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리스탄 굴리 지음 / 김지원 옮김 / 이케이북 / 504쪽 / 1만9800원
[ 마지혜 기자 ] 만약 숲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데 바위나 나무에 누리끼리하고 푸르뎅뎅한 페인트를 흩뿌려 놓은 자국처럼 보이는 지의류가 많이 있다면 안심해도 좋다. 균류와 조류를 둘러싸고 공생하는 식물군인 지의류는 햇빛과 수분, 공기의 질 등에 민감하다. 그래서 어두운 숲의 중심부보다 빛이 많이 들어오는 숲 가장자리에 많다. 다량의 지의류는 ‘머지않아 숲을 벗어날 수 있으니 기운을 내라’고 전해주는 셈이다.
자연은 우리에게 신호를 보내고 상황을 예측하거나 추론할 수 있는 단서를 준다. 《산책자를 위한 자연수업》은 ‘우리 주변에 널린 자연의 신호와 단서들을 알아보는 법’이라는 부제처럼 상황에 대한 정보를 주는 자연현상을 소개한다. 20년간 다섯 개 대륙을 탐험한 영국 출신 작가 트리스탄 굴리가 썼다. 그가 경험과 연구로 알아낸 850가지 ‘자연의 언어’를 담았다.
저자는 나무, 토양, 이끼, 버섯 등 땅에 속한 것들이 보내는 신호와 단서를 먼저 소개한다. 도보여행 중 토양의 색깔이 진한 땅을 밟았다면 기대해도 좋다. 토양은 색이 진할수록 유기물이 많이 들어 있고 영양분이 많다. 그 지역에는 풍부한 식물과 다양한 동물군이 있다고 추측할 수 있다. 나무들이 더 이상 자라지 못하는 수목한계선은 고도를 알려주는 길잡이다. 높은 곳으로 올라갈수록 나무는 낙엽수종에서 침엽수종으로 바뀐다. 고도가 더 높아지면 나무의 키가 작아진다.
네잎클로버 하나는 행운을 상징한다. 하지만 네잎클로버 여러 개가 한 군데 모여 있다면 다른 신호를 읽을 수 있다. 그 땅에는 이전에 제초제가 뿌려졌을 가능성이 높다. 제초제는 식물을 비정상적으로 자라게 한다. 귀뚜라미 울음소리는 일종의 온도계다. 귀뚜라미는 섭씨 13도에서 1초에 한 번 울고 기온이 올라갈수록 우는 횟수가 늘어난다.
식물은 광물과도 연관이 있다. 길가나 밭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잡초 쇠뜨기는 금의 지표식물이다. 금을 비롯한 중금속을 흡수해 축적하는 능력이 뛰어나 금광맥을 찾고 금광의 채산성을 가늠하는 데 쓰인다. 쿠션벅휘트라는 식물은 은, 발로지아칸디다라는 식물은 다이아몬드가 있는 곳에서 자란다.
저자는 별과 해, 달 등 하늘에 속한 것에도 시선을 돌린다. 바다, 강, 호수 등 물가에 남은 흔적도 살핀다. 저자가 인도네시아 보르네오제도에서 현대 문명과 떨어져 살면서 오직 자연 속 단서에 기대 살아가는 다약족과 도보여행을 한 이야기도 실려 있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쓴 유홍준은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고 했다. 이 책을 읽은 뒤 자연을 보면 이전에는 봐도 보이지 않았던 것이 속속 눈에 들어올 수 있다.
마지혜 기자 look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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