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과 시각] 재정의 효율성·공정성을 더 고민해야

입력 2017-09-03 20:03  

재정 집행의 효율성을 따지고 세입의 공정성도 개선하는 게
재정건전성 논쟁보다 생산적

신민영 < LG경제연구원 경제연구부문장 >



복지 증진과 공공 부문 일자리 확대는 현 정부의 핵심 정책과제다. 지난주 발표된 내년도 예산안은 정부의 이런 지향점을 잘 보여준다. 재정이 정부의 정책 의지를 실현하는 중요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내년 예산에서는 아동수당을 신설하고 노령연금 지급액을 올리는 등 무엇보다 복지 지출의 전체 예산 대비 비중을 34% 수준으로 늘렸다. 반면 도로 부문 예산을 올해에 비해 26.5% 낮추는 등 사회간접자본 투자는 20%나 줄였다. 물적 자본에 대한 투자보다는 사람에 대한 투자를 늘린다는 의중이 드러난 모양새다. 향후 5년간 지출 증가율도 5.8%로 추산했다. 불과 2년 전 발표된 중기재정계획보다 2.3%포인트 높은 숫자다.

현 정부의 재정확대 정책은 국가 부채의 심각성을 부각시킨 지난 정부의 재정 기조와는 판이하다. 일각에서는 건전성 악화로 지속 가능성에 의문을 표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다소간의 불확실성을 논외로 하면 정부의 재정 지출 계획에 큰 문제는 없어 보인다. 우선 세입 증가율이 2015년 추산에 비해 높아졌다. 추가 세수 규모는 올해와 내년 각각 25조원, 10조원이 예상되며 5년간 세수 증가액은 총 80조원으로 추산된다. 자연증가분만으로도 공약 실행에 필요한 재원 178조원의 45%가 충당되는 셈이다. 이는 세계 경제와 물가상승률 회복으로 경상성장률이 중기재정계획보다 1%포인트 올라간 효과에 힘입은 바 크다. 이전 정부에서 실시한 소득공제 축소와 세무당국의 세입 증대 노력 등의 영향도 크게 작용한다. 물론 부동산 경기가 가라앉으면서 부동산 세수 차질 우려도 있고 정부의 적극적인 지출 구조조정이 계획에 못 미칠 수도 있지만,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조세감면 축소와 소득세 및 법인세 세율 인상 등 세수 증가 요인도 균형 있게 고려해야 할 것이다.

또 재정건전성 이슈는 정부의 정책 의지, 여야 간 합의 과정, 국내외 경제 상황 등과 복잡하게 맞물린 문제로서 명확한 결론을 내리기 쉽지 않다. 이런 점에서 재정 규모의 문제인 재정건전성보다 구체적인 재정의 내용, 즉 재정의 효율성과 공정성에 눈을 돌리는 것이 보다 생산적인 일일 가능성이 높다. 지금까지 세출의 공정성에 비해 세출의 효율성은 정책 의지에 밀려 초점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렇지만 재정건전성에 대한 우려가 늘어날수록 세출의 효율성을 깐깐하게 따지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육아수당 지급과 국공립 어린이집 확대 중에서 출산율 제고나 영유아의 신체 및 지능 발달 등 정책 목표 달성에 더욱 도움이 되는 사업에 집중적으로 재원을 투입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사전에 소규모 정책 실험을 하거나 사후에 정책 효과를 검증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재정을 확대하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한국의 세입구조를 보면 법인세, 근로소득세, 부동산 거래세 등 상대적으로 징수비용이 크지 않은 세목 비중이 높아 세입의 효율성은 높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조세 부담률이 점차 높아지는 추세에서 세입의 공정성은 더욱 첨예한 이슈가 될 것이다. 세입의 공정성은 누구에게, 어떤 세금을, 얼마만큼 부과하는 것이 정당한가의 문제다. 예를 들어 근로소득세 면세자 비중이 47%에 달하는 것은 납세의 의무를 규정한 헌법정신에 부합하지 않는다. 또 세수에서 일부 세목의 비중이 높거나 최상위 소득계층의 세 부담이 크게 높아지는 반면 바로 다음 고소득 계층의 부담이 전혀 늘지 않는다면 조세형평성 차원에서 고민과 개선이 필요할 것이다.

재정확대 기조는 정치권이나 유권자들 모두가 어느 정도 공감하는 문제이고 우리 경제가 저성장기에 접어들면서 나타나는 사회적·경제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불가피하다. 또 예산 규모가 커질수록 재정의 효율성과 공정성을 둘러싼 갈등이 커질 가능성도 높아진다. 보다 많은 사회적 관심과 더불어 정부 차원의 대비가 필요한 이유다.

신민영 < LG경제연구원 경제연구부문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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