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과점 폐해 막는 법 강화 필요... 기존의 행정규율로는 부족"
대기업의 대리점 횡포, ‘갑질’ 등 우리 사회에서 경제강자의 횡포가 적지 않았다. 경쟁이 기본 전제인 시장경제 체제에서 효율적인 경쟁시스템이 힘들 정도로 특정 재화나 서비스에서 독과점 기업도 적지 않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다루는 공정거래 사건이 연간 4000건에 달할 정도로 불공정을 호소하는 사건들도 증가추세다.
이러한 불공정 사례에 대처하고 사전에 예방할 수 있는 다양한 정책적 수단이 필요하다. 제때,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 모두 소비자의 불이익이 된다는 점이 문제다. 그동안 공정거래 사건의 처리가 지연됐거나 솜방망이 처벌이 잦았다는 지적도 있었다. 이런 인식아래 공정거래법을 전반적으로 강화하기 위한 대안 중의 하나다.
과징금 부과, 시정명령 같은 행정적 규율 수단이 오랫동안 법집행의 근간이 되어온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같은 행정제재의 실효성에 의문제기가 뒤따른 경우가 많았다. 지속적인 제재로 법위반 기업은 양산되면서 현실에서는 불공정거래가 근절되지 않고 반복되는 현상이 지속된 것이다.
결국 ‘행태규율’만으로 시장의 경쟁 상황 회복이 어려울 경우 더 강력한 대응방안을 찾아야 한다. 그 가운데 하나가 기업분할명령제라는 구조적인 시정조치 방안이다. 과거 미국에서 시장의 90%를 장악한 스탠더드오일의 가격 횡포로 소비자와 중소업체의 피해가 심각했을 때 미국 정부가 동원했던 행정권이다.
미국에서는 통신기업 AT&T도 그렇게 쪼개졌고, 미국 담배시장의 95%를 장악한 아메리칸 타바코도 16개사로 나눠졌다. 시장의 자율 기능만으로 안될 때 동원해야할 수단이다.
○ 반대
"실효성 없는 낡은 규제... 외형 키워야 국제무대서 경쟁"
여러 가지 명분에도 불구하고 경제력이 과하게 집중된 기업을 정부가 강제로 줄이겠다는 발상이다. 국경도 없이 무한경쟁을 벌이는 21세기 다국적 기업 주도 시대에는 맞지 않는 낡은 규제다.
공정위를 비롯해 이 제도를 법제화하자는 쪽은 늘 독과점 폐해로 비롯된 미국의 스탠더드오일의 분할(1911년) 사례부터 들지만, 이미 100년도 더 된 일이다. 그때 분할됐던 회사들이 결국 엑슨모빌로 다시 합병돼 미국 최대일 뿐 아니라 세계 최대 석유회사로 시너지 효과를 내면서 석유, 에너지 업계를 주도하고 있다는 점은 외면한다. AT&T 분할 같은 사례가 없지는 않지만, 마이크로소프트 강제 분할안처럼 미국 정부의 의도가 법원에서 가로 막힌 일도 있다. 규제당국(공정위)과 기업간 긴 법정싸움만 벌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일본도 이 제도를 1977년에 도입하기는 했지만 실제로 법 적용 사례는 없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또 한가지 중요한 측면이 있다. 기업 규모가 커지는 것에 대한 우려나 견제에 앞서는 세계경제의 큰 흐름이다. 한국의 대기업, 재벌이라고 해봤자 국제무대에서는 실제로 큰기업이라 할 만한 곳도 없다는 점, 사실상 외형경쟁에서 밀린다는 사실이다. 무한경쟁의 국제 무대에서는 기업의 외형크기도 중요한 요소다. 자산이나 시가총액 등으로 세계 500대 기업을 봐도 국내기업은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한국전력 등 기껏 2~4개 정도에 불과하다. 이런 판에 강제로 기업쪼개기가 말이 되나. 글로벌 기업들은 이 순간에도 인수합병(M&A) 전쟁으로 덩치키우기와 신산업진출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
○생각하기
"이미 대기업 규제 너무 많아… 글로벌 대기업을 어떻게 키울지 고민해야"
한국의 대기업은 이미 여러 가지 규제를 받고 있다. 1987년에 도입돼 30년이 된 ‘대기업집단 지정제도’가 대표적이다. 상호출자 금지, 채무보증 금지 등 각기 다른 법령에 따른 38개 규제가 대기업을 옥죄고 있다. 대상 기업그룹도 65곳 이나 된다. 일상적 기업 활동에 따른 ‘행위 규제’도 거미줄처럼 촘촘한데 기업 경영을 좌우할 ‘구조 규제’까지 도입하면 과잉 규제라는 측면도 감안돼야 한다. 시장에서 경쟁은 물론 중요하다. 경쟁의 강화도 중요하지만 국가간 경제전쟁을 최일선에서 수행하는 글로벌 대기업은 더 키워야 한다는 현실론도 무시돼선 안된다.
허원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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