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 사용·TV 시청도 불가
[ 정인설 기자 ]
“총원 전투배치, 긴급 잠항.”
비상경보 발령 소리에 승조원들이 “비상”을 외치며 한꺼번에 잠수함 앞쪽으로 달려간다. 무게 중심을 앞으로 쏠리게 해 잠수함이 1초라도 빨리 심해로 들어가게 하기 위해서다. 지난 12일 제주 해군기지에서 출항한 1200급 해군 잠수함 ‘이억기함’의 훈련 모습이다.
이날 우리 해군은 1992년 잠수함 도입 이후 처음 잠수함 작전과 내부 모습을 공개했다. 끊이지 않는 북한 도발에 신속 대응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모의 전투 장면을 연출했다. 제주 해군기지에서 출동한 이억기함은 마라도 근처 50m 수중까지 들어갔다. 잠항 중 10여㎞ 앞에서 적 함정을 발견한 뒤 시뮬레이션으로 중어뢰를 발사해 명중시켰다.
강병오 함장(중령)은 “해군 잠수함 부대는 지금 당장 명령이 떨어져도 적진에 침투해 임무를 완수할 준비가 돼 있다”고 강조했다.
이억기함은 임진왜란 당시 전라우도 수군절도사를 지낸 이억기 장군의 이름을 딴 잠수함이다. 국내 첫 번째 잠수함인 장보고함(1200급)보다 9년 늦은 2001년부터 운용되고 있다. 동급 잠수함에 없는 잠대함 유도탄(하푼)을 장착하고 있다. 연료 보급 없이 미국 하와이를 왕복할 수 있다.
길이 56m, 폭 6.2m인 이억기함에는 40명 이상의 승조원이 탈 수 있다. 하지만 전투작전과 관련된 장비와 시설이 대부분 공간을 차지해 내부 공간은 좁다. 2층 침대도 안 들어갈 공간에 4층 침대를 설치해 1개 침실 높이는 60㎝ 정도다. 이마저 2~3명이 교대로 한 침대를 사용한다. 남녀 침실이나 화장실 등을 따로 두기 힘들어 국내 잠수함엔 아직 여성 승조원이 없다. 승조원 양성 기간이 길어 장교와 부사관으로만 구성되고 병사는 없다.
보통 3~4주인 작전 기간에 물을 아껴야 해 샤워는 주 1회 정도 한다. 평소엔 물티슈로 몸을 닦는다. 빨랫감은 봉지에 밀봉해 입항 후 집에서 세탁한다. 작전 기간에 담배를 피울 수 없고 휴대폰 사용이나 TV 시청도 불가능하다. 잠수함 내부 공기가 탁할 때마다 스노클 마스트를 수면 밖으로 내보내 바깥 공기를 빨아들이고 들어온 공기를 내부에 있는 환풍기를 통해 함 전체로 전달한다.
작은 소음도 적에 노출될 수 있어 운동은 턱걸이, 푸시업, 스트레칭 정도로 끝낸다. 밀폐된 공간에서 장기간 햇빛을 보지 못해 대부분 피부질환이나 잇몸질환 등을 달고 산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갈수록 잠수함 근무를 기피한다. 지난 10년간 잠수함 전담 장교와 부사관 중 70%가량이 다른 병과로 옮겼다. 해군 관계자는 “잠수함 작전이 중요한 만큼 잠수함 승조원들에게 다양한 인센티브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제주=정인설 기자 surisur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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