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판사가 3000명에 달하는 만큼, 생각이 다양하고 돌출 언행이 나올 수도 있다. 그러나 이번 경우는 ‘각하 빅엿’, ‘가카새키 짬뽕’처럼 판사의 정치성향을 드러낸 것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다. 판사 개인의 가치와 정치관에 따라 판결하는 것을 ‘법관의 독립’으로 여긴다는 데 심각성이 있다. 오현석 판사는 오랜 숙고와 통찰의 결과인 대법원 판례조차 ‘남의 해석’으로 간주했다. ‘법정 안의 독재자’나 다름없다. 이런 판사에게 재판받아야 한다면 어떻게 법의 일관성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국가의 3권 가운데 유일하게 선출직이 아니면서 권한과 임기를 보장받는 게 사법부다. 권력과 금력, 집단의 간섭을 배제하고, 포퓰리즘의 덫에 빠지지 말라는 장치다. ‘정의의 여신’ 디케(Dike)가 두 눈을 가리고 있는 게 그 상징이다. 만약 법관마저 선거로 뽑으면 선거 패배는 곧 멸망이므로 선거마다 목숨을 건 전쟁이 벌어질 것이다. 사법부에 정치적 중립성을 요구하고 ‘최후의 보루’라고 부르는 이유다.
사법권 독립이 보장돼 있음에도 정치를 법정 안으로 끌어들이려는 시도는 어리석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렇지 않아도 법원 바깥에선 정치적 입김이 점점 세지고 있다. 여당 대표는 한명숙 전 총리 출소 때 “기소도 재판도 잘못됐다”더니, 헌법재판소장 임명동의 투표 무산에는 “적폐세력의 반기”라고 독설을 퍼붓는 판이다.
법원 안에는 오 판사의 글을 반박하고 비판하는 목소리가 훨씬 많다. 하지만 ‘재판은 곧 정치’라는 게 판사 혼자만의 튀는 생각은 아닌 듯한 풍경도 적지 않다. 법원이 정치에 휘둘리고, 좌고우면한다는 비판이 적지 않은 요즘이다. 디케와 달리 두 눈을 뜨고 있는 한국 법원의 ‘정의의 여신상’을 떠올리게 한다. 사법부의 권위는 누가 대신 지켜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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