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네이버 FARM] 백종원이 극찬한 표고요리, 부여 버섯농부 손에서 나왔다

입력 2017-09-14 16:27   수정 2017-09-14 16:36


농가 맛집 ‘나경’의 이영숙 대표는 17년차 버섯 농부다. 충남 부여군 3000여평 농장에서 표고버섯 농사를 짓는다. ‘내가 키운 표고는 내가 제일 잘 안다’는 생각으로 버섯묵, 버섯잼, 버섯포 등 쉽게 접할 수 없는 버섯 음식까지 만들어낸다. 이 대표는 2015년 올리브TV와 tvN에서 방영된 요리 경연 프로그램 ‘한식대첩2’의 우승자이기도 하다. 심사위원을 맡았던 백종원 더본코리아 사장은 이 대표의 음식을 ‘식재료 본연의 맛을 제대로 내면서도 요리 구성이 독창적’이라고 표현했다. 직접 키워 요리하는 표고버섯이 “예쁘고 또 예쁘다”는 이 대표를 만났다.

◆직접 개발한 ‘버섯 요리 열전’

이 대표가 운영하는 농가 식당 나경은 버섯 전문이다. 따로 부탁하지 않는 이상 메뉴는 버섯정식 한 가지다. 표고버섯을 중심으로 각종 버섯 요리들이 한상 차림으로 나온다. 아홉 가지 버섯을 꽃처럼 예쁘게 담아 채소와 먹는 버섯전골, 표고로 만든 투명한 버섯묵, 버섯강정, 버섯전, 버섯볶음. 다양한 버섯 요리들과 직접 담은 제철 장아찌들을 함께 차린다.

들어가는 재료들은 다 이영숙 대표가 직접 농사지었거나 인근 마을 농부들로부터 사온 것이다. 나경은 지역 농산물을 식재료로 사용하는 충남로컬푸드 ‘미더유’ 인증식당. 이 대표는 누가, 어디서 키운 농산물인지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하루 전에는 미리 말씀을 해주셔야 제가 하우스나 밭으로 안 나가고 식당에 와서 요리를 해요. 재료도 따와야하고. 예약이 있을 때만 식당을 열거든요.”


나경의 버섯요리들은 이 대표가 오랫동안 연구해온 것이다. 예를 들면 특허를 받은 버섯묵은 수차례 실패를 거쳤다. 쫀득쫀득한 식감을 내기 위해 실험만 수십차례 했다.

“버섯묵을 만들 때 우뭇가사리를 써서 속 안이 투명하게 보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우뭇가사리로 했더니 정말 예쁘긴 했죠. 그런데 썰어놓으니 흐물흐물했습니다. 대신 한천을 넣고 해보니 썰어도 무너지지 않더라고요. 하지만 먹으면 탱글탱글하지가 않았습니다. 고민을 하고 있는데 누가 곤약을 한번 써보라고 추천을 했어요. 곤약과 한천 비율을 고민하다가 4대6으로 해보니 보기도 좋고 맛도 좋았습니다. 그렇게 지금의 버섯묵이 나왔습니다.”

표고강정은 달큰해서 버섯을 싫어하는 아이들도 잘 먹는 음식이다. 아이가 있는 가족이 식당에 오면 이 표고강정을 일부러 많이 담아준다고 한다. 직접 만든 토마토 소스로 튀긴 표고를 버무렸다. 토마토 농장을 하는 이웃이 준 토마토를 어떻게 해 먹을까 고민하다가 나온 요리다. 보통 강정 양념으로 많이 쓰는 고추장을 사용할까도 했지만 맛이 뻔해지는 게 싫었다고 한다.


◆주변에서 말렸던 농사, 결과는

그가 버섯요리를 전문으로 하게 된 건 표고버섯 농사를 시작하면서부터다. 농사를 짓기 전엔 전업주부였다. 자식들은 다 키웠고, 새롭게 시작할 것 없나 생각하던 중 우연히 지인이 운영하는 표고농가를 들렀다. “ 운명이었나봐요. 첫눈에 반했다고 해야하나. 하우스에 버섯이 새하얗게, 주렁주렁 꽃처럼 피어있는데 그게 왜 이렇게 예쁘던지. 그길로 당장 표고 농사를 짓겠다고 했습니다.”

가족들은 물론 주변에서 모두 반대했다. 자식들 다 키우고 이제야 조금 쉴 시간이 생겼는데 왜 사서 고생을 하려고 하냐는 질문이 쏟아졌다. 여자 혼자 어떻게 농사를 지으려 하냐고 의아해하는 사람도 많았다. “겨울 한창 수확철 바쁠 땐 어차피 저 혼자 하는 게 아니라 일꾼들 고용해서 다 같이 합니다. 여자 혼자라고 왜 못해요. 못한다는 사람들에게 더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전국 표고농가를 다니면서 농사법을 배웠다. 잘 한다는 곳이면 쫓아가 가르쳐달라고 조르고 농업기술원에서 교육도 받았다. 당시 찾아갔던 표고 농부 중 상당수는 이런 반응을 보였다. “당신이 표고 농사를 혼자 짓겠다고? 이거 못해요. 여자가 못해요.” 처음엔 알려주지 않는 곳도 많았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버티면서 노하우를 모았다.

투자금도 만만치 않았다. 처음 하우스 시설을 갖추는 데 6000만원 넘게 들었다. 그동안 모아놓은 돈 상당액을 썼다. 푼돈을 벌기 위해 목돈을 갖다 버리느냐는 타박들이 이 대표를 향했다. “그런데 농사 첫해에 버섯이 엄청 났어요. 주렁주렁 예쁘게 달려있는데 눈물이 다 나더라고요. 선무당이 사람 잡은 걸까요. 첫 해에 바로 투자원금 회수했어요. 그러니까 그 다음해부터는 버는 거죠.”

첫해 대박에 놀란 주변 사람들 중 일부는 내년에는 버섯이 다 죽을 것이라고 악담을 했다. 이 대표는 분통이 터졌다. 더 연구하고 공부했다. 그 다음해 농사 역시 성공이었다. “보통 표고는 차광막을 씌우는데 저는 4월에 싹 걷어요. 내가 다 하는 대신 자연에서 관리해준다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제 버섯을 보면 사람들이 ‘어떻게 이렇게 예쁘게 잘 키웠냐’고 해요. 버섯은 정성을 다 알아요. 정성을 들여서 하면 그만큼 결과가 나오는 게 농사일입니다.”

◆떨이로 팔리는 버섯 아까워 시작한 요리

처음엔 농사지은 표고버섯을 다 내다팔았다. 하지만 상품성이 높은 버섯이라고해서 항상 좋은 값을 받는 건 아니었다. 3~4월 버섯 출하가 몰릴 시기엔 20kg를 2~3만원에 떨이로 팔아야할 때도 있었다. “들어간 돈과 시간, 정성을 생각하면 말도 안되는 가격이에요. 너무 억울하잖아요. 화도 나고요. 그래서 3~4월 표고를 그냥 팔지 않고 뒀다가 청으로 담가서 발효시켰어요.”
1년 지나 담가놓은 표고버섯청을 열어봤다. 발효액에선 예쁜 갈색빛이 났다. 표고향이 은은하게 풍기면서 맛도 있었다. 이웃들에게 물에 타서 먹어보라고 나눠줬더니 반응이 좋았다. “그 때 버섯으로 할 수 있는 요리가 무궁무진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농사지은 표고버섯을 다 내다팔 것이 아니라 일부는 직접 요리를 해봐도 좋겠다 싶었고요.”

요리 연구를 시작했다. 이 대표의 친정 어머니는 종갓집 종부였다. 어렸을 때부터 어깨 너머로 음식하는 것을 많이 배운 그였다. 정식으로 고급 요리를 배운 적은 없지만 충남 향토 음식이라면 자신 있었다. 제일 잘 하고 편한 음식부터 해보자고 했다. 겨울 표고만 농사 지었기에 바쁠 땐 바빴지만 한여름엔 할 일이 없었다. 그렇게 여름에 개발한 요리가 표고포, 표고초밥, 표고간장, 표고젓갈. 모두 이 대표가 농한기에 만들어낸 음식들이다.

육포와 비슷한 표고포는 너무 크게 자라서 상품성이 떨어지는 표고로 만든다. 큰 표고가 오히려 포를 만들기엔 적합하다는 아이디어에서 시작했다. “시장에선 찾지 않는 큰 버섯이 육포처럼 포로 만드니 뜯어먹기 딱인겁니다. 그런 식으로 계속 연구 개발을 했어요.”

표고초밥은 표고를 얇게 떠서 밥 위에 올렸다. 표고의 식감이 초로 간한 밥과 잘 어울린다. 표고를 싫어하는 손자를 위해 조청으로 표고잼도 만들었다. 쫄깃쫄깃하고 달아서 빵에 발라먹는다. 볶음요리나 조림요리에 넣어 맛을 내기도 한다.

그렇게 개발한 버섯 요리로 식당도 열고, 농업기술원에 강연을 다녔다. 요리경연대회에 나가 상도 받았다. 나경의 버섯 요리가 괜찮다는 입소문이 났다. “사실은 요리가 좋아서 시작한 게 아니라 표고가 좋아서 시작한 연구예요. 내가 사랑하는 버섯을 가지고 이것저것 만들고 더 맛있게 하는 작업이 그냥 재미있고 신났습니다.”


◆‘친정엄마 상차림’으로 서바이벌 우승

농사일과 요리연구를 좋아하던 이 대표에게 식당 손님을 받는 일은 쉬운 게 아니었다. 식당에 항상 매여있어야하는 것도 힘들었다. 강연을 나가던 농업기술원에서 이 대표를 방송 ‘한식대첩2’에 나갈 충남 대표 명인으로 추천했다. 처음엔 고사했지만 함께 식당을 운영하는 딸이 밀어주면서 출연이 성사됐다.

“엄마가 워낙 터프한 성격인데, 식당을 운영하느라 밖에 못 나가서 답답해하셨던 것 같아요. 처음엔 방송엘 뭣하러 나가냐고 하셨는데 왔다갔다 하시면서 기분 전환이라도 하시라고 제가 강력하게 추천했어요.” (딸 조진희 씨)

식당 나경은 어머니 이 대표와 딸 진희씨 두명이 운영한다. 이 대표가 한식대첩 출연하던 반년은 아예 문을 닫아야 했다. 휴업 기간 두 모녀는 충남 전통음식 책을 보고, 공부하고, 직접 음식을 만들어보는 과정을 반복했다. 프로그램 초반 부각되지 않았던 이 대표의 요리는 12회의 경연을 거치면서 점차 주목받았다.

“저는 그냥 버섯에 미쳤잖아요. 근데 경연에 나가면 모든 음식을 버섯으로만 할 수는 없으니까. 딸이랑 책도 많이 찾아보고 레시피도 개발하고 그냥 계속 연구, 연구, 연구만 했어요.”

결승전 미션은 아침, 점심, 저녁 세번의 상차림. 이 대표는 생일에 친정어머니께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준비한 상차림을 구상했다. 저녁상의 메인 요리로는 제일 자신있는 버섯 전골을 담았다. “서울팀은 듣도 보도 못한 궁중 요리만 해대지, 누구는 식품학 박사라지. 거기서 지기 싫으니 공부를 안 할 수가 없죠. 정직과 정성을 생각하고 요리했어요.”

한식대첩에서 우승한 뒤 식당 나경도 대박이 났을까. “방송을 보고 식당에 와보고 싶다는 분들이 많았는데 방송이 끝난 뒤엔 맡고 있었던 농업기술원 강의를 한꺼번에 하다보니 또 장사를 한참 못했어요. 지금은 저랑 딸이랑 대목을 놓쳤다고 농담처럼 웃어요.”

딸 진희씨는 애써 찾아온 손님들을 돌려보낼 때가 많은데 그게 안타깝다고 했다. “저희 두명이 운영을 하다보니 어머니가 교육을 나가실 때는 손님을 받을 사정이 안 될 때도 있어요. 또 저희가 재료가 없으면 손님을 못 받거든요. 마음으로는 다 대접해드리고 싶은데 저희도 너무 속상해요.”


◆할머니 손맛까지 더해질까

이런 사정으로 예약하기 어렵다는 나경이지만 앞으론 더 찾기 쉬워질 것이라고 했다. 지금 식당은 마을과 떨어진 외진 곳에 있다. 하지만 올해 말 쯤엔 마을과 더 가까운 곳으로 이사할 예정이다. “지금은 동네 할머니들 손을 좀 빌리려고해도 워낙 외지니까 그럴 수가 없어요. 시내 쪽으로 가서 할머니들 손을 빌리려구요. 지금보단 조금 더 여유가 생기고 손님들도 많이 대접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물론 요즘도 김장처럼 한꺼번에 많은 일손이 필요할 때는 마을 할머니들이 식당에 온다. 이 대표는 할머니들의 ‘일머리’가 최고라고 했다.

“힘 쓰고 이런건 젊은 사람들이 낫지만, 앉아서 채소 다듬고 일 차곡차곡 하고 이런건 노인 양반들이 최고예요. 우리 할머니들 일거리도 생기고요. 김장할 때 할머니들 봉고차로 모셔만 오면 본인들이 알아서 착착 역할 분담하는 게 기가 막혀요. 저는 수육만 삶고 김치통만 준비해놔요. 글쎄 300포기를 하면요. 오전에 다 끝내요. 그렇게 김장 해오신 세월이 얼만데. 그런 걸 무시 못하는 거예요.”

이 대표는 한식대첩 결승전에 마을 할머니들을 특별히 초대하기도 했다. “제가 우승하니까 응원오신 할머니들이 펑펑 우시더라고요. 밤 12시 넘어서 집에 돌아가실 때까지 우리 어르신들이 지치질 않는거예요. 너무 신나서요. 같이 일할 날만 기다리고 있어요.”

이 대표는 나경의 버섯 요리들을 상품화할 계획도 갖고 있다. “더 많은 분들에게 버섯 요리를 맛보여드리고 싶어요. 그 전엔 혼자 농사짓고 요리 연구하는 게 즐거웠다면 이제는 그걸 더 많은 사람들에게 나누려고 합니다.”

부여=FARM 고은이 기자

전문은 ☞ m.blog.naver.com/nong-up/2210888077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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