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4년 서울에서 태어난 그는 1961년 ‘5인의 해병’으로 데뷔했다. 1977년 마지막 연출작 ‘영광의 9회말’을 내기까지 16년 동안 66편의 영화를 연출했다. 신성일 엄앵란이 주연한 청춘영화 ‘맨발의 청춘’을 비롯해 ‘용사는 살아 있다’(1965) ‘124 군부대’(1970) 등의 전쟁물, ‘오늘은 왕’ ‘친정어머니’(1966) 등의 가족드라마, ‘대괴수 용가리’(1967) 같은 공상과학(SF)물까지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선보여 한국영화의 스펙트럼을 넓혔다는 평가를 받았다.
연출 현장을 떠난 뒤엔 서울예술대에서 후진을 양성하는 데 힘을 쏟았다. 서울예술대 학장, 동랑예술센터 총감독, 영상물등급위원 등을 지냈다.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대한민국예술원 연극·영화·무용분과 회장을 맡았다. 1962년 제1회 대종상 신인감독상(1962)을 수상했고 2003년 옥관문화훈장을 받았다.
유족으로는 부인 안숙영 씨와 아들 영재·영기씨, 딸 은아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3호실에 마련됐다. 발인은 9일 오전 11시, 장지는 경기 남양주시 모란공원.(02)2227-7500
마지혜 기자 look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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