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현대 경제를 추적한다 …고도 성장기부터 아베노믹스까지
평소 알고 지내는 지인들의 자제 중에 일본에서 회사를 다닌다는 사례를 최근 많이 접하고 있다. 주요 대학이나 학원가에서는 학생들이 스터디 모임을 만들어 일본 기업 취업을 준비한다는 얘기도 들린다. 올 들어 두 차례 방문한 일본 현장에서도 젊은이들이 일할 곳이 많고, 기업들이 구인난을 겪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재수 총리' 아베 신조가 두 번째로 총리직에 오른 것은 2012년 말이다. 아베 총리가 취임하기 직전 해인 2011년 3월11일, 동북 지역에서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했다. 당시 2만여명 이상이 숨지거나 실종됐다.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의 방사능 누출 공포는 지금도 진행형이다.
당시 지진 현장 인근에서 일주일동안 머무르며 지켜봤던 일본 사회는 '참혹' 그 자체였다. 일본 경제는 이제 완전히 망가져 '정상 국가'로의 회생이 어려울 것이라는 국내외 언론들의 보도도 줄을 이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패전국에서 1970~80년대 세계 최고 경제 강국으로 일어선 일본.
1990년 이후 20여년의 장기침체를 겪은 뒤 다시 재도약하고 있는 일본과 일본 경제의 경쟁력 비결을 무엇일까. 한국 경제와 우리나라 국민을 위해 일본을 어떻게 바라보고 활용할 것인가.
시사일본어학원과 한경닷컴이 손을 잡고 9월 개설한 '시사일본경제'가 해답을 주고 있다. 일본 경제를 단면이 아닌 입체적으로 분석해 일본를 객관적으로 짚어보자는 취지에서다.
9월7일 저녁 시사일본어학원 강남캠퍼스에서 세 번째 강좌 '아베노믹스와 2017년 일본경제'가 진행됐다. 최인한 한경닷컴 이사(일본경제연구소장)의 이날 강의안을 요약한다.
▲아베노믹스의 정의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성 '아베'와 '이코노믹스'의 합성어 ‘'아베노믹스(Abenomics)'
는 아베총리의 경제 정책을 뜻한다. 아베노믹스는 두 가지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다. 2012년 12월 두 번째로 총리직을 맡은 아베의 경제정책과 집권 자민당 파벌정치의 산물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일본 집권 자민당에는 정치 지도자를 중심으로 하는 여러 파벌이 존재한다. 아베노믹스는 아베 정권의 주역인 아베 총리와 아소 다로 부총리 겸 재무상, 정치 자금 수수로 2016년 물러난 아마리 아키라 전 경제재생담당 대신 3인의 공동 경제정책이다.
‘강한 일본의 부활’을 내세우며 총리 자리에 다시 오른 극우 성향 아베 총리의 인물 됨됨이와 정치노선을 알면 그의 경제 정책인 ‘아베노믹스’를 훨씬 잘 파악할 수 있다. 아베 총리는 2006년 9월 52세로 일본 역사상 최연소 총리에 올랐으나 정치 경험 부족과 경제정책 실패로 1년 만에 퇴진했다. 그는 절치부심 끝에 2012년 12월 재집권에 성공한 뒤 일본경제의 부활을 내걸고 ‘아베노믹스’를 강력하게 이끌고 있다.
▲아베노믹스의 주요 정책, 세 개의 화살
아베 총리의 재집권 이전 일본경제 상황을 잠시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당시 시대 상황을 깊이 관찰하며, 아베가 두 번째로 총리에 오르고 아베노믹스를 추진한 배경을 알 수 있다. 아베 총리 취임 이전 일본내에서는 5년 동안 총리가 6명이나 바뀌고 경제는 ‘뭘 해도 안 된다’는 패배주의가 만연했다.
2011년 3월11월 동일본대지진까지 겹쳐 국민들 사이에 일본경제 비관론이 팽배했다. 대지진 발생 이후 일본 기업들은 엔고(엔화 강세), 세계 최고 법인세율(40%), 비싼 전기료, 부진한 자유무역협정(FTA), 탄소감축 비용, 경직된 노동시장 등 ‘6중고’를 호소할 정도로 일본경제의 미래는 매우 불안정했다. 1990년 이후 장기침체를 겪고 있던 일본이 이제 완전히 회생 불능 상태로 빠지는 게 아니냐는 분석과 전망들이 국내외에서 쏟아졌다.
이런 경제 위기 속에 총리에 취임한 아베가 내세운 경제정책이 아베노믹스이다. 흔히 아베노믹스는 세 개의 화살로 비유된다. 첫 번째 화살인 대담한 금융완화 정책, 두 번째가 기동적인 재정정책, 세 번째가 민간투자 유도를 통한 성장 전략이다.
아베 정권은 세 개의 화살을 통해 일본경제 부흥을 꾀하고 있다. 대규모 양적완화를 통한 엔화 약세- 재정정책을 통한 실물 부양- 신성장 동력 순이다. 집권 5년차를 맞은 아베노믹스의 효과는 예상보다 크고 상당히 성공적이라는 평가가 많다. 이전 정권에선 경제 정책들이 서로 상충되는 게 많았는데, 아베 정권 아래 재정과 통화정책을 일관성 있게 병행해 결과물이 나타나고 있다는 분석이다.
첫 번째 화살인 대담한 금융정책으로 금리를 낮추고 돈을 풀어 엔화 약세를 유도하는 통화완화 정책이다. 엔화 약세로 기업들의 수출 확대를 통한 경제 활성화가 상당한 성과를 내고 있다.
두 번째 화살인 재정정책을 통해 정부지출을 늘리고, 국내 총수요를 확대해 내수 경기 회복을 시도해 상당한 결실을 맺고 있다. 2017년 하반기 현재 두 번째 화살에 이어 민간투자 유도를 통한 경제 성장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단계이다.
▲아베노믹스는 성공했나
아베노믹스는 임시 방편의 정책으로 일본 경제의 근본적인 경쟁력 상승이나 생산성 향상을 가져오지 못하고 있다는 일부 비판도 있다. 하지만 수출 증가, 임금 상승, 일자리 증가 등 가시적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 많은 기업들이 인력난을 호소할 정도로 일자리가 넘쳐나고, 정부의 규제 혁파로 기업들의 창업과 투자 열기가 높아지는 등 결과물이 나오고 있다. 국민들이 다시 자신감을 갖고 경제성장에 동참하고 있고, 해외에서 일본경제에 대한 평가가 좋아지고 있는 것도 가시적인 성과로 꼽힌다.
주식 부동산 등 자산 가격 상승세도 이어지고 있다. 일본 내에서도 아베정권 초기엔 아베노믹스 효과를 크게 기대하지 않았으나 최근 부식, 부동산이 오르면서 국내외 투자자들의 관심이 커지고 있다. 부동산시장도 아베 효과로 살아나고 있다.
일본 국민들이 다시 하면된다는 자신감을 되찾은 게 가장 큰 성과이다. 정부 발표에 따르면 2017년 8월 기준 유효구인배율(기업의 구인수를 구직자 수로 나눈 숫치)은 1.51에 달해 43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는 1인당 일자리가 1.51개라는 뜻으로, 일본의 버블 경제 시기보다도 일자리가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경기가 호전되면서 일자리가 크게 늘어난 것만 봐도 아베노믹스는 상당한 성과를 내고 있다.
▲일본 경제의 향후 전망은 … 뜀박질 성장하는 일본
오는 2020년 도쿄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사회 인프라 및 경기장 건설 등 올림픽 특수도 있어 일본 경제 회복세가 이어질 것으로 보는 전문가들이 많다. 실제로 올 들어 일본 기업들의 실적이 크게 개선돼 경제 성장세도 본격화하는 양상이다.
올 2분기(4월~6월) 일본 경제 성장률은 1.0%를 기록했다. 연율로 환산하면 4.0%에 달한다. 당초 예상치 0.6%(연율 2.5%)를 크게 뛰어넘는 ‘성장 서프라이즈’라고 할 만하다. 일본 경제는 지난해 1분기부터 여섯 분기 연속 성장해 11년 만에 가장 긴 경기 확장세를 보이고 있다. 일본 내에선 ‘연속 안타 뒤 홈런’이란 평가가 나올 만큼 고무돼 있다.
일본 경제 회복은 수출 부진(-0.5%) 속에서도 개인소비(0.9%), 설비투자(2.4%) 등 내수가 견인했다는 평가다. 경제 성장 기여에서 부진한 수출부문을 내수로 만회하는 형국이 됐다. 요즘 일본에선 구직자 1인당 일자리 수(유효구인배율)가 1.51개에 달할 정도로 고용이 좋은 상황이다. 기업들의 스마트 설비 교체 수요와 일손 부족을 메꾸기 위한 투자도 활발하다.
▲일본 기업들, 올해 실적 좋아졌다
올 1분기 일본 기업의 경상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26.6% 급증했다. 증가폭은 2013년 4분기 26.6% 이후 최대 규모다. 일본의 1분기 기업매출도 전년 같은 기간보다 5.6% 증가해 역시 전분기(2.0%)보다 증가 폭이 확대됐다.
일본 도쿄증권거래소 1부 상장기업들이 내년 3월 종료되는 2017회계연도 최종이익합계가 전년보다 7.3% 늘어나면서 사상 최고를 경신할 것으로 예상된다. 마이니치신문에 따르면 일본 상장기업들은 엔화 가치 하락과 해외 경제 회복에 힘입어 제조업을 중심으로 예상 실적을 상향 조정하고 있다.
SMBC닛코증권이 2017년 4∼6월 결산을 공개한 3월 말 연간결산 기업 936곳을 집계했다. 이는 상장기업 전체의 3분의 2에 해당한다. 나머지 기업을 고려해도2017회계연도 최종이익은 사상 최대에 이를 전망이다. 이익 전망치를 상향한 기업은 고베제강소, 미쓰비시전기 등 70곳 정도이다. 2017년 4∼6월 최종이익 합계는 전년 동기보다 32.6% 늘었다.
2016년에는 영국의 유럽연합(EU) 이탈 국민투표 충격으로 주가가 급락하고 엔화 가치가 달러당 99엔 선까지 치솟아 엔화 강세·달러화 약세가 진행됐다. 올해에는 그에 대한 반동으로 엔화 하락 효과가 컸다.
업종별 2017회계연도 전망을 보면 철강이 전년보다 69.7% 급증할 전망이다. 원자재 가격 강세 영향을 받고 있다. 전기전자 수익 전망치도 엔화 가치 하락에다 아시아 설비투자 수요까지 가세해 22.5% 늘었다. 자동차 등 수송용 기기는 견조하던 북미시장이 한계점을 노출하면서 1.7% 늘어나는데 그쳤다. 소매업은 외국인 여행자들의 소비 증가 영향으로 14.3%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비해 일손 부족으로 인건비 부담이 늘어난 육상운수와 건설은 각각 3.0%, 0.4%씩 감소했다. SMBC닛코증권 이토 게이이치 수석분석가는 “미국 트럼프 정부의 정책 수행 능력이 문제시될 경우 다시 엔고로 돌아서 실적이 악화할 우려가 있다”고 전망했다. 세계경제가 다시 약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이들 우려가 현실화되면 일본 상장사들의 실적 향상에도 제동이 걸릴 수 있다.
업종별로는 세계적인 반도체시장 호황에 힘입어 반도체 관련 업체들의 실적이 좋다. 사물인터넷(IoT) 수요의 급속한 확대 덕분이다. 반도체제조장치 대기업 도쿄일렉트론은 아시아 상대 판매가 늘어 4∼6월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보다 2.5배 정도 늘었다. 요시다 겐이치로 소니 부사장은 “반도체 사용처가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건설기계도 중국 정부의 경기 대책에 의한 인프라스트럭처 투자 등의 혜택을 받아 실적이 좋다. 히타치건기와 고마쓰의 중국 관련 매출은 거의 두배 늘었다. 세계적인경기 회복은 비제조업에도 파급했다. 일본항공은 비지니스맨의 해외 출장 증가에 따라 국제선의 장거리편이나 비즈니스클래스 이용이 늘면서 고객당 단가가 크게 향상됐다.
▲아베노믹스, 부작용은 없나
아베노믹스에 대해선 긍정과 부정의 시각이 존재한다. 돈을 풀어서 엔화 약세를 만드는 것이 일부 수출기업에 도움이 될 수 있지만, 내수 기업과 소비시장에 타격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베노믹스 5년차를 맞아 일본 경제성장세가 회복되고, 소득과 일자리가 늘어나는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오는 2020년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사회 인프라 투자도 늘고, 해외기업의 대일투자와 일본 관광 등도 증가해 경기 회복세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최인한 일본경제연구소장 janu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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