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암제 시장 패러다임 바꿀 것"
연간 90조원에 이르는 항암제 시장은 글로벌 제약 산업에서 최대 격전지 가운데 하나다. 규모 있는 다국적 제약사치고 항암제에 손대지 않는 곳이 없다. 국내도 마찬가지다. 한미약품 등 선두권 제약사뿐 아니라 바이오벤처들도 항암제 시장에 속속 도전장을 내고 있다.
3년차 바이오 스타트업인 하임바이오도 항암제 개발에 뛰어들었다. 이 회사가 개발 중인 항암제는 다소 독특하다. 암세포를 찾아내 공격하는 표적치료제나 인체 내 면역세포를 통해 암세포를 죽이는 면역치료제가 아니다. 대사 항암 치료제다.
4세대 '대사 항암제' 개발에 도전장
대사 항암치료제는 정상 세포에는 영향을 주지 않으면서 암세포만 굶겨죽이는 방식으로 암을 치료한다.암세포의 에너지 대사를 표적으로 하는 항암제다. 4세대 항암제로 불린다. 항암제는 '화학항암제(1세대) →표적항암제(2세대) →면역항암제(3세대)→대사항암제(4세대)'로 발전하고 있다.
하임바이오가 개발 중인 대사 항암 신약 'K817'은 세포 에너지 공장으로 불리는 미토콘드리아의 작동 경로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정상세포는 당이 미토콘드리아에 들어가 ATP(Adenosine Tri-Phosphate)를 생성한다. ATP는 네 가지 염기 중 하나인 아데닌에 인산기 3개가 나란히 직렬로 연결되어 있다. 생명체를 가동시키는 화학 에너지다.
그런데 암세포에서는 작동 경로가 다르다. 암세포는 당이 들어가면 유산으로 배출해버린다. PET(양전자 단층촬영) CT로 암 부위를 찾을 때 유산이 많이 나오는 부분을 찾는 게 이런 이유에서다. 와버그 이펙트다. 1928년 이 원리를 발견한 독일 과학자 오토 와버그는 이 공로로 노벨상을 수상했다. 다만 최근까지도 암세포가 어떤 경로로 에너지를 얻는지는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았다.
국립암센터의 김수열 박사가 비밀을 풀 열쇠를 찾아냈다. 두 가지 경로에서다. 김 박사는 우선 암세포 내에 알데하이드 분해효소 ALDH가 많아진다는 점에 주목했다. 암세포는 ALDH를 이용, 세포질에서 전자전달물질(NADH)을 생산해 미토콘드리아로 보내고 미토콘드리아 전자전달계에서 NADH를 이용해 에너지(ATP)를 합성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김 박사는 더 나아가 ALDH를 억제하는 목화씨 추출 단일성분이 암세포에서 에너지 합성을 현저히 낮춰 암세포가 성장하지 못하고 결국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을 발견했다.
두번째로 당뇨병 치료제로 사용되던 약을 추가하면 정상세포에서는 에너지 공급에 문제가 없지만 암세포에서는 에너지 공급이 80~90% 차단되는 효과를 확인했다. 수년전 미국에서 당뇨병 환자가 암에 걸릴 확률이 낮다는 보고서에 착안해 연구한 결과였다.
김박사는 연구 결과를 온코타겟과 네이처 자매지인 'Cell death & disease' 등 국제 학술지에 게제해 주목을 받았다. 현재 미국 하버드대, MIT, MD앤더슨 등에서도 대사항암제 임상 시험 을 진행 중이다.
전임상 단계 암치료율 95%
하임바이오는 지난해 국립암센터에서 관련 특허를 인수했다. 2014년 말 창업 이후 김홍렬 대표는 암진단키트 개발과 인중합체 연구에 치중했다.
그러던 중 김수열 박사의 연구결과를 토대로 한 항암제 개발 성공 가능성을 높게 본 김 대표가 30억원에 기술을 사들였다. 김 대표는 "고형암은 물론 재발 암 치료에 폭넓게 활용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하임바이오는 2019년께 'K817'의 임상 1상을 시작할 계획이다. 지난 6월 시작한 전임상은 내년 9월 마무리할 예정이다. 김 대표는 "비임상효능시험에서 대조군 대비 95%에 가까운 종양 억제 치료효과를 보였다"며 "항암제 시장의 패러다임을 바꿀 신약"이라고 강조했다.
하임바이오는 K817 시판을 최대한 앞당긴다는 전략이다. 김 대표는 "뇌종양, 췌장암 등 희귀암을 대상으로 먼저 임상 1상에 착수할 계획"이라고 했다. 뇌종양 등 치료제가 없는 희귀암의 경우 임상 1상에서 좋은 성과가 나오면 임상 2상 시작과 함께 곧바로 시판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뇌종양과 췌장암 국내 시장 규모는 연간 1400억원으로 추산된다.
K817은 목화씨 추출물 중 ALDH를 억제하는 단일성분과 라일락꽃 추출물 중 전자전달계 제1 컴플렉스 억제제인 단일성분 바이구아나이드의 복합약재로 개발 중이다. 이 두가지 물질은 모두 약으로 등록돼 있지 않아 신약으로 등록 가능하다.
인중합체 기반 의약품 개발에도 도전
하임바이오는 고려대 산학관에 둥지를 틀고 있다. 직원은 14명이다. 하임바이오는 인중합체 기반의 항암제 개발도 진행 중이다. 인중합체는 모든 생물체의 기본 성분으로 DNA의 백본에 해당한다.
하임바이오는 인중합체를 활용한 화장품도 곧 내놓는다. 양이온인 칼슘과 음이온인 인중합체로 DNA를 둘러싸게 하는 방식으로 DNA의 노화를 막는 방식이다. DNA를 코팅하는 효과를 내기 때문에 자외선이나 미세먼지로부터 피부를 보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주름제거와 미백 효과도 있다.
하임바이오는 화장품 사업을 위해 마스크팩업체인 이오이와 손잡았다. 김 대표는 "내달 스킨과 로션 화장품을 출시할 예정"이라며 "일본 동남아 등지로도 수출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손꼽히는 인중합체 전문가
1958년 생인 김 대표는 국내에서 손꼽는 인중합체 전문가다. 서울 종로에서 태어나 중동고와 경희대 생물학과를 나온 김 대표는 스탠포드대에서 생화학을 전공했다. 이후 스탠포드 의대에서 DNA 복제와 인중합체 분야를 연구했다. 1959년 노벨상을 수상한 아서 콘버그 교수의 지도를 받았다.
김 대표는 경희대 한의대 생화학교실을 만든 주인공이다. 1997년 국내 최초로 한의대에 만들어진 생화학교실은 양방과 한방을 접목시키는 역할을 했다. 그는 "바이오는 의학의 기초학문"이라며 "표준화가 되지 않은 한방 분야의 약효와 약리 등을 과학화하는 작업을 했다"고 했다.
박영태 기자 py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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