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정보 요구·원천기술 특허 공유 금지
기술유용 적발 땐 무조건 3배 손해배상
[ 임도원 기자 ]
“대기업이 ‘생산현장을 둘러보자’고 해서 보여줬더니 몰래 동영상을 촬영해 중국 업체에 넘겨 하도급을 맡겼더군요.”(중소기업 A사)
“기술 자료를 요청해서 줬더니 원사업자가 우리와 비슷한 제품을 자체 생산하고 있습니다.”(B사)
중소기업중앙회가 지난달 원사업자(대기업)로부터 기술 자료를 요구받은 경험이 있다고 밝힌 117개 중소기업을 심층 조사한 결과 드러난 사례들이다. 중소기업은 대부분 보복을 우려해 피해 사실을 공개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에 실제 피해 사례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이라는 게 중기중앙회 분석이다. 그러나 정작 기술 유용 처벌이 법제화된 2010년 이후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된 사례는 23건, 제재 또는 처벌이 이뤄진 사례는 15건에 불과하다. 기존 신고 위주의 사건 처리와 구멍 뚫린 법망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대기업의 중소 하도급업체 기술 탈취를 근절하기 위해 칼을 뽑았다. 김상조 공정위원장이 불공정 가맹사업·하도급·유통업 등에 이어 강조해온 ‘갑질 개혁 4탄’이다.
◆직권조사 면제 인센티브 없앤다
공정위는 8일 더불어민주당과 당정협의를 하고 이 같은 내용의 ‘대·중소기업 간 기술 유용행위 근절 대책’을 발표했다.
공정위는 변리사 자격증 등을 갖춘 기술전문인력을 집중 배치한 전담조직을 신설해 내년부터 업종별 직권조사에 나서도록 할 방침이다. 직권조사 활성화를 위해 동반성장협약평가 우수 대기업에 대한 직권조사 면제 인센티브를 없애기로 했다.
공정위는 동반성장위원회와 함께 매년 중소기업과의 상생협력에 힘쓴 대기업을 선정해 직권조사를 한시적으로 면제(최우수기업 2년, 우수기업 1년)해 준다. 2016년에는 최우수 25개, 우수 50개 등 75개 대기업이 면제 대상이었다. 공정위는 기존에 면제 기업이 많았던 순서로 기계·자동차업체를 내년에, 전기전자·화학업체를 2019년에, 소프트웨어업체를 2020년에 직권조사할 계획이다.
◆경영정보 요구 금지
공정위는 다음달까지 하도급법을 개정해 기존에는 처벌하거나 제재하기 어려웠던 기술 유용 행위들을 새로 규제 대상에 포함하기로 했다. 대기업이 하도급업체에 경영정보를 요구하지 못하도록 할 방침이다. 대기업이 제공받은 원가내역 등을 근거로 하도급업체가 1~2% 수준의 최소 영업이익만 내도록 단가를 인하하는 사례가 만연해 있다는 분석에서다.
하도급업체가 개발한 원천기술에 정당한 대가를 지급하지 않고 특허를 공유하는 행위도 금지하기로 했다. 기술 자료 유출도 새로 하도급법상 처벌 대상에 포함할 계획이다. 현행 하도급법에서는 정당한 이유 없이 원사업자가 하도급업체에 기술 자료를 요구하거나 유용하는 경우만 처벌하도록 하고 있다.
◆무조건 세 배 손해배상
공정위는 처벌 및 제재도 강화하기로 했다. 적발 업체는 경중을 가리지 않고 최고 수준의 과징금(5억원 상한)을 매기고 검찰에 고발한다. 피해 업체에 대한 현행 세 배 이내 손해배상도 무조건 세 배 손해배상으로 전환해 피해구제를 강화한다.
세 배 손해배상은 공정거래법 등 다른 법과도 연관된 사안이어서 이달 법집행 태스크포스(TF)를 꾸려 연관 법률 개정 방안을 논의할 계획이다. ‘납품 후 3년’으로 돼 있는 조사 시효도 7년으로 확대해 장기간 기술 유용에 대한 제재 및 처벌도 강화하기로 했다.
임도원 기자 van7691@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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