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네이버 FARM] "구기자 시장 키워 농가주름 쫙 폈죠"

입력 2017-09-14 19:15   수정 2017-09-15 06:30

홍성빈 바이오믹스 대표

한약재로 쓰이다 건강식 확산…구기자로 차·즙·잼 등 개발 나서
600g당 1만5000원 하던 가격 수요 늘며 2만6000원까지 올라



[ 홍선표 기자 ] 충남 청양군 청양읍 청양시장. 2와 7로 끝나는 날에 5일장이 선다. 지난 2일 시장 양옆으로 좌판이 길게 깔렸다. 길가 한쪽에 돗자리를 깔고 밭에서 따온 채소를 파는 시골 할머니들은 삼삼오오 모여앉아 얘기를 나눴다. 시장 광장과 맞닿은 연갈색 2층 벽돌 건물 앞은 또 다른 풍경이다. 좌판 대신 마대자루를 짊어진 노인층 농부들이 모여 있다. 자루 안에는 바짝 마른 빨간 알갱이들이 가득하다. 갓 수확해 말린 구기자 열매다. 청양구기자원예농업협동조합이 잠시 후 이 열매들을 모두 사갔다.

조합 사무실에서 돈봉투를 들고 나오는 농민들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이날 농민들은 구기자 한 근(600g)당 2만6000원씩을 받았다. 농민들의 웃음 뒤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최근 구기자 값이 크게 뛰었다. 구기자 부대를 옮기던 복영수 청양구기자농협 조합장은 “작년 초만 해도 한 근 가격이 1만5000원 선이었다”고 설명했다.

올 들어 구기자 가격이 오른 것은 공급 감소가 아니라 수요 증가 때문이다. 한약재로만 쓰이던 구기자가 건강기능식품 및 차, 즙 등 다양한 제품의 원료로 쓰임새가 확대됐다는 얘기다. 구기자 수요를 늘린 대표적인 인물로 구기자 재배 농민들은 홍성빈 바이오믹스 대표(54·사진)를 지목한다. 1990년대 후반부터 농산물에서 식품·의약품·화장품에 들어가는 원료를 뽑아내 상품화해온 식품벤처사업가다.

홍 대표는 2000년대 초반부터 주말마다 청양에 머물며 구기자 농사를 짓고 있다. 그가 주도해 설립한 청양구기자수출영농조합은 청양읍 벽천 2리에 있는 1만여 평(3만3000여㎡) 땅에 구기자 비닐하우스 25개 동(재배면적 6000여 평)을 세워 구기자를 키우고 있다. 청양 구기자 농장 중 가장 큰 규모다.

홍 대표가 구기자 재배에 관심을 갖고 청양을 처음 찾은 것은 2001년이다. 20대 중반부터 개인 사업을 해온 그는 1990년대 말 건강기능식품 시장 진출을 계획했다. 소득 수준이 높아지고 고령인구가 늘어나면 건강기능식품을 찾는 수요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구기자는 농민들의 주요 수익원이 아니었다. 한의원이나 약초상 외엔 찾는 곳도 드물었다. 구기자 시장 상황은 좋지 않았지만 홍 대표는 반대로 생각했다. “뚜렷한 경쟁자가 없어 제대로 된 상품만 개발하면 구기자 시장을 키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중국에선 구기자를 약재뿐 아니라 식재료로도 널리 쓰고 미국과 유럽에선 고지베리(Goji Berries)란 이름으로 불리면서 건강에 좋은 ‘슈퍼 푸드’로 소비된다는 사실도 구기자 상품 개발에 나선 배경이다.

홍 대표는 구기자조합과 손잡고 연구에 들어갔다. 2003년엔 말린 구기자를 갈아서 가루 형태로 티백에 담은 구기자차를 내놨다. 2006년엔 한걸음 더 나아가 구기자 추출물을 섞은 술을 내놨다. 백세주와 소주를 섞어 마시는 일명 ‘오십세주’가 술자리에서 인기를 끌던 시기다. 5억원가량을 투자해 술을 개발했다. 그러나 실패였다. 순한 소주 제품이 잇따라 출시되면서 약주 인기도 시들해졌다.

구기자로 건강기능식품을 개발해 정면 승부를 펼쳐봐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그 무렵이다. 연구개발은 9년간 이어졌다. 2014년 10월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기억력을 개선하는 데 도움을 줄 건강기능식품으로 정식 인증을 받았다. 바이오믹스는 구기자 건강기능식품 판매를 통해 지난해 150억여원의 매출을 올렸다.

2000년대 중반부터 청양구기자농협 조합장을 맡아 홍 대표와 손을 맞춰온 복 조합장은 구기자 건강기능식품이 나오면서 농민들에게 새로운 시장이 열렸다고 설명했다. 복 조합장은 “조합원 980명 중에는 이름만 걸어놓은 분이 많았는데 최근 2~3년 새 구기자 농사 규모를 키운 농가가 부쩍 늘었다”고 설명했다.

홍 대표와 복 조합장은 구기자 재배 과정을 자동화하는 방안을 찾고 있다. 한 나무에서 1년에 보통 두 번 열매를 따는데 수확을 위한 인건비 부담이 작지 않아서다. 그는 작년엔 경북 문경 농민들과 손잡고 오미자로 만든 제품에 대해 건강기능식품 인증을 받았다. 국산 농산물을 원료로 한 건강기능식품을 개발하면 시장이 커져 회사와 농민이 함께 이익을 얻는 상생구조가 형성된다는 게 홍 대표 설명이다.

청양=FARM 홍선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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