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온가열해 살균한 레토르트, 재료 부서지고 맛 떨어져
원재료 각각 살균해 맛 살려
엑기스 물에 풀던 방식 대신 육수만 3시간 끓이기도
"소비자 중심으로 '발상 전환'…집밥 같은 간편식 만들어"
[ 이유정/김보라 기자 ]
지난주 방문한 충남 논산의 CJ제일제당 비비고 가정간편식(HMR) 공장. 3층 제조실은 고기 삶는 냄새가 진동했다. 12시간 피를 뺀 양지 부위를 3시간 가까이 푹 삶는 과정이 24시간 반복되고 있었다. 비비고 육개장의 핵심 재료다. 이남주 CJ제일제당 수석연구원은 “비비고 HMR의 국 탕 찌개는 급속 냉동한 소고기를 삶아 쓴다”며 “고체 엑기스로 육수를 내는 타사 제품에 비해 시간과 비용이 더 많이 들지만 깊은 맛을 낸다”고 설명했다.
HMR업계에는 수십 년간 숙제가 있었다. ‘공장에서 대량 생산하지만 집밥 같은 맛을 내는 것’. CJ제일제당은 기존 방식으로는 답이 없다고 생각하고 2013년 ‘상온 간편식(레토르트)’ 시장에서 전면 철수했다. 이후 1년간 연구개발(R&D)에만 매달린 끝에 레토르트 특유의 인공적인 맛을 없애는 데 성공했다.
◆“공장에서 집밥의 맛을 내라”
레토르트 식품은 장기 보관을 위해 고온 가열 처리를 한다. 맛이 떨어지고 재료가 뭉그러질 수밖에 없다. CJ제일제당 연구원들은 반복 실험을 통해 직접 조리한 것 같은 맛을 내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대량생산은 또 다른 이야기였다.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제조하려 했지만 모든 협력사가 “그렇게 복잡한 건 할 수 없다”고 손사래 쳤다. 직접 생산을 결정했다.
고온 살균 과정에서 맛이 떨어지는 단점도 기술로 극복했다. 비비고의 두부김치찌개와 된장찌개 등은 원재료 특성에 따라 각각 살균하는 ‘분리 살균’ 방식을 쓴다. 두부까지 식감이 살아났고, 색깔도 그대로였다. 소비자들도 알아봤다. 시장조사기관 링크아즈텍에 따르면 올해 6월 누적기준 CJ제일제당의 국·탕·찌개 시장 점유율은 46%에 달한다. 업계 1위다.
CJ제일제당을 HMR 선두로 올려놓은 건 비비고 왕교자 덕이 크다. 비비고 왕교자는 업계 최초로 돼지고기와 부추, 대파 등 채소를 큼직하게 썰어넣는 방식을 택했다. 집에서 만두를 빚을 때 칼로 다져넣는 방식을 빌려왔다. 비비고 왕교자는 국내 40%대 이상의 시장 점유율 달성에 이어 미국 시장에서도 1위가 됐다.
HMR의 기술력은 양식 부문으로도 확장되고 있다. 프리미엄 양식 간편식 브랜드 ‘고메’의 함박스테이크는 개발에만 꼬박 2년이 걸렸다. 고메 브랜드가 첫 선을 보인 지난해 매출은 350억원을 기록했고, 올 들어서는 누적 매출이 600억원을 넘어섰다. 인천냉동식품공장은 추가 생산라인까지 증설했다.
◆패키지도 과학…업계 첫 전문 조직
CJ제일제당은 1990년 식품회사 최초로 패키징을 전문연구하는 포장개발센터를 설립했다. 많은 식품회사가 ‘어떻게 빨리 많이 만들까’를 고민할 때 CJ제일제당은 ‘어떻게 하면 소비자들이 편하고 빠르게 맛있게 먹을까’를 고민했다. 햇반이 방부제 없이 상온에서 9개월 보관하려면 4중 차단 필름으로 산소가 완벽 차단돼야 한다. 햇반의 패키지는 21년간 수십 차례 바뀌었다. 차규환 CJ제일제당 패키징센터장은 “화학 고분자 전문가, 식품과 기계 금형 전문가 등이 모여 어떻게 하면 품질을 더 잘 보존할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며 “두부 팩을 딸 때 물이 튀지 않게 하는 이지필 등 식품과 과학을 접목해 작은 편리함들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말했다. CJ제일제당은 R&D 투자를 계속 늘리고 있다. 2014년 990억원 수준이던 R&D 투자액은 지난해 1517억원으로 늘었다.
논산=이유정 기자/부산=김보라 기자 yj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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