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엘리스섬의 드리머

입력 2017-09-07 18:18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1892년 새해 첫날, 아일랜드에서 온 증기선이 뉴욕항의 작은 섬 엘리스에 닿았다. 배에서 내린 15세 소녀 애니 무어는 그곳에 신설된 이민사무국의 첫 ‘손님’이 됐다. 이민감독관 존 웨버는 애니에게 10달러짜리 금화를 쥐어주었다. ‘꿈의 대륙’에 온 걸 환영한다는 의미였을까. 뜻밖의 선물을 받은 소녀의 표정엔 놀라움과 안도감이 교차했다.

엘리스섬은 1954년 말까지 62년간 ‘아메리칸 드림’을 품고 미국에 도착한 이민자들이 입국 심사를 받던 곳이다. 이곳을 소유했던 상인 새뮤얼 엘리스의 이름을 땄다. 1855~1890년엔 맨해튼의 작은 사무실에서 수속을 밟았지만, 아일랜드 감자 기근으로 이민자가 급증하자 정부가 이 섬을 사들여 전용 시설을 건립했다.

오랜 항해와 뱃멀미에 지친 사람들은 섬에 닿기 전 자유의 여신상을 올려다보며 미국에 도착한 것을 실감했다. 초기엔 입국 수속이 비교적 간단했다. 형편이 괜찮은 1~2등석 승객들은 배 위에서 간략한 검사만 받고 도시로 들어갔다. 3등석 승객들은 3~5시간씩 신원 확인과 신체검사, 검역 과정을 거쳐야 했다. 전염병 환자와 범죄자는 구금되거나 추방됐다.

이민 최전성기인 1907년엔 연간 100만 명이 이곳을 거쳐갔다. 심사 요건도 점점 까다로워졌다. 한때는 중국인 규제가 강화돼 먼저 정착한 가장들이 이산가족 신세를 면치 못했다. 어떤 사람에게는 ‘신세계의 문’이지만 어떤 이에겐 ‘통곡의 벽’이기도 했던 엘리스섬. 박물관으로 변한 이민국 건물에 수많은 역사의 흔적이 남아 있다.

주요 심사 장소였던 그레이트 홀에는 당시 이민자들의 유품과 여권, 사진, 배표, 인형 등이 전시돼 있다. 6·25 이후 급증한 한국인 관련 기록도 있다. 방파제 쪽에 있는 ‘명예의 벽’에는 이곳을 통과한 40만 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이 섬을 통해 미국땅을 밟은 이민자는 1200만 명이 넘는다. 이들의 후손이 미국 전체 인구의 절반을 차지한다.

존 F 케네디와 로널드 레이건, 버락 오바마 등 미국 대통령의 50%가 아일랜드 혈통이다. 미국의 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자 3분의 1 이상이 이민자다. 트럼프 대통령도 독일계와 스코틀랜드계 이민 집안에서 태어났다. 부인 멜라니아 역시 슬로베니아 태생이다.

그런 트럼프가 부모 따라 이민 와 불법 체류자가 된 청년 80만 명을 추방하겠다고 하자 미국 사회가 발칵 뒤집혔다. 가장 강하게 반발하는 곳은 실리콘밸리다. 다국적 인재의 집합체인 400여 기업의 최고경영자가 일제히 반대 성명을 냈다. 그러고 보니 애플의 스티브 잡스와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 마이크로소프트의 사티아 나델라도 이민자 출신이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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