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매점매석' 대신 '사재기'라고 쓰세요

입력 2017-09-04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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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성호 기자 ]
얼마 전 살충제 파동으로 달걀이 품귀 조짐을 보이자 중간 유통상인들의 '사재기'가 불거지기도 했다. 사재기는 한자어 '매점매석'을 순우리말로 순화한 말이다.

지난 호에선 ‘입도선매(立稻先賣)’에 담긴, 지난 시절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을 살펴봤다. 입도선매와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다른 말이 ‘매점매석(買占賣惜)’이다. 얼마 전 살충제 파동으로 달걀이 품귀 조짐을 보이자 중간 유통상인들의 ‘사재기’가 불거지기도 했다. 추석을 앞두고는 각종 제수용품의 사재기가 단속 대상이 되곤 한다. 사재기는 한자어 매점매석을 순우리말로 순화한 말이다.

어려운 한자어에서 쉬운 우리말로

조선 정조 때 연암 박지원이 지은 풍자소설 ‘허생전’에는 이 매점매석이 중요한 대목으로 나온다. 주인공 허생원은 남산골 다 쓰러져가는 초옥에서 글만 읽던 선비다. 부인의 삯바느질로 끼니를 이어가던 그는 부인의 성화에 못 이겨 ‘돈벌이’에 나선다. 도성 안 갑부에게서 1만 냥을 빌린 그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전국의 ‘길목’ 분석이었다. 경기도와 충청도가 갈리는 안성 땅에 주목한 허생원은 그곳에 터를 잡은 뒤 삼남(충청·전라·경상)에서 올라오는 과일류를 싹쓸이해 쟁여놓았다. 얼마 뒤 나라 안에 과일이 품귀를 빚자 그제서야 과일을 풀어 열 배 가격으로 되팔았다. 시쳇말로 ‘떼돈’을 번 것인데 그 수법이 바로 매점매석이었다.

허생원은 “겨우 만 냥으로 나라 경제를 흔들었으니 이 나라가 얼마나 허약한지 알겠구나!” 하고 탄식했다. 박지원은 허생원을 통해 매점매석의 폐해와 함께 당시 보잘것없는 나라 경제를 비판하고 양반의 무능을 질타한 것이었다.

매점매석은 물건값이 오를 것을 예상해 한꺼번에 샀다가 팔지 않고 쌓아 두는 것을 말한다. ‘매점’과 ‘매석’이 결합한 단어다. 매점은 ‘살 매(買), 점령할 점(占)’으로, 값이 오를 것을 예상해 물건을 사들여 쟁이는 일이다. 매석은 ‘팔 매(賣), 아낄 석(惜)’, 즉 팔기를 꺼린다는 뜻이다. 비싼 값에 되팔기 위해 사들인 물건을 팔지 않고 아끼는 것을 말한다.

‘사회적 소통’을 늘리는 지름길

우리 역사에서는 1970~1980년대 매점매석이 극심했다. 정부에서도 1980년 새해 들어 “매점매석 등 불공정 거래행위를 집중적으로 단속하고 유통질서를 바로잡기 위해 공정거래법을 별도로 제정키로 할” 정도였다.(동아일보 1월14일자,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이와 함께 매점매석이란 한자말을 순우리말로 바꿔 쓰기 위한 노력도 이어졌다. 1961년 나온 이희승 편 <국어대사전>에 일찍이 ‘사재기’를 표제어로 올린 게 보인다. 한글학회에서도 1991년 <우리말 큰사전>을 펴내면서 일본식 한자어인 매점(買占)을 사재기로 순화했다.

국립국어원이 1992년 국어순화자료집에서 매점매석의 순화어로 사재기를 제시한 데 이어 법제처도 2005년 광복 60주년을 맞아 일본식 법령 용어를 대폭 정비했다. 이때 ‘더 좋은’ 우리말로 대체된 게 매점매석(→사재기)을 비롯해 ‘개전의 정(→잘못을 뉘우침)’, ‘거래선(→거래처)’ 같은 말들이다. 2013년엔 문화체육관광부가 고시를 통해 이를 뒤따랐다.

모두 어색한 외래말투를 버리고 쉽고 편한 우리말로 바꿔 쓰기 위한 작업의 일환이었다. ‘읽기 쉽고, 알기 쉬운’ 우리말로 ‘사회적 소통’을 늘리기 위한 방편이기도 했다. 네이버 검색을 통해 보면 언론 보도에서도 1970~1980년대 매점매석이 많이 쓰인 데 비해 1990년대부터는 사재기가 압도적으로 많다. 그런 점에서 ‘사재기’는 어려운 한자말을 순우리말로 바꾸는 데 성공한 사례로 꼽을 만하다.

홍성호 한국경제 기사심사부장 hymt4@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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