로 단가 후려치기에 들어간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일각에선 “중국 정부와 현지 회사들이 한국의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계기로 한국 자동차 및 부품사 죽이기에 나선 것 아니냐”는 격앙된 반응도 나온다. 중국이 한국 부품사들을 흔들어 현대·기아차와 협력업체 간 공급사슬을 무너뜨리고, 현지 토종 부품사의 입지를 넓히기 위한 고도의 전략이 깔려 있다는 관측이다.
중국에 진출한 한국 자동차 부품사들은 고사 직전이다. 중국의 사드 보복으로 현대·기아차의 현지 판매량이 급감하면서 연쇄적인 타격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100여 곳이 넘는 중견 부품업체(1차 협력사)의 공장 가동률은 최근 50% 밑으로 떨어졌다. 매출도 30~50%가량 쪼그라들었다. 중국 현지 부품사 공장 관계자는 “부품사마다 인근 건물과 토지를 매각하고 인력 구조조정, 한국 본사 지원 등을 통해 근근이 버티고 있다”며 “일부 부품사는 경영난으로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등에 자금 지원을 요청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정부는 도대체 뭐하나”
800여 개에 달하는 2·3차 협력업체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일부 부품사는 자금난을 견디지 못하고 가동을 중단한 곳도 있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 상당 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현대·기아차는 지난 3월부터 본격화된 사드 보복 여파로 상반기 중국 판매량이 반 토막 나면서 올해 중국 판매 목표를 확 낮췄다. 당초 195만 대에서 147만 대로 줄였다가 최근 117만 대로 다시 하향 조정했다. 이마저도 달성하기 어렵다는 전망이 많다.
베이징현대 협력업체 관계자는 “현대·기아차의 판매가 언제 회복될지 모르는 상황이어서 당장은 버틸 수 있지만 결국 자금난을 피하지 못할 것”이라며 “똑 부러지는 대책이 없어 답답하다”고 말했다.
업계에선 정부 차원의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중국 내 일부 경쟁 업체들이 ‘배타적 애국주의’를 선동하며 악의적인 사드 마케팅에 나서고 노골적인 반한(反韓) 마케팅까지 벌이는데도 한국 정부는 손을 놓고 있다는 지적이다. 경제계 관계자는 “현대·기아차뿐만 아니라 롯데쇼핑, 아모레퍼시픽 등 자동차와 화장품업체의 2분기 실적이 반 토막 날 정도로 충격이 이어지고 있지만, 정작 정부는 중국 측에 목소리 한번 제대로 내지 못하고 있다”며 “한·중 정부 간 협상을 통해 이 문제를 풀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장창민/강현우/베이징=강동균 특파원 cmj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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