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왕조가 500여 년을 버틴 일은 흔치 않다고 한다. 조선왕조는 1392년 개국부터 1910년 경술국치 때까지 518년을 견뎠다. 고종은 외세의 침입에 맞서 ‘대한제국’을 세상에 천명하고 자주권 회복에 안간힘을 썼다. 올해 선포 120주년을 기념하는 여러 행사가 준비돼 있다고 들었다.
조선왕조는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유교적 생각이 나라의 근간이었다. 그것은 사상적 깊이를 떠나 일상생활의 덕목으로서 오늘날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다. 우리나라를 ‘동방예의지국’이라 평가했던 것도 유교적 덕목과 무관하지 않을 터다. 특히 왕실에서의 규범은 오늘날 사람들에게는 엄하다고 여겨지는데, 그중 보물과도 같은 것이 ‘종묘제례악’이다. 매년 5월 첫째 일요일 서울 종묘에선 조선 왕가를 기념하는 제례가 열리고, 역대 왕들의 제사를 올리면서 바로 이 곡을 연주한다.
서양 음악사에서 가장 오래된 음악은 ‘그레고리안 찬트’라는 무반주 합창이다. 그런데 종묘제례악은 악가무를 모두 갖춘 종합예술이다. 전곡은 한 시간 남짓 걸린다.
종묘제례악은 위대한 왕 세종과 관련 있다. 세종은 그 어떤 왕보다 자주적인 생각이 투철했는데, 당시의 향악과 고취악에 바탕을 두고 하룻밤 새 막대로 박자를 쳐서 이 음악을 완성했다고 한다. 당시 음악은 임금이나 한울님 같은 절대자가 다루는 것으로 여겨졌기에 이런 기록이 가능했을 터다. 종묘제례악 중에는 고려가요 선율에서 가져온 것도 있어서 노가바(노랫말 바꿔 부르기) 방식이었다면 작곡에 시간 단축이 가능했을 터.
여기서 중요한 사안은 바로 노랫말 내용이다. 조선은 혁명으로 창건됐기에 그 위대성과 창성함을 높이 찬양해야 할 필요가 있었고, 그 내용은 극적 구성을 띨 수밖에 없는 조건을 갖게 된다. 종묘제례악은 세조 대에 이르러 제사를 위한 음악이 됐지만, 제례에서 음악이 너무 화려해지면 의례 집중에 방해를 받는다. 그래서 음역에 제한을 뒀고, 빠른 박자로 내달릴 수도 없으며, 단순 선율 안에 머물러야만 했다. 종묘제례악의 미적 가치는 바로 극적인 내용과는 별도로 지극한 절제로 이끌고 가야만 하는 데 있다.
요새 사람들은 인내심도 부족하고 지구력도 약한 것이 사실이다. 세상이 너무 빠르게 움직이다 보니 ‘느림’을 잘 참아내지 못하기도 한다. 이미 500여 년 전 우리 선조들은 지극한 절제를 머금은 음악으로 자신을 갈고 닦아온 바, 우리도 좀 ‘따라쟁이’ 해보면 어떨까?
종묘제례악은 현재 무형문화재 제1호면서 세계무형유산에 등재돼 있다.
김해숙 < 국립국악원장 hskim12@korea.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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