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통화는 화폐 아니다" 소비자 보호 위한 규제 도입
이용자 본인확인 절차 강화…해킹·마약거래 등 악용 차단
[ 정지은 기자 ]
정부가 10개월간의 논의 끝에 비트코인, 이더리움 등 ‘가상통화’를 화폐나 금융상품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결론내렸다. 대신 가상통화를 이용한 사기행위나 해킹대금으로 가상통화를 주고받는 불법행위에 대한 감독을 강화하기로 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1일 ‘가상통화 관계기관 합동 태스크포스(TF)’ 회의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의 대응방향을 결정했다. 가상통화는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만든 디지털 통화다. 그동안 가상통화와 관련해서는 두 가지 쟁점이 제기돼왔다. 가상통화를 기존 화폐와 동일하게 취급할 것인지, 가상통화 거래와 이에 따른 소비자 피해를 어떻게 규제할지 등이다.
금융위는 이날 회의에서 가상통화를 화폐로 볼 수 있느냐에 대해 “화폐나 금융상품이 아니다”고 규정했다. 화폐는 교환의 매개이자 가치척도, 가치저장이라는 본질적 기능을 지녀야 한다는 전통적 개념에도 맞지 않는 데다 가치가 불확실하고 변동성이 크다는 이유에서다. 금융위는 가상통화 거래를 ‘인가제’ 형태로 규제해야 한다는 데 대해서도 부정적인 의견을 내놨다.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 자체가 ‘가상통화=금융상품’이란 시그널을 시장에 줄지 모른다고 판단해서다.
금융위는 대신 가상통화와 관련한 불법행위와 소비자 피해를 막는 데 집중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지난해 하반기 이후 가상통화 가격이 한 달 새 수 배에서 수십 배까지 뛰는 등 투기 대상이 되고 있는 상황이다. 가상통화를 마약거래나 해킹 대금으로 주고받거나, 가상통화 투자를 빙자한 유사수신행위, 다단계 사기 등도 속출하고 있다.
금융위는 이에 따라 가상통화 투자를 사칭한 유사수신행위에 대한 처벌근거를 법에 명시하기로 했다. 가상통화 투자 빙자형 사기도 10년 이하 징역, 5억원 이하 벌금을 부과하기로 했다.
아울러 가상통화 거래 때 이용자 본인확인 절차를 12월부터 강화한다. 보통 가상통화 거래는 은행 가상계좌를 통해 이뤄진다. 가상통화 취급업자가 개설한 은행 가상계좌에 이용자가 거래대금을 넣고 빼는 식이다. 현재는 가상계좌 관련 이용자 본인확인 절차가 없다. 금융위는 앞으로 은행이 가상통화 취급업자가 보유한 이용자 정보를 확인하고, 이용자 본인 계좌에서만 입출금이 되도록 관리할 계획이다. 또 가상통화를 이용해 대출을 해주거나 시세를 조정하는 행위도 엄중 처벌하기로 했다. 가상통화를 해외 송금 매개수단으로 쓸 때도 매일 한국은행에 거래 내역을 보고하도록 한다.
일각에선 이번 규제가 얼마나 효과를 볼지 미지수라는 반응을 보였다. 정부가 국내 가상화폐 거래 규모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어서다. 가상통화의 폐해가 크기는 하지만 정부가 신산업으로 육성하려는 고민이 없다는 비판도 나온다. 미국과 일본 등에선 가상통화를 은행 간 결제화폐로 활용하는 방안까지 검토하고 있는데, 국내에선 부작용을 우려해 규제에만 매달린다는 지적이다.
정지은 기자 jeo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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