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인 월드] 포퓰리즘 정치에 재정난 빠진 베네수엘라

입력 2017-09-11 09:04  

중국·러시아, 자금지원 미끼로 원유자산 노려



[ 김현석 기자 ] 좌파정권의 실정으로 경제난에 처한 베네수엘라를 놓고 미국 러시아 중국이 맞붙었다. 미국의 제재로 베네수엘라가 고립되자 중국과 러시아가 지원을 미끼로 ‘미국의 앞마당’인 중남미에서 영향력 확대를 노리고 있다. 미국은 베네수엘라 문제를 국가 안보 차원으로 인식하고 견제에 나섰다.

총체적 난국 빠진 베네수엘라

한때 ‘오일머니’로 중남미를 호령하던 베네수엘라는 총체적 난국에 빠졌다. 2013년 집권한 니콜라스 마두로 정권은 우고 차베스 전 대통령의 포퓰리즘(대중인기 영합주의) 정책을 계승하다 경제를 망쳤다. 국제 유가마저 폭락해 심각한 재정난을 겪고 있다.

마두로 대통령은 유가가 폭락하기 전 도입한 복지제도를 유지하고 농장과 공장을 국유화했다. 베네수엘라 실업률은 25%를 넘어섰고 올해 물가상승률 예상치는 720%에 달한다. 반정부 시위가 확산되자 지난 7월30일 정권 유지를 위해 의회 기능을 중단하는 제헌의회 선거를 강행해 국제 사회의 반발을 샀다.

미국은 7월 말 마두로 대통령 등 13명의 자산을 동결하는 등 제재를 가했다. 지난달 25일엔 미 금융회사가 베네수엘라 정부 및 국영석유회사 PDVSA가 발행한 채권을 거래하는 것을 금지하고 양국 간 교역도 제한했다. 국제 금융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기가 힘들어진 베네수엘라는 국가부도 위기에 몰렸다. 올 연말까지 국가채무와 PDVSA 채권을 상환하려면 42억달러가 필요하지만 외환보유액은 100억달러도 안 된다.

중국과 러시아에 손짓하는 베네수엘라

이런 마두로 정권이 믿을 구석은 중국과 러시아다. 베네수엘라는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중국과 고위급 회담을 하고 800개 유전을 다시 활성화하는 데 참여해줄 것을 요청했다. 중국은 2008년 이후 베네수엘라에 620억달러를 투자했다. 베네수엘라가 중국과 협상 중인 차관은 150억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마두로 대통령은 조만간 러시아도 방문할 예정이다. 러시아 국영 석유기업인 로스네프트는 PDVSA에 총 65억달러를 지원했다. 그 대가로 PDVSA로부터 하루 22만5000배럴의 원유를 공급받고 있다. 베네수엘라가 하루 수출하는 물량의 약 13%에 해당한다. 로스네프트는 베네수엘라 내 유전 등 석유자산도 잇달아 인수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미국이 제재를 강화하고 나선 틈을 타 러시아가 중남미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고 1일 보도했다. 러시아는 2001년 베네수엘라와 군사협력 협정을 맺었다. 베네수엘라에 중남미 수출용 칼라시니코프(AK) 소총 공장을 건설 중이다.

중국·러 영향력 확대에 긴장하는 미국

미국도 좌시하지 않고 있다.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은 지난 달 23일 “베네수엘라 정권의 실패는 단순한 인권이나 정치 차원이 아니라 미국의 국가 안보 차원에서 중요한 문제”라고 강조했다.

특히 러시아가 PDVSA의 자회사인 미 석유회사 시트고에 대한 영향력을 확보하려 하자 저지하고 나섰다. 워싱턴포스트는 미 행정부 고위 관료의 말을 인용해 “로스네프트가 시트고의 주요 에너지 자산을 통제하지 못하도록 준비를 마쳤다”고 보도했다. 1999년 PDVSA가 인수한 시트고는 텍사스, 루이지애나주 등에 정유공장 세 곳(정제능력 하루 75만배럴)과 주유소 6000여 개를 보유하고 있다. 지난해 돈이 급했던 마두로 정권은 시트고 지분 49.9%를 담보로 로스네프트에서 20억달러를 빌렸다. 로스네프트는 채권 변제 대신 시트고 지분 확보를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에너지 전문가인 켄트 무어스는 “미국은 베네수엘라를 제재할 때 러시아와 중국의 역할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원유 자산을 동결해 마두로 대통령과 PDVSA를 궁지로 몰아넣으면 베네수엘라에서 중국과 러시아의 영향력을 오히려 강화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뉴욕=김현석 한국경제신문 특파원 reali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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