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광장의 함성'에만 기대서는…

입력 2017-08-31 18:30  

정책의 정당성은 국회 논의·추인서 나와
이런 절차 외면한 촛불·댓글 정치는 위험
국회·야당 목소리에 귀기울이고 설득해야

김인영 < 한림대 교수·정치학 >



최초의 민주주의 국가로 불리는 그리스 아테네의 민주주의는 ‘인민(시민)에 의한 통치’였다. 인민에 의한 직접 통치라는 측면에서 국민의 대표기관인 의회에 의한 간접 통치와 대비해 ‘직접민주주의’라고 부른다. 이때 ‘직접’은 모든 시민이 민회에 참석하고 추첨과 윤번제에 의해 일생에 한 번 이상 공직을 담당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직접민주주의가 작동하기 위해서는 조건이 있다. 영토가 크지 않고 인구가 적으며 생산은 노예가, 가사는 여성이 담당하는 등 시민 남성에게 여유가 주어져야 한다. 생업과 가사에 바쁘고 많은 시민이 한 곳에 모여 진지한 토론을 하기 어려워 소규모 공동체에서만 가끔 시행되고 있다.

하지만 기원전 4세기 플라톤은 앞의 한계와는 다른 측면에서 직접민주주의에 부정적이었다. 스승이었던 소크라테스가 시민 법정에서 직접민주주의에 의해 사형을 선고받고 죽음에 이른 억울함 때문이었다. 이렇게 민주정(政)에 의한 혼란을 경험한 플라톤은 “민주주의는 민주주의의 과잉으로 스스로 파멸한다”고 비판했다. 적절하게 교육받지 못한 대중들이 최선의 지도자를 선택하기 어렵고 가장 현명한 정책을 선택하지 못하기에 직접민주주의는 결국 ‘폭도들에 의한 통치(mobocracy)’로 타락할 것을 예측했던 것이다. 이후 플라톤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렇게 다수의 빈민이 이끄는 정치, 즉 민주정의 중우(衆愚)적 타락을 ‘폭민정치(ochlocracy)’라고 명명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국민보고대회에서 “국민은 간접민주주의로는 만족하지 못한다” “촛불집회처럼 직접 촛불을 들어 정치적 표시를 하고 댓글을 통해 직접 제안하는 등 직접민주주의를 요구하고 있다”고 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폐쇄적 국정 운영 문제점이 드러났으니 국민과 소통의 폭을 넓히겠다는 차원의 발언이라면 긍정적이다. 하지만 인사청문회에서 제기됐던 ‘공직배제 5대 원칙’과 관련된 논란조차 80%에 육박하는 대통령 지지율이라면 덮을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또 탈(脫)원전 정책을 국회에서 논의하면 정쟁의 대상이 되고 오래 걸리니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를 통해 시민의 결정을 그대로 정부 정책으로 받겠다는 것은 더욱 아니다. 이는 국회라는 국민의 대의기구를 ‘패싱’한 채 국민과 직접 소통으로 정부 정책을 결정하겠다는 의미다. 그러나 정부 정책의 정당성은 국회의 논의와 추인이라는 합법적 절차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외면한 직접민주적 발상이라 문제가 심각하다.

이런 직접민주적 발상은 과거 노무현 정부와 다르지 않다. 문 대통령의 취임 100일은 그대로 ‘노무현 시즌2’임을 보여주고 있다. 정부와 청와대가 노무현 정부 당시 일했던 사람들로 채워지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동북아 균형자론’이 ‘한반도 운전자 역할론’으로 바뀌었다. 노 전 대통령이 즐겨했던 노사모 지지자들과의 밤샘 댓글은 문 대통령의 촛불시위 국민을 위한 대국민보고대회가 됐을 뿐이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이 노사모 등 국민과 직접 대화하며 국회 및 야당과의 소통을 소홀히 하다 탄핵소추에 이르게 됐던 과거를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박 전 대통령은 새누리당의 친박(친박근혜) 인사들과만 대화하고 새누리당을 사당(私黨)화하다가 비박(비박근혜)계의 반발에 직면하게 됐고, 그 반발이 결국 탄핵안의 국회 통과로 부메랑이 돼 돌아왔음을 기억해야 한다. 노 전 대통령은 총선과 관련된 사소한 발언이 꼬투리가 잡힌 것이고 박 전 대통령 당시의 국정 농단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라고 하더라도, 탄핵소추안의 국회 통과는 대의기관인 국회와 반대 야당의 존재를 가볍게 본 결과라는 점에서 동일하다.

오늘은 국회가 1년의 활동 가운데 가장 중요한 정기국회 100일 대장정을 시작하는 날이다. 문 대통령은 박근혜 정부가 재임 중 정책의 정당성만을 강조하고 야당 설득에 실패해 중요한 법안들을 통과시키지 못했음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광장의 함성에 기대기보다는 국회 내 야당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설득에 전력을 다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는 대통령이 야당의 존재를 국정의 방해자로 보지 않고 국정의 동반자로 생각할 때 가능하다. 그리고 여소야대의 현실에서 문 대통령이 국민에게 약속한 정책들을 실천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 대안이기도 하다.

김인영 < 한림대 교수·정치학 iykim@hallym.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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