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 산업지도 바꿔
"4차 산업혁명의 미래는 '매드맥스' 아닌 기술 번영의 '스타트렉'"
[ 송형석 기자 ] “기존 산업 질서의 유효기간은 길어야 5년입니다. 10년 뒤에는 포천지가 선정하는 글로벌 500대 기업 중 절반 이상이 새로운 회사로 바뀌어 있을 것입니다.”
미국 정보기술(IT)업계의 ‘경영 구루’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비벡 워드와 카네기멜론대 교수(사진)는 4차 산업혁명의 파급력을 묻자 이같이 답했다. 워드와 교수는 지난 4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멘로파크에서 한국경제신문 기자와 만나 “에너지와 자동차 유통 등 여러 산업군이 위기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가장 위험한 산업군으로 석유를 기반으로 한 에너지 분야를 꼽았다. 4차 산업혁명으로 한층 더 강력해진 태양전지와 배터리 기술이 ‘석유 경제’의 근간을 흔들어 놓을 것이란 예측이었다. 워드와 교수는 “전기를 생산하는 데 드는 비용이 저렴해진 뒤 캘리포니아주는 가정용 에너지의 10% 정도가 태양광으로 대체됐다”며 “2020년 이후엔 수요 부진으로 원유 가격이 배럴당 20달러 밑으로 곤두박질칠 것”으로 전망했다.
자동차도 ‘빨간불’이 켜진 업종으로 분류했다. 그는 “테슬라 등이 자율주행 기술로 무장한 전기자동차로 차량 공유 서비스를 시작하면 비싼 돈을 들여서 차를 살 이유가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기업에 대해선 “대기업 경영자들이 4차 산업혁명을 열심히 공부하는 것은 인정하지만 학구열에 걸맞은 혁신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비벡 워드와 카네기멜론대 교수는 “4차 산업혁명 시대가 도래하면서 업종 내에 국한됐던 경쟁 구도가 업종 간 경쟁으로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 같은 현상은 더 두드러질 것이라고 했다. 그는 “애플의 원격의료 서비스인 ‘리서치 킷’이 제약업종을 위협하고 테슬라가 전지와 태양 에너지 기술로 석유업체를 거꾸러뜨리는 것을 상상하는 게 어렵지 않다”며 “자신이 속한 업종에서 어떤 파괴적 혁신이 일어날 수 있는지를 상상하고 대비하지 않으면 언제 도태될지 모른다”고 강조했다.
▷미국 실리콘밸리 기업들이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고 있다.
“기술과 상상력 경쟁에서 실리콘밸리 기업들이 한발 앞서 나가고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미국 기업 전성시대가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장담하긴 힘들다. 엄밀히 말하면 구글이나 아마존 페이스북도 첫발을 뗀 단계다. 후발 주자들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경쟁 구도를 바꿀 수 있다.”
▷한국 대기업들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잘 대응하고 있다고 보는가.
“세계 각국 대기업 최고경영진을 대상으로 기술 혁신에 대해 강의하는데 유독 한국 기업에서 강의 요청이 많다. 올해에만 벌써 한국을 두 번 방문했다. 내가 만나본 한국 최고경영자 대부분이 4차 산업혁명을 자세히 알고 있고 어떻게 대응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문제를 제대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은 긍정적인 신호다. 하지만 삼성전자 정도를 제외하면 인상적인 혁신 사례가 많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한국 기업에서 혁신 사례가 많이 나오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익숙한 것과 결별하는 게 어렵기 때문이다. 전통 산업의 승자들은 기존에 성공한 사업 모델이 미래 신사업의 밑거름이 된다고 착각할 때가 많다. 새로운 시도를 하기보다 기존의 것을 보완하는 데 주력한다. 이런 방식으론 산업의 질서를 뒤흔드는 혁신은 어렵다.”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 등 4차 산업혁명 관련 기술 가운데 어떤 기술이 중심이 될까.
“이 질문은 ‘오른팔과 왼팔 중 어느 팔이 더 중요한가’라는 질문과 비슷하다. AI를 구현하려면 빅데이터가 필수다. 센서 기술도 중요하다. 센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AI가 무용지물이 된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핵심 키워드는 ‘융합’이다. 신기술을 어떤 방법으로 조합하느냐에 따라 부가가치가 달라진다.”
▷정부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나.
“기업과 관련된 규제를 과감히 푸는 게 기본이다.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은 기존 기업이 한 번도 시도하지 않은 영역에 도전하는 탐험가들이다. 전례가 없다는 이유로 이들을 가로막는다면 혁신적인 결과물이 나올 수 없다. 젊은이들을 교육하는 것도 정부 역할의 하나다. 신기술을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걸맞은 문화를 조성하는 것도 정부가 해야 할 일 중 하나다.”
▷정부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는 문화를 어떻게 조성하나.
“미국에선 정부 및 기업이 그동안 축적해온 방대한 데이터를 일반에 공개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여긴다. 인터넷만 있으면 누구나 공짜로 데이터에 접근할 수 있다. 이런 데이터는 혁신적인 기업이 탄생하는 토양이 된다. 실패를 용인하는 문화를 조성하는 것도 정부의 역할이 될 수 있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크면 젊은 인재들이 ‘큰 꿈’을 꾸기 어렵다.”
▷기술이 발달할수록 빈부 격차가 커질 것이란 우려도 있다.
“최근 발간한 책 《무인자동차 안의 운전자(The Driver in the Driverless Car)》에서 미래의 모습을 영화 ‘스타트렉’과 ‘매드맥스’에 비유했다. 기술이 인류를 번영으로 이끈 스타트렉의 세계가 현실화될 수도 있지만 인간성이 말살된 매드맥스의 세계가 오지 않는다고 단언할 수도 없다. 개인적으론 스타트렉에 한 표를 던진다. AI 로봇은 인종이나 빈부를 따지지 않는다. 가난한 집 아이들도 인터넷과 연결된 AI 교사를 통해 세계 최고 수준의 교육을 받을 수 있다. 의료 분야도 마찬가지다. 사람의 몸에 센서를 부착해 원격으로 건강 상태를 파악하고 AI 의사가 질병을 진단한다면 지금처럼 의료비를 많이 낼 이유가 없다.”
▷AI가 일자리를 빼앗아갈 것이란 전망도 나오는데.
“일자리 논란은 피할 수 없다. 새로운 일자리보다 감소하는 일자리가 더 많을 것이다. 이 문제는 시각을 달리할 필요가 있다. 1970~1980년대 근로자들은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1주일에 60~70시간 일했다. 하지만 지금은 대부분 40~50시간밖에 일하지 않는다. 로봇의 도움으로 1주일에 30시간만 일해도 되는 사회가 이뤄진다면 그 또한 나쁘지만은 않다고 생각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준비하는 학생들에게 조언한다면.
“‘성공의 방정식’이 바뀌고 있다.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시점의 월급봉투 두께보다 미래의 성공 가능성이 더 중요한 시대다. 명문대 간판이 아예 소용 없지는 않겠지만 과거만큼의 위력을 발휘하긴 어려울 것이다. 결국 믿을 것은 실력뿐이다. 전공에 관계없이 신기술을 깊이 이해해야 한다. AI가 대체하기 힘든 창의력이 요구되는 전문성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 비벡 워드와 교수
비벡 워드와 카네기멜론대 교수는 미국 정보기술(IT) 업계의 ‘경영 구루’ 중 한 명으로 꼽힌다. 4차 산업혁명의 파급 효과를 일찍부터 설파해왔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2013년 그를 ‘기술분야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40인’으로 꼽았으며,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도 ‘모방할 가치가 있는 10인’으로 두 차례나 선정했다.
그는 스타트업 창업가로 이름을 떨쳤다. 1997년 그가 세운 렐러티비티테크놀로지가 개발한 컴퓨터 언어가 ‘코볼’이다. 2000년 이후엔 대학으로 자리를 옮겼으며 세계적 창업가 육성기관인 싱귤래리티대의 창립멤버 겸 학술담당 부총장 등을 지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지의 대표적인 IT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첨단기술이 인류의 미래를 어떻게 바꿔놓을지를 예측한 책 ≪무인자동차 안의 운전자(The Driver in the Driverless Car)≫가 지난 4월 출간돼 호평받고 있으며 10월 한국어판이 나온다.
실리콘밸리=송형석 특파원 clic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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