폄훼 당하는 임종룡의 금융개혁

입력 2017-08-30 18:20   수정 2017-08-31 14:59



(이태명 금융부 기자) 노무현 정부에서 이명박 정부로 정권교체가 이뤄진 2008년의 일이다. 10년의 진보정권이 보수정권으로 바뀐 때였다.

많은 변화가 있었다. 정권 초기 관가에선 ‘삼청교육대’가 운영되고 있다는 소문이 조용히 돌았다. 물론 서슬 퍼렇던 전두환 때의 그 삼청교육대는 아니다. MB정부 초기 삼청교육대는 과거 정부에서 소위 잘 나가던 관료들을 한 데 모아 정신개조를 하는 곳이었다고 한다. 몇 주동안 집체교육을 통해 ‘이전 정부에서 했던 건 모두 잊어라. 세상이 바뀌었다’는 생각을 주입하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삼청교육대와 더불어 경제부처에선 정책기조의 대변화가 있었다. ‘모든 걸 노무현 정부 때와 정반대로 하면 된다’는 식이었다. 대기업 세금, 부동산세금 등 모든 정책이 바뀌었다. 기재부의 한 경제관료는 당시 새 정부의 정책을 발표하는 기자브리핑에서 ‘영혼없는 공무원 아니냐’는 핀잔을 면전에서 들어야 했다. 그리고 그는 이를 수용했다. “맞습니다. 공무원은 영혼이 없습니다”라고. 이런 대변화는 박근혜 정부 출범 초기인 2013년에도 일부 있었다. 같은 보수정권이지만 색깔과 근본이 달라서였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 100일을 넘겼다. 새 정부 역시 정책기조의 대변화를 추진 중이다. 금융정책도 ‘금융산업 경쟁력 강화’에서 ‘서민 및 중소기업 지원’으로 중심 축이 바뀌고 있다. 금융계 인사도 속도를 내고 있다.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금융분야에 있어서도 새 정부는 지난 10년을 적폐의 시간으로 규정하는 듯 하다. 과거 금융위가 이뤄낸 성과도 그런 생각에서 바라보는 것 같다. 임종룡 전 위원장이 2년간 민간 전문가들과 머리를 맞대고, 국회를 설득해가면서 어렵사리 성사시킨 인터넷전문은행을 여당 일각에선 ‘특혜’라고 지적하는 이유도 아마 그래서일 것이다. 하지만 새 정부의 금융철학은 여전히 애매모호하다.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공약집에는 금융정책의 목표를 ‘금융산업의 구조적 선진화’라고 명시돼있지만 무엇을, 어떻게 바꾸겠다는 것인지는 구체적이지 않다. 결국 현 단계에서 새 정부의 금융철학은 지금까지 나온 금융관련 대책, 인사의 편린들에서 유추해볼 수 밖에 없다.

일단 새 정부의 금융정책의 큰 방향성은 ‘개혁’이다. 개혁해야 할 대상은 관치금융과 적폐다. 간간이 흘러나오는 금융위원회의 새 정책 내용에 이런 내용이 엿보인다. 게다가 새 정부는 금융개혁을 추진하기 위해 엊그제 금융행정혁신위원회를 출범시켰다. 혁신위원장을 맡은 윤석헌 서울대 경영대학 객원교수는 첫 회의에서 “아직 우리 금융당국이나 금융권이 국민들로부터 크게 사랑받거나 충분한 신뢰를 얻고 있지 못하고 있다”며 “소통 없이 앞서 나간 정부 정책, 관행이라는 명목 하에 유지되어 온 비효율적이고 불투명한 행정절차, 국민들 입장에서 납득하기 어려운 인사 등이 여전히 잔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여전히 우리의 금융업은 무언가 문제가 있으며, 인사는 어디에선가 결정돼 ‘하명’이란 이름으로 비정상적으로 이뤄진다는 게 윤 위원장의 발언의 취지다. 조심스러운 표현을 썼지만 과거 금융위의 개혁 성과를 부정한 것이다.

그런데 이 대목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과연 지금까지의 ‘금융개혁’은 실패했는가에 관해서다. 금융개혁은 새 정부가 특허권을 쥔 용어는 아니다. 이전에도 매 정권마다 금융개혁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금융개혁을 전면에 내세워 추진한 적도 있었다. 바로 임종룡 전 금융위원장 재임기간 때다. 임 전 위원장은 지금으로부터 2년6개월 전인 2015년 3월, 갓 취임한 이후 금융개혁을 정책의 최우선순위에 뒀다. 그가 생각한 금융개혁은 관치-정확히는 금융규제-의 폐해를 없애자는 것이었다. 금융위원장 취임 직전 농협금융지주 회장 재직 시절 몸소 겪은 규제의 그물을 찢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그는 이 생각을 실천하기 위해 ‘금융개혁 현장점검반’이란 조직을 만들었다. 책상머리에만 앉아있던 금융위 공무원들에게 민간 금융회사를 직접 찾아가 현장의 애로사항을 듣고 건의를 받았다. 그리고 그 중에서 고치는 게 합당하다고 판단되는 건 즉시 받아들였다. 그렇게 고쳐낸 규제가 2000여건이 넘는다. 6000여건의 건의 중 3분의 1을 임종룡의 금융위는 수용했다. 현장점검반은 지난 6월 말 해체됐다. 한시적으로 운영하기로 했던 조직이었다는 게 금융위 설명이다.

임종룡 때 현장점검반의 성과에 대해선 평가가 갈린다. 실제로 큰 덩어리 규제는 건드리지 못했지 않느냐는 지적이 나오기도 한다. 금융공기업들에 만연했던 낙하산 인사 관행도 별반 손대지 못했다는 얘기도 있다. 임 전 위원장도 그런 한계를 잘 알았다. 그러면서도 금융위 차원에서 ‘최대한’, ‘해볼수 있는 것까지’ 해보자는 게 그의 금융개혁이었다. 그래서일까. 금융현장에선 임종룡 표 개혁이 꽤 많은 변화를 이끌어냈다고 받아들인다. 역설적으로 이 과정에서 금융감독원이 힘을 잃었다. 임 전 위원장이 “쓸데없이 금융회사에 감독을 핑계로 나가지 말라”는 지침을 내려서다. 금감원이 쥔 감독권이란 칼자루를 아예 못쓰게 막아버린 것이다. 그래서 지금 금감원은 약간 당황스러워 한다. 김조원 전 감사원 사무총장의 금감원장 기용설에 대해서다. 과거처럼 금감원이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는 것도 아니고, 퇴직자가 민간 금융회사로 옮겨가는 길도 사실상 막혔다. 그런데 새 정부는 금감원 수장에 감사원 출신의 비전문가를 앉히려는 저의를 모르겠다는 게 금감원 사람들의 궁금증이자 불만이다.

개혁의 성과는 명확한 지향점과 이를 실행할 구체적인 로드맵이 있어야 나올 수 있다. 새 정부가 생각하는 적폐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규정해야 한다. 또 관치금융과 관련한 근본 원인도 손대야 한다. 관치금융의 근원은 결국 정치권력이다. 정치권력이 금융관료들에게 권력을 행사하고, 금융관료는 다시 민간 금융회사에 영향력을 행사한다. 이 대목에 대해 금융혁신위가 얼마나 명확한 해법을 내놓을 지는 미지수다.

아울러 임종룡이 이뤄낸 ‘금융개혁’을 폄훼해서도 안된다. 임 전 위원장과 당시 금융위 공무원들이 이뤄낸 개혁의 성과는 충분히 인정받을 만하지 않을까. 과거 금융개혁은 개혁이 아니라는 부정만으론 개혁의 성과를 장담할 수 없다. (끝) /chihir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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