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집행 일관성 훼손 논란
서울·경기남부경찰청 기관 경고
경찰, 차량시위 대응 위축 불가피
시민단체 등 외부 입김 휘둘려
"경찰 치안 업무 흔들릴 정도로 외부 영향 받는 건 정치 편향"
[ 이현진 기자 ] ‘인권경찰’을 목표로 경찰이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 사항을 차례차례 수용하고 있다. 경찰 내 인권 의식을 바로 세우는 과정이라는 평가와 함께 ‘정치권 눈치보기’나 ‘현장을 모르는 탁상조치’라는 내부 비판도 커지고 있다. 인권위·시민단체 등 각종 외부 단체의 과도한 입김이 공권력 위축을 부르고 있다는 우려가 만만찮다.
◆“적법 조치에 경고라니” 부글부글
17일 경찰과 인권위에 따르면 경찰청은 지난해 화물차량과 트랙터를 이용한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상경투쟁’(사진)을 경찰이 막은 것은 헌법상 기본권 침해라는 인권위 판단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당시 상경투쟁에 대응한 서울지방경찰청과 경기남부지방경찰청에 기관경고 조치할 계획이다.
전농은 지난해 10월과 11월 두 차례 서울 세종로소공원 집회에 참여하기 위해 올라오다가 경기 안성요금소와 서울 양재나들목, 한남대교 남단 등에서 경찰에 차단당했다. 인권위는 이 조치가 헌법상 집회·시위의 자유를 침해했다고 판단했다. 경찰은 화물차와 트랙터에 깃발 등을 달고 줄지어 운행한 것을 ‘미신고 집회·시위’로 보고 통제했지만, 인권위는 “공공 안녕에 직접적인 위험을 명백히 초래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본 것이다.
경찰청은 인권위 권고를 받아들여 향후 차량 시위 대응 방안을 마련키로 했다. 하지만 일선 치안현장에서는 ‘과도한 처사’라는 불만이 팽배하다. 한 경찰 관계자는 “당시 경찰은 적법한 절차와 기준에 따라 집회·시위에 대응했다”며 “불법행위나 피해자가 없었는데도 경고받는 상황은 납득이 어렵다”고 말했다. 경찰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법집행의 일관성이 훼손됐다는 주장이다.
◆“업무 본질 뒤흔드는 정치 편향 안 돼”
최근 경찰 내부에서 ‘인권 이슈에만 힘을 쏟는다’는 불만이 커지고 있다. 인권경찰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현장 사정을 무시한 채 ‘코드 맞추기’에 급급하다는 주장이다. 한 경찰 관계자는 “정작 시위나 순찰 때 경찰관이 겪는 위험한 상황과 경찰의 인권에 대해선 관심이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최근 발표한 집회·시위 관리 방안에 대해서는 ‘현실성이 없다’며 냉소적인 반응이 쏟아진다. 차벽 및 살수차 금지 예외규정으로 둔 ‘긴급한 상황’ ‘위급한 상황’이 너무 모호하다는 지적이다. 한 경찰관은 “폭력 현장에서 그것이 과도한 수준인지 아닌지 일일이 판단하고 승인받아 대응하는 게 가능한가”라고 되물었다. 시민이 참여한 경찰감시기구에 수사권을 주는 것 역시 과하다는 반응이다. 감찰·감사 등 경찰이 독립적으로 갖고 있는 기능이 무력해질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경찰의 행보가 인권위·시민단체 등 외부 의견에 휘둘리는 것이 가장 큰 문제로 거론된다. ‘정부 성향에 맞춰 앞장서서 뛰쳐 가는 모습이 과연 경찰의 바람직한 모습인가’라는 근본적 의문이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철학에 바탕을 둔 법집행이 아니라 정권 입맛에 좌우되는 모습은 안 된다”며 “경찰 업무의 본질이 흔들릴 정도로 외부 영향을 받는 것은 정치 편향으로밖에 볼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현진 기자 appl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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