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감 증인신청 실명제 '의원 이름 홍보 수단' 우려
[ 박종필 기자 ] 올해 국회 국정감사부터 ‘국정감사 증인 신청 실명제’가 처음 도입된다. 지난해 12월 이뤄진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 개정에 따른 것이다. 증인을 부를 때 누가 무슨 이유로 부르는지를 명확히 해 증인 신청의 책임성을 높이고 무리한 무더기 증인 신청 등을 제도적으로 막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시행도 되기 전에 증인 신청 실명제 무용론이 제기되고 있다. 애초 취지와는 달리 오는 10월12일 시작되는 국감에서도 무더기 기업 증인 채택 등 구태가 되풀이될 것으로 예상돼서다. 재벌 개혁 등을 화두로 내세운 국회의원들에게는 증인 신청 실명제가 되레 자신을 알리는 홍보 수단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인 채이배 국민의당 의원은 17일 국감에서 증인으로 채택하겠다며 대상 기업 열 곳을 발표했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네이버, KT, 다음카카오, 엔씨소프트, 삼표, 금호아시아나, 국민은행 등이 리스트에 올랐다. 아예 대놓고 기업들에 ‘선전포고’를 한 셈이다. 채 의원 측은 “삼성의 대주주 적격성 문제와 국민연금이 계열사 합병을 도왔는지를 따지기 위해 삼성전자를 대상에 넣었다”고 말했다. KT와 다음카카오는 인터넷전문은행 추진 과정의 문제점을, 현대차와 삼표는 일감 몰아주기 의혹 등을 이유로 꼽았다. 구체적인 증인 명단은 내놓지 않았다.
정세균 국회의장은 지난 6일 상임위원장단 간담회에서 “이번 국감에서는 증인을 과도하게 채택하는 등 ‘갑질’을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증인 신청 실명제가 도입된 만큼 “일단 부르고 보자”는 식의 과거 증인 채택 남발을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는 당부였다.
지난해 국정감사까지 무더기 증인 채택 문제가 심각했다. 국회에 출석해 질문 한 번 받지 않고 돌아가는 사례가 비일비재했다. 지난해 국감에는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대한 국정조사가 맞물리면서 역대 최대인 150명의 기업인 증인이 출석했다. 하지만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질문의 절반 이상이 집중되면서 다른 증인들은 자리만 채우다 돌아가기 일쑤였다.
2년 전 국감에서도 소위 ‘형제의 난’이라 불리는 경영권 분쟁으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에게 질문이 집중되면서 나머지 증인은 ‘들러리’ 신세였다. 기업 총수들만 시간을 낭비하는 게 아니다. 총수를 보좌하기 위해 임원 수십 명이 국회로 출동함에 따라 기업활동은 사실상 마비되다시피 한다.
이옥남 바른사회시민회의 정치실장은 “작년 국감에서 초반 1주일 동안 정무위원회 등 세 개 상임위를 지켜본 결과 390여 명이 증인과 참고인으로 출석했으나 질문이 주어져서 답변한 사람은 34%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잘못된 관행이 이번 국감에서 사라질 가능성은 별로 없다는 관측이 많다. 증인 신청은 여야가 상임위별로 각 당의 명단을 받아 취합한 뒤 여야 간사 협의를 통해 명단을 확정한다. 대부분 상임위가 증인 협상을 비공개로 한다. 여야의 비공개 ‘밀실 협상’이 마무리돼야 증인 윤곽이 드러나는 구조라는 점에서 증인 신청 실명제의 실효성이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국감에서 증인과 자료 제출 요구를 무더기로 하는 이유는 의원의 전문성 부족 때문”이라며 “증인 신청 실명제는 대안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정책 전문성을 갖춘 의원 전문보좌관제가 정착된다면 꼭 필요한 사람만 가려 증인으로 신청할 수 있다”고 했다.
이 실장도 “증인에게 호통치고 면박을 주는 과정에서 의원 인지도가 올라가기 때문에 증인 신청 실명제의 효과는 작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종필 기자 j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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