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키맨 리스크'에 노출된 국민 재산

입력 2017-09-07 18:28  

유창재 기자 yoocool@hankyung.com


[ 유창재 기자 ] 기관투자가들은 위탁운용사를 고를 때 수익률 등을 따져보는 정량평가 못지않은 비중으로 정성평가를 한다. 해당 운용사가 리스크 관리 체계를 잘 갖췄는지, 조직 문화는 건전한지 등을 꼼꼼히 살핀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하게 점검하는 것이 이른바 ‘키맨(key man) 리스크(위험)’다. 경영진이나 핵심 운용역이 수시로 바뀔 위험이 있는지를 보는 항목이다.

예를 들어 세계 최대 사모펀드 운용사인 미국 블랙스톤에 돈을 맡기는 사람들은 창업자인 스티븐 슈워츠먼 회장의 투자 및 조직운영 능력을 신뢰해 블랙스톤을 선택한다. 그가 언제라도 그만둘 위험이 있다면 투자자들은 블랙스톤에 투자금을 맡기는 걸 꺼릴 수밖에 없다.

120조원의 외환보유액을 운용하는 한국투자공사(KIC)나 600조원의 국민연금 기금을 운용하는 국민연금공단은 국민들이 소중한 재산을 맡긴 위탁운용사라고 할 수 있다. 이 기관들이 민간운용사였다면 정성평가에서만큼은 최악의 점수를 받을 게 분명하다. 키맨 리스크가 크기 때문이다.

7일 새 수출입은행장으로 내정돼 자리를 옮기게 된 은성수 KIC 사장은 임기가 1년4개월이나 남았다. 공무원 출신인 은 사장으로선 KIC보다 큰 조직인 수출입은행장으로 가는 게 축하받을 일일지 모른다. 그러나 국민들 입장에선 정권이 바뀌면 다른 자리를 찾아 떠나는 공무원 출신 KIC 사장은 그 자체로 리스크 요인이다.

세계 3대 연기금 중 하나인 국민연금의 키맨 리스크는 더 크다. 이사장 자리는 문형표 전 이사장이 최순실 사태에 연루돼 구속된 지 9개월이 지나도록 공석이다. 기금운용본부장도 강면욱 전 본부장이 사퇴한 지 2개월이 다 돼 가지만 공모 절차도 시작하지 못했다. 두 자리 모두 추천위원회가 추천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정부가 누구를 내려보낼지 결정하지 못한 게 리더십 공백의 이유라는 사실을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

자리 만들기에 급급한 공무원들, 국민 재산을 쌈짓돈으로 여기는 정치인들 때문에 한국 운용업계는 덩치만 커졌을 뿐 후진국 수준에 머물고 있다. 국민들은 수백조원의 재산을 맡기면서도 키맨 리스크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

유창재 기자 yoocoo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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