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포럼] 우리에게 변화의 능력은 있는가

입력 2017-09-06 19:00  

국제경쟁력 80위권 밖인 한국 대학·은행들
구글·알리바바 못만드는 '초라한' IT 강국
변화의 고통·리스크 없이 미래 선도 못해

박수용 < 서강대 교수·컴퓨터공학 >



얼마 전 어느 세미나에 참석했는데 한 원로 교수께서 한국 대학과 금융회사에 두 가지 비슷한 점이 있다고 한 말씀이 생각난다. 첫째는 두 기관 다 한국에서는 해당 분야에 똑똑하다고 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다는 것이고, 둘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기관 공히 국제적인 경쟁력이 80위권 밖이라는 것이다. 물론 구체적인 숫자가 다소 다를 수도 있고 그런 순위가 우리가 인정할 만한 기관의 평가인 것이냐는 등 여러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하여튼 이런 얘기는 우리는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조직이 그렇지 않은 다른 조직보다 되레 세계무대에서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아이러니를 시사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다른 조직은 모르겠으나 한국 대학들은 최소한 각각의 교수 수준을 보더라도 해외 유수 대학에 비교해 결코 떨어지지 않는데, 한국의 전체 대학 경쟁력은 국가의 세계적인 위상이나 경제규모 등에 비춰보건대 상당히 떨어져 있는 것은 사실인 것 같다.

이런 현상의 원인은 여러 가지로 분석할 수 있고, 그동안 이런 문제에 대해 많은 의견이 있었으나 두 기관 공히 변화가 필요 없는 지위에 있었다는 것이 그 원인 중 하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한국은 국가 위상에 걸맞은 세계적인 기업이 많이 있고 그 기업들의 경쟁력은 여전히 세계시장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다. 이들 기업은 변화하지 못하면 살아남을 수 없는 냉혹한 세계시장에서 처절하게 변화하면서 그 경쟁력을 키워왔다. 그러나 대학이나 은행들은 안정적인 수요 속에 정부가 보호하고 있었고 굳이 변화하지 않아도 조직을 영위하는 데 부족하지 않은 환경에서 자라왔다. 이런 안정성이 인재를 모이게 하는 유인책은 됐으나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고 성장하는 데에는 되레 독이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2000년대만 해도 정보기술(IT) 강국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국가가 한국이었다. 그 당시 인터넷 붐과 함께 국내 인터넷 관련 산업이 발전하고, 모바일 시대와 함께 국내 대기업인 삼성 LG 등의 약진으로 한국의 IT 강국 이미지는 더욱 빛나던 시절이었다. 우리는 좁은 국토 면적으로 통신 인프라 구축이 타 국가에 비해 저렴하게 이뤄져 2G, 3G 등과 같은 그 당시 새로운 통신 기술을 과감하게 적용함으로써 더 빠르고 편리한 통신망을 구축할 수 있었다. 국민들의 신기술에 대한 적응력과 파생력 또한 높아 13분기 동안 세계 1위 광대역 인터넷 보급률과 인터넷 속도를 자랑하게 됐다.

하지만 기술 변화와 함께 구글 아마존 알리바바 같은 기업들의 약진으로 IT의 중심이 하드웨어(HW)에서 소프트웨어(SW)로 옮겨가기 시작했다. 우리의 IT산업은 이런 변화를 제대로 따라잡지 못한 결과 지금은 세계 100대 SW 기업 중 한국 기업은 하나도 없는 초라한 성적표를 내고 있으며 이제는 한국이 더 이상 IT 강국이 아니라는 얘기가 곳곳에서 들리고 있다. 초기 IT산업이 붐을 이뤘을 당시의 성취감에 도취돼 기술 변화를 제대로 좇지 못한 것이 이런 결과를 낳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 인간은 근본적으로 안정을 추구하고 변화를 거부하는 인자가 있다는 얘기를 하기도 한다. 사실 변화라는 것은 고통이고 리스크이기도 하다. 그러나 변화 없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우위를 점할 수 있을까. 리스크를 꺼리고, 새로운 기술이나 트렌드를 잘 분석해 먼저 적용하기보다 선진국의 사례를 찾고 다른 곳에 적용해본 근거를 요구하는 정부나 기업 문화에서 과연 우리 신생 기업들이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고 사업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우리끼리 하는 얘기일 수도 있으나 한국 국민들이 다른 나라에 비해 머리가 좋고, 고교생의 학력 수준이 다른 선진국보다 우수하다는 등 우리가 똑똑한 국민임을 자부하는 얘기를 많이 하곤 한다. 그러나 우리의 똑똑함이 진정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혁신적인 기술을 만들어내고 시대의 변화를 주도하는 똑똑함인지, 아니면 안정을 추구하고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똑똑함인지 한번쯤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지능의 척도는 변화하는 능력’이라는 아인슈타인의 말이 떠오른다.


박수용 < 서강대 교수·컴퓨터공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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