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눈길 끄는 SK 노사의 '임금 물가연동' 실험

입력 2017-09-10 18:30  

국내 최대 에너지·화학기업인 SK이노베이션이 의미 있는 ‘임금 실험’에 나섰다. 임금 인상률을 전년도 소비자물가 상승률에 연동시키기로 한 것이다. 올해 임금 인상률은 작년 물가 상승률인 1%로 정해졌다. 이로써 근로자들은 ‘차등 호봉 인상분+물가 상승률’로 실질임금을 보장받고, 경영진은 매년 장기간 협상으로 진을 뺄 필요가 없어졌다. 지난 8일 합의한 임·단협안은 조합원 투표에서도 73.6%의 찬성으로 가결됐다.

노사는 예기치 못한 부작용도 고려했다. 물가가 급등하더라도 정유·화학업종은 인플레 시기엔 실적이 둔화돼 성과급도 축소되는 특성이 있다. 임금총액이 회사 부담능력을 벗어날 가능성은 낮다는 얘기다. 대신 물가 하락 시엔 동일 업종·지역의 동향을 감안해 별도 협의하는 장치를 마련했다. 근로자 생애주기에 맞춰 생산성이 높고 교육비 등 자금수요가 큰 30~40대의 임금 인상률을 높이는 변형된 임금피크제도 합의했다. 임금체계가 한결 유연해진 것이다.

국내 대기업들의 경직적·비효율적 노사관계를 감안할 때 SK이노베이션 사례는 눈길을 끌 만하다. 강성 노조들은 생산성을 벗어난 고율의 임금 인상을 요구하고, 하투(夏鬪)를 연례행사처럼 벌였다. 과도한 임금인상과 갈등비용은 해당 기업은 물론 중소 협력업체와 비정규직, 지역경제로까지 전가되는 악순환이었다. SK이노베이션도 국가 기간 사업장이어서 파업에 제약이 있긴 해도, 울산의 다른 기업들처럼 임·단협이 순탄치 못했다.

원칙적으로 임금은 생산성에 비례해야 하지만, 이번 노사합의로 얻는 유·무형 효과가 상당할 전망이다. 해마다 짧게는 반년, 길게는 1년 내내 소모적 노사협상이 사라진 게 최대 소득이다. 대신 노사의 역량을 회사 발전에 집중한다면 더 큰 실적, 더 많은 성과급도 기대할 수 있다.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상생 모델이다. 다른 대기업들로 확산될지 주목된다.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해야 할 지금, 산업화 시대의 노사대립 패러다임은 시대착오적이다. 대기업 노조도 고임금에 상응하는 사회적 책임을 더 이상 외면해선 안 된다. 노사 간 협력이 회사를 발전시키고, 협력업체와 지역경제도 살리는 선순환 구조가 절실하다. 이제는 박수 받는 노조를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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