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춘호의 글로벌 Edge] 경계 허무는 자동차 부품 생태계

입력 2017-09-07 18:33   수정 2017-09-08 09:15

오춘호 선임기자·공학박사 ohchoon@hankyung.com


[ 오춘호 기자 ] 일본 소재·부품업체들의 변신이 눈에 띈다. 전기차나 자율주행차시장을 향한 변신이다. 기존 자동차 부품업체는 물론 전자·섬유·제지업체까지 이 시장을 넘본다. 내연기관 차들은 2만~3만개의 부품을 갖고 있지만 전기차는 이들에 비해 20%가 줄어든다. 플랫폼이 완전히 다르다. 플랫폼이 바뀌면서 새로운 부품과 소재가 요구된다. 그 속에서 기존 자동차 부품 소재업체들은 다른 생태계로 출구를 모색하고, 다른 업종의 기업들이 전기차 시장을 기웃거린다.

섬유·제지도 자동차부품에 뛰어들어

전기차 부품 시장을 먼저 넘보는 주자는 전자기업이다. 전기차는 전자제품의 연장이라는 시각에서다. 소니와 파나소닉 등 세트업체들은 일찌감치 전기차 부품에 뛰어들었다. 니혼덴산(日本電産)이나 TDK, 알프스전기 등 전자 부품업체들의 자동차 부품회사로의 변신도 지난날의 얘기다. 이제는 의류·섬유·소재업체들이 나섰다. 전기차는 가볍고 강해야 한다는 점에서 이들 업체는 핵심 역량을 갖고 있다고 본다.

제지업체인 니혼세이시(日本製紙)는 아예 펄프를 나노미터 단위로 잘게 썰어 수지와 혼합해 특수 섬유를 만들었다. 강도가 철의 5배나 된다고 한다. 미쓰비시케미컬은 극세 아크릴섬유를 사용해 방음재 소재기술을 개발했으며 도레이도 방음재산업에 뛰어들었다. 자율주행차가 보급되면 차에서 영화를 보거나 음악을 듣는 시간이 늘게 되고 음향 문제가 중요해지기 때문이다.

정작 내연기관 부품 기업들은 다른 업종을 찾아 나선다. 방진 고무와 자동차용 호스업체 스미토모리코(住友理工)는 돌봄형 침대 매트리스를 만든다. 잠자는 사람의 체격과 자세를 독자 개발 센서로 맞춘 매트리스다. 엔진 점화 플러그의 세계적 기업이었던 일본특수도업은 핵심 역량인 세라믹 기술을 살려 의료 사업에 진출해 의료용 인공뼈 등을 만든다. 이미 쓰나미가 일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기업들이다. 지난날의 성공은 아무 쓸모없다는 것도 인식하고 있다.

위기와 기회가 동시에 찾아와

문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기업들이다. 일본 도요타시가 자동차 부품기업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이들 기업의 3분의 1이 자사 제품이 차세대 자동차에 쓰일 가능성이 없다고 답했다.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대답한 기업도 20%가 넘었다고 한다. “위기는 가까이 왔지만 실감하는 기업들이 적은 게 두렵다”는 일본 전문가들의 볼멘소리도 들린다.

이미 일본 자동차업계는 전자 부품기업들의 흥망을 옆에서 지켜봤다. 이들은 VCR(비디오카세트레코더)을 제조하는 데 쓰이는 1000개 이상의 부품을 모두 일본 기업이 직접 만들었다는 자부심에 넘쳤다. 하지만 그런 화려한 시대가 지나고 나서 부품업체들의 성쇠는 뚜렷했다. 독보적이고 유일한 기술을 가진 기업은 계속 살아있지만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기업은 지금 온데간데없다.

자동차 환경 변화를 둘러싼 모든 업종들의 몸부림은 실로 처절하다. 독일의 세계적 자동차 부품기업 콘티넨탈은 2023년 내연기관형 엔진에 대한 투자와 설계를 그만둘 것이라고 선언한 터다. 내연기관 기술이 계속 발전하겠지만 더 이상 경제적으로 정당화할 수 없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어제 일본 자동차 업체 스바루도 스웨덴 볼보에 이어 2020년에 디젤 엔진차 제조·판매를 중단하는 방침을 굳혔다고 한다.

한국 자동차 부품업체들은 과연 이런 판도 변화에 준비를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오춘호 선임기자·공학박사 ohch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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