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병인 등 뒤섞여 도떼기시장인 한국 병원들
보건의료 인력 적정 확보와 임금보장 절실
방문석 < 서울대 의대 교수·재활의학 >
올봄에 세계적 척수손상전문병원인 스위스의 노트윌 척수손상센터를 방문했다. 병원은 루체른시 인근 호숫가에 아름답게 자리잡고 있다. 150개 병상밖에 안 되는 이곳에서는 불의의 사고로 하반신마비나 전신마비 장애를 갖게 된 환자들의 수술부터 재활까지 원스톱으로 이뤄진다. 2인실이 기본인 첨단병원 건물과 연구소, 수영장을 포함한 스포츠재활 시설, 소규모 학술행사 등의 컨벤션이 가능한 부속 호텔이 함께 자리하고 있다. 마치 잘 가꿔진 대학캠퍼스를 연상시킨다. 이 시설 종사자는 1500여 명으로 병상당 10명이다. 우리나라의 3차 종합병원인 서울대병원의 세 배에 달하는 규모다.
선진국은 병원이 지역사회의 중심인 중소도시들이 많다. 미국 미네소타주 로체스터시의 메이요클리닉이 대표적이다. 인구 10만 명인 이 도시의 경제 기반과 인적 구성은 거의 병원 종사자들과 방문객에 의존하는 형태다. 우리나라와 비교하면 같은 형태의 직장이 세 배 이상의 인력을 더 높은 연봉으로 고용하고 있는 셈이다. 의료기관 한 곳이 적정 고용을 통해 지역 사회, 도시 하나를 지탱하는 셈이다.
노트윌병원도 그렇고 다른 선진국 병원의 병실은 쾌적하고 조용하다. 병원에서 밤잠을 자는 사람은 환자뿐이다. 병원 안에서 자는 보호자도 간병인도 없다. 선진국 병원에서는 간병의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다. 아픈 환자는 오로지 간호서비스를 통해 돌봐지는 것이 당연하고 이는 환자의 권리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의 간병인제도는 소개와 계약 등 관리가 직업소개소를 통해 이뤄진다. 하지만 별도의 자격관리나 공적 교육시스템은 없다. 일선 의료기관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외부인력일 뿐이다. 환자를 돌보는 일은 간호사가 해야 하는데, 병원과 전혀 관계없는 간병인력이 간호의 한 축을 담당해온 점은 우리의 부끄러운 과거이자 아직도 남아 있는 현실이다.
국내를 대표하는 초대형 병원에서조차 아침이면 반바지에 슬리퍼 차림의 부스스한 모습으로 매점에서 컵라면, 김밥 등을 사는 보호자들을 종종 마주치게 된다. 밤새 환자 병상 옆에서 쪽잠을 자고 침대 옆 냉장고에서 꺼낸 밑반찬을 곁들여 끼니도 때우며 간병하는 것이다. 2015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를 겪은 우리나라 의료기관의 현재 모습이다.
그간 의사 인력의 적정성, 의대 신설 등에 대해 의료계와 정치권, 보건당국, 교육부, 시민단체 등에서 소모적인 논란이 있었다. 그러나 다른 보건의료 인력, 병원 종사인에 대해서는 보건의료계나 사회 전체가 무관심했다. 적은 예산으로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강화하려다 보니 진찰, 시술, 약가, 의료기기에 대한 보장성을 우선으로 해왔다. 인건비 부문에서는 국가 경제나 다른 산업 부문에 비해 너무나 보장을 적게 한 채 방치해온 것이다.
2015년 기준 우리나라 간호사 수는 인구 1000명당 5.2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1000명당 9.1명에 한참 못 미친다. 서유럽 국가에 비해서는 3분의 1 수준이다. 절대 인력이 부족하니 노동 강도는 높은데 충분한 임금과 복지가 따르지 않는다. 우리나라 간호대 졸업생 수는 인구 10만 명당 97.3명으로 OECD 회원국 중 1위다. 그러나 ‘장롱면허’가 늘어가고 지방 근무는 기피한다. 물리치료사, 작업치료사 같은 재활 전문인력의 고용수준은 더 심각해 선진국의 3분의 1 수준이다. 재활의학과 전문의의 지휘 아래 물리치료, 작업치료, 언어치료, 심리치료 등이 포함된 치료를 1 대 1로 하루 최소 3시간 이상 하는 선진국에 비해 치료 강도가 현저히 낮다. 치료 효율이 떨어질 수밖에 없고 치료 기간도 덩달아 길어지게 된다.
대학과 학생이 충분히 있고 보건의료 관련 면허증을 취득하는 사람이 꾸준히 있는데 장롱면허가 있다는 우리의 현실을 국제기구나 외국인들은 너무나 의아해한다고 한다. 보건의료 인력의 적정한 고용과 적정한 임금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정책을 개선해야 할 시점이다. 새 정부가 추구하는 양질의 일자리 창출의 가장 쉬운 부분 중 하나는 보건의료 인력의 적정한 고용과 적정한 임금보장에 있다고 할 것이다.
방문석 < 서울대 의대 교수·재활의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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