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접란(胡蝶蘭)은 동남아시아가 원산지인 난초다. 활짝 핀 꽃잎이 나비를 닮았다 해서 한자 ‘나비 접’이 이름에 붙었다. ‘행복이 날아온다’는 꽃말을 갖고 있다. 한번 꽃이 피면 두 달에서 길게는 세 달까지 지지 않는다. 실내에서도 잘 자라 선물용으로 인기다.
충남 태안군에서 30년 동안 호접란을 키우고 있는 칠순의 ‘호접란 명인’을 지난달 만났다. 박노은 상미원 대표(70)다. 그는 호접란 묘목을 전부 수입해 기르던 1990년대부터 국산 품종 개발에 매달렸다. 지금까지 그가 개발한 품종은 모두 12종. 이제 러시아, 베트남, 잠비아 등 가난한 외국 농민들에게 자신의 재배 기술을 전수하고 있다. 박 대표의 꽃 인생 스토리를 들어봤다.
서해에서 2.5㎞ 가량 떨어진 태안군 태안읍 송암1리에 자리 잡은 야트막한 언덕. 오르막길을 따라 올라가자 2층 온실들이 눈에 들어왔다. 원래 서울 송파구와 경기 남양주시에서 화훼농사를 짓던 그는 1988년 보름 가량 전국을 누빈 끝에 이곳을 새로운 터전으로 정했다. 그는 “바다쪽으로 튀어나온 태안반도는 해양성 기후라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해 꽃을 키우기에 적합하다”고 설명했다. 상미원은 온실 600평(1980㎡), 조직배양실 100평(330㎡), 순화실(옮겨 심은 묘목을 자연광에 적응시키는 공간) 100평(330㎡) 규모로 구성돼 있다.
박 대표가 처음 꽃 농사를 짓기 시작한 건 서른두 살이던 1979년부터다. 화훼농사를 짓던 형과 당숙을 따라 농사의 길에 접어들었다. 첫 농장은 지금의 서울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공원 자리였다. 그 일대가 개발되면서 경기 남양주시로 농장을 옮겼다. 처음엔 남들처럼 주로 동백나무, 석류나무, 관엽식물을 길렀다.
호접란을 키운 건 1986년부터다. 호접란이 국내에 본격 소개된 지 2~3년 밖에 안된 시점이었다. 서양란이란 이름으로도 불렸다. 익숙한 꽃 대신 낯선 화초를 기르기로 선택한 이유가 뭘까. “호접란은 육종이 잘 되는 식물이에요. 새로운 품종이 굉장히 많아요. 원종(原種·교배하지 않은 자연상태의 종)만 해도 100종이 넘어서 서로 교배시키면 다양한 품종을 얻을 수 있어요. 화훼식물로 적합하죠. 실내식물로 키우기도 좋아요. 사람이 일반적으로 생활하는 온도에서 잘 자라고 그늘을 좋아해서 집안에서 키우기도 딱이에요.”
박 대표는 국내에서 호접란 재배의 일인자란 평가를 받는다. 그동안 쌓아온 기술력과 재배 노하우 덕분이다. 그는 1995년 호접란 조직배양을 시작해 1998년에는 자신이 개발한 품종을 시장에 내놨다. 조직배양이란 꽃을 복제하는 절차다. 육종으로 마음에 드는 새 꽃 품종을 만들었더라도 그 꽃씨를 받아다 그대로 심을 순 없다. 꽃씨를 그대로 심으면 씨앗마다 색상, 크기, 잎의 형태가 조금씩 다른 꽃들이 핀다. 동일한 특성을 갖춘 식물을 대량으로 길러내기 위해선 식물의 세포를 떼어내 유리용기 안에서 키우는 조직배양 과정을 거쳐야 한다. 정규 교육과정에서 유전공학과 원예학을 전공하지 않은 박 대표는 전문 서적을 읽으며 관련 기술을 독학으로 익혀나갔다.
박 대표는 “국내에서 호접란 묘목을 대량으로 생산하는 곳은 상미원이 거의 유일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연간 10만 본의 묘목을 화훼농가들에게 판매한다. 2000년대 중반에는 한 해에 50만~60만 본의 묘목을 미국으로 수출했다. 기술력을 인정받아 2014년에 농촌진흥청에서 선정하는 대한민국 최고농업기술명인(화훼분야)으로 뽑혔다.
현재 상미원 농장 운영은 박 대표의 아들인 진규 씨가 대부분 맡아 하고있다. 진규 씨는 학부에선 유전공학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선 원예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으며 가업 승계 준비를 해왔다.
농장 일에서 한걸음 물러난 박 대표는 몇 년 전부터 자신의 재배 기술과 노하우를 외국 농민들에게 전수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아직 화훼 기술이 발달하지 않은 외국의 농민들에게 자신이 쌓아온 호접란 재배 기술을 가르치면 그들이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지금까지 잠비아, 베트남, 러시아를 방문해 재배 기술을 가르쳤다.
2013년 아프리카 중남부에 있는 잠비아를 찾은 게 시작이었다. 해외로 나가 재배 기술을 가르칠 방법을 찾던 박 대표는 한 가톨릭 봉사단체가 잠비아로 떠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봉사단체를 찾아가 자신의 목적을 설명한 그는 동행해도 좋다는 승낙을 받고 자비를 들여 잠비아로 향했다. 길지 않은 기간이었고 언어 장벽도 있었지만 잠비아 농민들에게 기본적인 호접란 재배 기술을 전수할 수 있었다.
“호접란이 원래 동남아시아 열대 지방에서 온 꽃이라 더운 곳에서 잘 자라요. 아프리카에서도 당연히 잘 자라죠. 잠비아에 갔더니 호접란이 있긴 한데 다 네덜란드에서 수입해온 거예요. 굶어죽는 사람도 있는데 돈 많은 부호들은 네덜란드에서 사온 꽃으로 집을 꾸미더라고요. 거기는 재배 환경은 좋은데 기술이 없어서 꽃을 못 기르고 있어요. 제가 가서 몇 년만 제대로 가르치면 그쪽 농민들이 꽃을 키워서 굶지 않고 먹고 살 수 있게 도와줄 수 있을 거 같아요.”
지난 7월엔 나흘 동안 러시아 연해주 우수리스크를 다녀왔다. 러시아에서 활동하는 한 개신교 선교단체의 부탁을 받고 고려인(러시아와 중앙아시아 국가 등에 살고 있는 한국인 교포)들에게 호접란 키우는 법을 전수하기 위해서다.
“몇 년 전에 한 선교사가 찾아와서 고려인 교포들이 호접란을 키우고 싶어한다고 모종을 구할 수 있냐고 했어요. 그때 공짜로 드릴테니 가져갈 수 있는 만큼 가져가서 일단 키워보라고 그랬죠. 어떻게 키우는지 기본적인 방법도 가르쳐주고요. 일 년 뒤쯤 연락이 왔는데 일부는 죽긴 했지만 잘 자라는 꽃들이 더 많다고 하더라고요. 그쪽 교포들이 좀 더 제대로 배우고 싶어한다고 해서 이번에 다녀왔어요. 러시아에선 팬지, 페투니아처럼 우리나라에선 흔한 꽃들도 굉장히 비싸게 팔려요. 호접란 포트 하나가 2만8000원이에요. 우리나라보다 소득은 훨씬 낮은데 말이에요. 꽃만 잘 키우면 고려인들이 잘 살 수 있게 되는 거죠.”
그는 지난해 11월엔 베트남 호찌민에 있는 농업 연구기관 AHTP의 초청을 받았다. 베트남 호찌민에 보름가량 머물며 농업 연구자와 농민들에게 호접란 재배 기술을 전수했다. 지난달엔 베트남 농업연구기관 직원들이 그의 농장을 찾아와 호접란 재배 기술 전수를 위한 MOU(양해각서)를 체결하고 돌아갔다.
그는 인터뷰 내내 “한국 화훼시장은 잘못돼 있다”는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꽃이 좋아서 꽃을 사는 사람보다는 체면치레 선물용으로 꽃을 사는 사람이 많다는 지적이다. “우리나라에선 자기가 보려고 꽃을 사는 사람이 생각보다 적은 것 같아요. 선물용이 여전히 주류를 이루고 있어요. 커다란 화분에 커다란 꽃을 심어서 빨간 리본을 달아서 보내죠. 그렇게 선물로 받은 꽃의 상당수는 그냥 죽여버리죠. 물도 안 주고 있다가 죽으면 버려버리는 경우가 많아요. 베트남 같은 곳은 우리보다 잘 살지는 못해도 사람들이 일상에서 꽃을 자주 사요. 집안에 조상을 모시는 공간이 있어서 거기다 꽃을 놔두려고 사는 경우가 많긴 해요. 그래도 가난한 사람들도 꽃을 사서 집을 꾸미는 모습이 부러웠어요.”
그는 사람들이 일상에서 조금 더 꽃과 가깝게 지낼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시도를 해왔다. 2000년대 초반에 품종을 개발한 ‘꼬마란’이 대표적이다. 기존 호접란보다 크기를 2분의 1에서 3분의 1가량으로 줄인 품종이다. 사무실 책상과 식탁 등에 편하게 놓을 수 있도록 크기를 줄였다.
“이제 농장은 아들이 운영하고 있어요. 오래 농사를 짓다 보니까 벌써 일흔이 됐네요. 이 정도 나이가 되니까 다른 사람들을 도와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지금 이만큼 잘 사는 것 자체가 굉장히 감사해요. 늙어서 못 움직이기 전에 내 기술과 정성을 다른 사람들한테 나눠주고 싶어요.”
태안=FARM 홍선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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