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7년 조선 천문학자들 '신성'을 포착하다

입력 2017-08-31 02:00   수정 2017-08-31 08:51



“객성(客星·갑자기 나타났다 사라지는 별)이 미수(전갈자리 별자리)의 둘째 별과 셋째 별 사이에 나타났다.” (세종실록 76권, 1437년 양력 3월 11일)

미국을 포함해 6개 나라 천문학자로 구성된 국제 공동연구진이 580년 전 조선의 천문학자들이 남긴 기록을 바탕으로 신성(평소 어둡다가 갑자기 밝아지는 별)의 기원과 진화 과정을 규명하는 데 성공했다. 서양 과학자들이 동양의 역사문헌에 나타난 옛 기록을 바탕으로 천문 현상의 기원을 규명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마이클 섀러 미국 뉴욕자연사 박물관 연구원과 리처드 스티븐슨 영국 던햄대 교수 등 공동 연구진은 1437년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객성이 짧은 기간에 밝은 빛을 냈다가 사라지는 신성이며 지금도 불규칙하게 밝은 빛을 내는 왜신성으로 관측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고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30일(현지시간) 발표했다. 네이처는 지금도 매우 드물게 관측되는 신성 관측 시점을 역사기록을 통해 명시했다는 점에서 이번 연구 성과를 높이 평가해 별도 뉴스로 뽑아 소개했다.

◆1437년 3월 11일 조선 천문학자들이 첫 관측

연구진이 활용한 세종 19년(1437년) 음력 2월 5일 기록에 따르면 전갈자리 꼬리 부분 둘째 별과 셋째 별 사이에 갑작스럽게 객성이 나타났다는 기록이 나온다. 조선실록에는 객성이란 표현이 자주 나오는데 이는 일시적으로 밝아지는 별을 뜻한다. 옛 천문 현상을 연구하는 고천문학자들은 태양처럼 항상 제자리에서 빛나는 별이 아니라는 점에서 객성이 신성이나 초신성 폭발일 수 있다고 추정하고 있다. 기록에 따르면 당시 객성은 발견된 날부터 14일간 지속적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세종실록에 기록된 이 대목에 주목했다. 연구진은 지난 1923년과 1942년에 관측된 사진에서 별자리 중 하나인 전갈자리 꼬리 부분에서 신성 폭발로 추정되는 흔적을 발견했다. ‘노바 스코피 1437’로 불리는 이 신성은 전갈의 영어 이름 스콜피언에서 이름을 가져왔다. 지난해 칠레의 라스 캄파나스 천문대에서 촬영한 영상에도 당시 신성 폭발이 일어나고 나서 뿜어낸 가스 껍질 흔적이 포착됐다. 연구진은 이들 자료에 나타난 신성 발생 시점과 위치를 분석한 결과 세종실록에 기록된 시점과 일치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신성은 평소 어둡던 별 밝기가 갑자기 며칠 새 수백 배에서 수천 배까지 밝아지는 현상이다. 옛 사람들은 밝은 별이 밤하늘에 갑작스럽게 나타나기 때문에 별이 태어난다고 생각해서 새로운 별이라는 뜻에서 신성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훗날 과학이 발전하면서 ‘폭발변광성’ ‘격변변광성’이란 이름을 얻게 된다.

◆고온 가스 머금은 쌍성계 폭발

신성은 별 진화의 마지막 단계인 백색왜성과 그 짝별(동반별)이 쌍을 이룬 쌍성계에서 일어난다. 식어가는 별인 백색왜성이 태양처럼 안정적인 별과 가깝게 짝을 이루면 백색왜성 중력이 짝별의 구성 물질을 빨아 들인다. 흡수하는 물질은 주로 수소인데 이들 가스는 회전하는 백색왜성 주변에 쌓이면서 원판 형태의 모습을 갖추게 된다. 시간이 흘러 이 수소는 중력에 의해 압축되고 1억도 가까이 온도가 올라간다. 결국 고온·고압으로 압축된 수소 가스는 핵융합 반응이 일어나면서 엄청난 폭발이 일어나면서 밝은 빛을 낸다. 이렇게 순간적으로 발생한 빛은 수개월에서 수년에 걸쳐 점차 어두워진다. 폭발 순간 우주를 향해 날아간 수소 가스는 매초 수천㎞ 속도로 껍질 형태로 퍼져 나간다. 백색왜성에 짝별에서 수소나 헬륨 가스가 계속해서 유입하면 이런 현상은 몇번 반복될 수 있다. 이른바 난쟁이신성(왜신성)이 이후에도 관측되는 이유다.

연구진은 스코피 1437 신성의 경우 백색왜성이 31분에 한 번씩 자전하면서 짝별로부터 가스를 흡수한다는 사실을 새롭게 알아냈다. 또 백색왜성의 질량이 태양의 1~1.4배 수준이라는 점도 알아냈다. 하지만 백색왜성이 영원히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백색왜성이 폭발하지 않고 평형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최대 질량은 1.4배 정도다. 짝별로부터 물질을 계속해서 흡입해 ‘찬드라세카르 질량’으로 불리는 한계를 넘어서게 되면 백색왜성에 쌓인 탄소가 핵융합하기 시작하면서 초신성 폭발로 이어진다.

◆조선왕조 매일 천문 기록 남겨

1437년 신성 폭발이 국제 천문학계에 보고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양홍진 한국천문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지난 2005년 국제학술지 ‘천문학 및 천문물리학 저널’에 1073~1074년 고려시대 관측된 신성 중 하나인 물병자리 변광성에 관한 논문을 발표했다. 당시 연구진은 논문을 소개하면서 고려와 조선시대 역사기록에서 발견된 39건의 객성(신성) 관측 기록을 정리했다.



이번 연구에 한국의 고천문학 기록을 인용할 수 있었던 건 논문 공저자로 참여한 스티븐슨 교수의 역할이 컸다. 스티븐슨 교수는 1970년대부터 천문 현상을 꼼꼼히 기록한 한국 고천문학 기록을 해외 천문 물리학자들에게 소개해 왔다.

조선왕실은 개국 이후 서운관이란 기관을 설치해 각종 천문 현상과 기상 상황을 날마다 기록했다. 이후 서운관은 관상감으로 확대 개편됐다. 조선왕조는 천문 현상에 유독 관심이 많았다. 평소 세 명이 관측을 하지만 독특한 천문현상이 일어나면 다섯 명의 관리를 투입했다.

서운관과 관상감 관리들은 매일 발견되는 천문 현상을 《성변측후단자》라는 천문일지에 기록했다. 당시 기록을 보면 태양계 주변에서 나타나 태양을 향해 움직이는 별을 꼬리가 없을 때는 패성, 태양에 접근하면서 얼음이 녹아 꼬리가 생기면 혜성, 새로 관측된 별은 객성, 별똥별은 유성으로 구체적이고 체계적으로 분류했다. 매일 일지를 모아 《성변등록》이라는 책으로 만들기도 했다. 고천문학 전문가들은 혜성 기록을 담은 《혜성등록》, 신성 관측 기록을 담은 《객성등록》도 편찬됐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 1차 기록들은 현재까지 내려오는 것이 거의 없다. 일제 강점기 일본 학자가 여덟 벌을 발견했다는 기록이 있지만 연세대 박물관에 현종과 영정조 때 기록만 남은 《성변등록》복사본 세 벌이 남아있는 게 전부다. 양 선임연구원은 “조선시대 기록들은 현대 천문학자들이 연구에 활용할 수 있을 정도로 꼼꼼히 기록됐다”며 “이 같은 기록은 다른 나라에서도 흔치 않다”고 말했다.

스티븐 쇼어 이탈리아 피사대 교수는 “‘노바 스코피 1437’ 신성은 역사학에서 사랑스러운 조각 중 하나”라고 평가했다.

박근태 기자 kunt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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