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에는 있지만
현실에선 사라진
알바의 '휴식권'을 찾습니다
지난 5일 오후 1시 서울 광진구 세종대학교. 화환에 가려진 행사장 직원용 출입문 뒤로 20대 청년 6명이 모였다. 침묵을 깨고 ‘지배인’이라 불리는 한 직원이 들어왔다.
“정신이 하나도 없네.”
지배인은 상기된 얼굴로 곧장 유니폼을 건넸다. 기자를 포함해 6명은 바로 옷을 갈아입고 옆 텅 빈 연회장으로 이동했다. 불과 네 시간 뒤 손님 500명이 이 곳에서 밥을 먹으며 행사를 치룬다고 했다. 행사 서빙, 오늘의 일당벌이 아르바이트(알바)다.
#HD영상 연회장 서빙 알바 10시간 체험기
지배인의 지시에 맞춰 각자 맡은 일을 시작했다. 먼저 창고에서 큰 수레에 실린 탁자 뭉치를 알바생과 함께 있는 힘껏 끌어왔다. 10명이 앉을 큰 탁자였다. 탁자를 하나씩 빼 굴렁쇠처럼 굴렸다. 10개씩 쌓여있는 의자는 손수레로 들었다.
일은 단순했다. 묵묵히 탁자와 의자로 빈 공간을 채워갔다. 1시간이 지났을 무렵. 의자를 실은 수레가 점차 무겁게 느껴졌다. 그래도 꺼내고 옮기고 반복이었다. 옮긴 의자 10개씩 한 탁자 주변으로 꽃잎처럼 둘렀다. 일정한 간격과 위치를 따져야했다. 같은 시간 다른 알바생은 탁자에 크로스(보)를 덮었다. 봉제선이 탁자 가운데 세로로 놓이도록 통일해야 했다.
이젠 식사도구 세팅이다. 생수와 컵, 냅킨 등을 탁자마다 10개씩 올려두었다. 생수는 손님 앞 탁자에서 30cm 간격으로 손님 기준 오른쪽에 올려두었다. 컵과 냅킨은 탁자 한가운데 놓았다.
2시간만에 연회장 절반을 채웠을 무렵. 행사 주최 측 인사가 등장했다. 뭔가 이상하다는 듯 곧장 직원을 불러 말했다.
“(한 탁자 당) 열 명이 아니라 여덟 명인데, 전달 안됐어요?”
순간 모두 표정이 굳었다. 군말 없이 직원은 알바생들에게 의자와 생수 등을 2개씩 빼라고 지시했다. 일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같이 의자를 옮기던 남자 알바생이 한숨을 내쉬며 "오후조에 남자 더 와야 된다"고 말했다. "저녁 먹고 긴 탁자까지 깔려면 남자 둘이선 벅차다"는 이유였다. 올해 스물일곱살인 청년은 연회장 알바만 50번 이상 해본 베테랑이었다. 이 곳 외주 업체 알바만 세번째였다. 다른 직원도 "힘쓰는 일엔 남자애들이 많이 오면 좋다"고 했다. 인터넷에 올라온 모집공고는 '서빙'이였지만, 대부분 업무는 '힘쓰는 일'이었다.
행사까진 2시간이 남았다. 직원은 직원용 휴게실로 알바생을 모두 불러모았다. 이제 좀 쉬나 싶었다. 하지만 직원은 휴게실 옆에 붙은 주방으로 바로 가라고 했다. 쉬는 시간은 없었다. 일이 밀려있었다.
이젠 도시락이었다. 주방에 들어서자 주방장이 일을 배분했다. 도시락 국을 채우는 일이 주어졌다. 가마솥에서 주전자로 된장국을 퍼, 일회용 국 용기에 덜었다. 다른 알바생은 국 용기 뚜껑을 닫았다.
주방 밖 복도 알바생은 도시락을 정리했다. 선반 위 도시락 뚜겅을 닫은 뒤 젓가락, 물티슈를 올렸다. 다 된 도시락을 서빙용 수레에 실었다. 한 수레 당 약 60~70개 도시락을 끌고 연회장으로 이동했다. 넓지 않은 주방 주변 곳곳에서 알바생들은 소소한 일을 반복했다.
오후 여섯시. 행사까지 30분 남았다. 재촉한 적 없던 직원이 다급하게 "빨리 움직여달라"고 다그쳤다. 옆에 있던 알바생이 “아까 10명 테이블 삽질만 안했어도”라고 푸념했다.
슬슬 연회장 입구엔 행사 손님이 몰려들었다. 시작 10분 전부턴 손님이 연회장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아직 탁자엔 도시락이 절반도 안깔린 상황이었다. 주방 앞에 옮겨야할 도시락은 쌓여있었다. 처음보는 직원이 나타나 다급히 반말조로 명령했다.
“야, 일단 빈자리 도시락부터 빼서 사람 있는데 놓아.”
직원 말대로 빈자리 도시락을 손님에게 건넬 무렵, 한 손님이 손가락으로 '딱딱' 소리를 냈다. 이리 오라는 뜻이다. 종이컵만 주고, 술은 언제 주냐고 물었다. 서빙 업무는 그렇게 도시락 준비가 채 끝나기도 전에 시작됐다. 한손엔 소주 2병, 다른 손엔 맥주 4병을 끼우고 나르기 시작했다. 탁자마다 콜라, 사이다, 소주 각 1병과 맥주 2병도 정신없이 날랐다. 준비가 부족했던 탓에 곳곳에서 서빙 알바생을 불러댔다. 이유도 다양했다.
“국 언제줘요?”
“맥주 좀 따주시겠어요?”
“소주 좀 더 줘.”
서빙은 40여분 동안 정신없이 이어졌다. 싫던 손님의 반말에도 무감각해졌다. 아니,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식사 시작 30분이 지나자 연회장은 다소 소강상태로 접어들었다. 직원이 다시 직원용 휴게실 쪽으로 알바생을 불러 모았다.
또 다른 일을 바로 시키나하던 찰나 알바 식사시간이었다. 남은 도시락을 주지 않을까 예상했지만, 중국집 배달음식이었다. 전화 주문을 마친 지배인은 “밥 올 때까지 구석 가서 좀 쉬라”고 했다. 일 시작 6시간만의 첫 휴식이자 착석이었다. 허기보다 다리가 아팠다. 이제 좀 쉬나 싶어 의자에 앉은 그 순간, 주방장이 일을 들고 왔다. 연회장에서 다 먹은 도시락의 잔반을 버리가고 지시했다. 얼핏봐도 잔반 도시락을 바로 치워야할 상황은 아니었지만 휴식은 허락되지 않았다.
저녁 7시 30분, 중국음식이 도착했다. 주방 복도 구석에 모여 밥을 떠먹기 시작했다. 옆 최모씨(24)에게 알바하러 온 이유를 물었다. 대학생인 그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왔다고 했다. 연회장 서빙도 처음은 아니었다. 학기 중 평일이지만 열심이었다. 다만 “오늘 조금 힘드네요”라며 빙긋 웃어 보였다.
볶음밥을 다 비운 그에게 오늘보다 힘들 때도 있냐 물었다. 그는 “두어 달 전 알바는 3분 카레 식사를 주고 10분 뒤 바로 일 시켰다”고 귀띔했다. 다른 알바생들도 알바 휴식시간이 ‘복불복’이라는데 공감했다.
최 씨의 '3분 카레 저녁'은 남일이 아니었다. 숟가락을 든지 15분만에 알바생들은 행사장으로 투입됐다. 연회장 손님도 거의 자리를 떴다. 지금까지 세팅과의 싸움이었다면 이제부턴 뒷정리였다. 빈 병부터 치웠다. 쓰레기를 건네받아 봉투에 담았다. 10명이 넘는 알바생은 말없이 움직였다.
다시 탁자와 의자 앞에 섰다. 처음 의자와 탁자를 꺼내온 곳으로 다시 옮겼다. 필름을 되감 듯 다시 의자를 쌓았고, 10개씩 쌓은 의자를 수레에 싣고 보관장소로 끌었다. 그렇게 의자를 치우는데만 한 시간이 흘렀다.
같이 의자를 쌓던 알바생 장모 씨(22)는 연회장 알바가 처음이었다. 대학생인 그도 생활비를 벌기 위해 학기 중 일을 나왔다. 다음에 또 할거냐 물으니 “하루 했는데 힘들다"며 고개를 저었다.
밤 9시 30분, 퇴근까지 30분. 처음 봤던 텅빈 모습의 연회장으로 되돌렸다. 그제서야 직원은 담배 한대 태우고 오겠다며 잠시 쉬라고 했다. 기자에겐 사실상 이 날 첫 휴식이었다. 베테랑 알바생에게 이제 끝이냐고 물었다. “다음 행사 준비해야 할 걸요”라는 답이 바로 돌아왔다.
3분 여 휴식은 끝났다. 성인 남자 셋이 달라붙어 긴 탁자가 가득 실린 수레를 끌었다. 빈 연회장을 긴 탁자로 채우는 일이 마지막 일이었다. 탁자를 펼쳐 배치하는덴 총 1시간이 걸렸다. 시계는 이미 10시 퇴근 시간을 30분 넘겼다. 퇴근시간이 무색할만큼 일은 착착 진행됐다. 결국 밤 11시가 다 되어서야 마무리됐다.
“집에 갑시다.”
직원이 퇴근을 지시했다. 휴게실에서 마지막으로 ‘근로계약서’를 작성했다. 시급 7000원, 9시간 근로. 직원은 '휴식시간 18시부터 19시까지, 1시간을 쉬었다'고 직접 적으라고 했다.
문제는 이 날 실제 휴식 시간과는 분명히 달랐다. 직원은 “야근수당까지 포함해 일급으로 입금해준다”고 말한 뒤 떠났다. 제 3자가 보면 계약서 상 근로기준법 위반은 없어 보였다. 하지만 휴식시간 1시간을 고스란히 도둑맞은 심정이었다.
근로기준법 ‘제54조(휴게) 1항 사용자는 근로시간이 4시간인 경우에는 30분 이상, 8시간인 경우에는 1시간 이상의 휴게시간을 근로시간 도중에 주어야 한다’고 명시돼있다. 이 날 기자를 비롯한 알바생들은 9시간 혹은 야근까지 10시간을 일했다. 하지만 법이 보장한 1시간 이상 휴게시간을 보장받지 못했다.
지난 4월 서울시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부터 올해 3월까지 접수된 ‘아르바이트 청년 노동권익 침해 현황’은 총 2744건이다. 이 중 휴게시간 미부여가 633건으로 전체의 23%를 차지했다. 지난 5월에도 비슷한 조사 결과가 있었다. 알바천국이 알바생 907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도 응답자의 47.3%가 ‘휴식시간 없음’라 답했고, 10분 이하(33.3%), 30분 이하(19.4%), 20분 이하(9.3%) 순이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지하철 가는 길에 알바생에게 오늘 일이 어땠는지 물었다. 의외로 긍정적인 답이 돌아왔다.
“이만하면 무난했던 알바인 것 같아요. 당연히 힘은 드는데 여긴(업체) 딱히 못된 사람도 없고, 밥도 잘 챙겨주잖아요.”
다음날에도 알바를 나가야된다는 그에게 휴식 없는 알바가 많은지 물었다.
"오늘처럼 짧게라도 쉬면 다행이죠. 그마저도 안 쉬는데가 태반이에요."
앞선 서울시 등의 조사 결과처럼 이 청년 역시 1시간 휴식을 제대로 보장 못받는 현실을 무기력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어쩌면 어쩔 수 없는 일로 당연시하고 있었다. 이날 알바생 중 30분 이상 정식으로 쉰 청년은 없었다. 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청년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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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김민성 / 연구=이재근 한경닷컴 기자 rot011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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