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근호 기자 ] 지난해 7월11일 서울 역삼동 한 17층짜리 빌딩에 간판이 새로 내걸렸다. ‘E&P 타워’란 간판이 내려가고 ‘코스토리 타워’란 간판이 붙었다. 이 빌딩의 새로운 주인이 된 화장품 회사 코스토리의 이름을 딴 것이다.
6년 전 강원 원주시의 작은 사무실에서 출발해 서울 강남 한복판에 사옥을 마련한 이 회사만큼이나 창업자 김한균 대표의 삶도 극적이다. 어렸을 때부터 화장품이 좋아 화장품 매장 아르바이트를 하고, ‘완소균이’란 이름으로 인기 블로그를 운영했던 그는 이제 연매출 1000억원대 회사를 운영하는 어엿한 사장이 됐다.
코스토리 타워에서 만난 그는 “‘아시아의 로레알’이 되겠다”고 했다. 그의 나이 올해 32세. 지난 6년간의 성과를 볼 때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
어릴 적부터 화장품 좋아했던 소년
그는 1985년 강원 원주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대학까지 나왔다. 중학교 때부터 파우치에 화장품을 넣어 늘 챙겨 다녔다고 한다. 선크림, 폼클렌징, 스킨, 로션 등이다. 그는 남중, 남고를 나왔다. 누나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남동생이 있을 뿐이다.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셔서 어머니는 개구쟁이 아들이 항상 단정하게 다녔으면 했습니다. 자연스럽게 어렸을 때부터 화장품을 발랐죠.”
그는 고등학교에 올라가면서 본격적으로 화장품을 바르기 시작했다. 소망화장품에서 ‘꽃을 든 남자’라는 남성 화장품이 나와 한창 인기를 끌 때였다. 여드름 때문에 고민이 많았던 그는 갖가지 화장품을 얼굴에 발라보고, 팩도 하고, 잘 때는 세안제로 꼼꼼히 얼굴을 닦아냈다. 그는 “그때 안 써본 화장품이 없다”며 “수입품까지 찾아 썼다”고 했다.
고등학교 3학년 때는 원주 시내에 있는 에뛰드 매장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다른 화장품 매장에선 남자라서 안 된다고 할 때 유일하게 받아준 곳이었다. 분홍색 앞치마를 하고 3년을 일했다. 고등학교 때 화장품에 빠진 그를 보고 어머니가 운 적도 있다고 한다. “제가 너무 과하게 화장품을 좋아하니 아들이 성 정체성에 혼란을 겪고 있는 건 아닌지 오해하신 거죠. 어머니께 학원비를 받아 화장품을 사고 피부관리사 학원에 다닌 적도 있거든요.”
군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공군에 입대하고 선임들이 물었다. “너는 뭘 잘하니?” 그는 “화장품을 잘 안다” “피부관리사 자격증이 있다”고 했다. “병장 될 때까지 생활관 청소를 거의 안 했어요. 제대 앞둔 선임들 팩해주고 피부 상담해주고 화장품 추천해줬어요. 그때 ‘5생활관 에스테틱’이라고 불렸죠.”
제대 후 대학 시절 시작한 것이 완소균이라는 뷰티 블로그다. 직접 얼굴에 화장품을 바르고 사진과 함께 후기를 올렸다. 블로그 방문자가 하루 5000여 명, 많게는 1만여 명일 때도 있었다. 2009년 네이버 파워 블로그로 선정됐다. “블로그 활동은 2년 전에 접었는데 마지막이 2148번 째 후기였습니다. 화장품을 5000개 이상 썼다는 뜻이에요.” ‘뷰티 파워 블로거’ ‘화장하는 남자’로 유명해지면서 인터뷰도 많이 하고, TV 방송에도 출연했다고 한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와 tvN ‘화성인 대 화성인’ 등이다.
딸 위해 만든 유기농 오일 입소문
그는 대학 4학년 때 일찌감치 취직했다. 첫 직장은 아모레퍼시픽 자회사인 에뛰드였다. 서울 용산에 있던 본사로 출근했다. 이후 이니스프리, 네오팜 등으로 옮겨 브랜드매니저(BM)로 화장품 상품 기획을 했다. 미국 소셜커머스 업체인 그루폰이 한국 법인을 열 때 다시 직장을 옮겼다. “그루폰에선 온라인 전자상거래를 배울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곧 제 일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죠. 제가 좋아하는 것은 화장품이고 계속 화장품 일만 하고 싶었거든요.”
다시 화장품 회사로 돌아가긴 모호한 상황이었다. 2011년 고향 원주로가 직접 화장품 회사를 세우기로 했다. 자본금 300만원을 들고 원주 상지대 창업보육센터에 작은 사무실을 마련했다.
그해 12월 남성 전용 화장품 브랜드 ‘완(whan)’을 선보였다. 큰 화장품 회사에서 일했고 오랫동안 소셜미디어 활동을 했기 때문에 화장품 브랜딩에는 자신있었다. 서울 청담동에서 멋지게 론칭 행사도 열었다. 뷰티 파워 블로거이자 《완소균이 그루밍북》의 저자인 그가 내놓은 화장품에 사람들의 관심도 적지 않았지만 이 브랜드를 성공적으로 안착 시키지는 못했다.
이듬해 3월 그는 ‘아빠가 만든 화장품’이란 브랜드를 새로 선보였다. 제품은 천연 재료로 만든 아기 오일 한 종류였다. 그해 2월 태어난 첫째 딸을 위해 만든 제품이었다. 지금 ‘파파레서피’라는 브랜드 아래 ‘딸바보 유기농 호호바 오일’이라는 이름으로 팔리는 제품이다.
“태어난 딸이 아토피까지는 아니지만 심한 건성 피부였어요. 태열도 심했죠. 저도 어릴 때부터 피부가 안 좋았는데, 날 닮아 그런가 미안한 마음도 들었어요.” 그는 직접 만든 유기농 오일을 아이에게 발라주고, 그 과정을 블로그에 올렸다. 오일 덕분인지 딸의 건선은 차츰 나아졌다. 그와 함께 오일도 100개, 500개, 1000개씩 날로 판매량이 늘었다. 이를 바탕으로 샴푸와 로션도 출시했고, 아기 제품으로 한 달 매출이 1000만원을 넘어섰다.
한 달 매출이 1000만원이 넘어도 남는 것은 100만원이 안 됐다고 한다. 그는 “2012년까지는 회사 일을 하면서 밤이나 주말에는 피자 배달도 하고 아는 형네 가게에서 주방 일도 해야 했다”고 말했다. 하루 2시간 자고 일하러 나가는 날이 수두룩했다. 직원 두 명에게 월급을 밀리지 않고 꼬박꼬박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는 “아버지가 사업을 하다 잘 안 돼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며 “이번에 사옥 매입을 위해 은행 대출을 받은 것 말고는 한번도 은행 대출을 받지 않고 버텼다”고 했다.
입소문이 나면서 매출은 계속 늘었다. 김 대표는 당시 고객 상담 전화를 직접 받았다고 한다. 1시간 가까이 통화하기도 했다. 제품 문제뿐 아니라 피부 고민까지 들어줬다. “그 시절 알게 된 고객 중 지금도 연락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때 아기를 낳았던 ‘수원이 엄마’는 지금 딸이 초등학교에 들어갔고, 고2 여고생이던 하은이는 지금 결혼했습니다. 이분들이 주변에 우리 제품을 널리 알려준 덕분에 지금의 코스토리가 있는 것 같아요.”
마스크팩으로 중국에서 대박 터뜨려
2014년 또 한번 도약의 계기가 찾아왔다. ‘봄비 꿀단지 마스크팩’이었다. 얼굴에 완벽하게 달라붙는 팩이 없다는 점을 노렸다. 얇은 천연 펄프에 꿀 추출물, 프로폴리스 추출물 등을 발랐다. 국내에서도 많이 팔렸지만, 중국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보였다. “중국 말로 봄비를 춘위(春雨)라고 하는데, 거긴 공기가 안 좋다 보니 봄비가 기름보다 귀하다고 해요. 상당히 좋은 이미지인 거죠.”
그는 “믿으실지 모르겠지만 중국에선 저도 한류 스타”라고 했다. 중국에서 소파파(젊은 아빠)라는 별칭으로 불리고,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微博)에서 팔로어가 10만 명이 넘는다. 얼마 전 중국 광저우 미용 박람회 때는 사인을 500개나 했다고 한다. 그는 중국을 알기 위해 한 달에 한 번 지금까지 60차례 중국에 갔다고 했다. “중국 사람처럼 입고 가서 중국 사람처럼 먹고 자요. 중국 길거리에서 파는 조금 기괴한 음식도 일부러 먹기도 하고요.”
그에게 화장품의 매력은 뭘까. 김 대표는 자신을 닮았다고 했다. 감성적인 측면과 이성적인 측면을 다 담고 있는 게 화장품이라는 것이다. 그는 “화장품은 좋은 재료를 쓰고 기능적으로 좋아야 하지만 그것만 갖고 잘 팔리는 상품이 될 수 없다”며 “사람의 마음을 끄는 감성적인 부분을 곁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의 목표는 코스토리를 ‘아시아의 로레알’로 만드는 것. 그는 “로레알은 랑콤, 비오템, 더바디샵 등 여러 브랜드를 갖고 있지만 직접 론칭한 브랜드는 4개뿐이고 나머지는 모두 인수합병(M&A)한 것”이라며 “코스토리도 앞으로 M&A에 적극 나설 계획”이라고 했다. 파파레서피, 아이엔지에이(INGA), 무스투스라는 브랜드를 직접 론칭한 코스토리는 띠땅 아기생활연구소를 인수하고 조인트벤처로 드레싱82를 설립해 브랜드를 5개로 늘렸다.
김 대표는 “지금은 우리가 코스토리 타워 두 개 층만 쓰지만 앞으로 우리 브랜드가 이 건물 전층을 쓸 수 있도록 회사를 키울 것”이라고 했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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