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춘의 국제경제읽기] 영국 비트코인 펀드 고객 돈 95% 증발… 북한 소행?

입력 2017-09-17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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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화폐 투기 17세기 '튤립 투기' 연상
'순간 폭락' '대손실' 등 후폭풍 빈번
가상화폐 공식화 문제 검토할 시점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



최근 들어 비트코인, 이더리움을 비롯한 가상화폐가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우후죽순처럼 빠르게 태어나 확산되고 있다. 공식 화폐도 아닌 비트코인 가격이 한 달도 못 되는 기간에 100% 이상 치솟는 일도 종종 발생한다. 한 뿌리 가격이 1년 중산층 생활비의 10배를 웃도는 수준까지 올랐던 17세기 네덜란드 튤립 투기를 연상케 한다.

가상화폐 발달로 국민의 화폐 생활도 급변하고 있다. 가장 큰 변화는 현금 없는 사회가 닥치고 있다는 점이다. 오히려 국가의 공식적 화폐인 법화(法貨·legal tender)를 갖고 있으면 부패와 탈세 등의 혐의로 의심받는 단계에 이르고 있다. 케네스 로코프 하버드대 교수가 우려한 ‘현금의 저주(curse of cash)’ 시대가 닥치고 있는 셈이다.

후폭풍과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지난 6월 이더리움 가격이 한순간에 90% ‘순간 폭락(flash crash)’했다. 이달 들어서는 영국에서 비트코인 펀드 고객 돈의 95%가 눈 깜작할 사이에 증발하는 ‘대손실(drawdown loss)’이 일어났다. 가상화폐발(發) 금융위기가 발생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도 고개를 들고 있다.

제도권으로 편입되지 못한 상황에서 가상화폐 가격이 순간 폭락하면 곧바로 ‘마진 콜(margin call·증거금 부족)’로 연결된다. 이더리움 가격이 순간 폭락한 직후 900개가 넘는 관련 업체에서 마진 콜이 발생했다. 비트코인 펀드 대손실이 발생한 뒤 영국 금융감독청도 이 펀드 운용회사의 마진 콜 발생 여부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

가상화폐와 달리 제도권에 속한 비트코인 펀드 운용사에서 마진 콜이 발생하면 반드시 보전해놔야 한다. 10년 전 금융위기에서 경험했듯이 비트코인 펀드 운용사가 마진 콜에 응하기 위해 기존 투자자산을 회수하는 ‘디레버리지(deleverage)’ 과정에서 다른 시장이나 국가로 더 크게 전이되는 ‘나비 효과(butterfly effect)’가 발생한다. 그때는 금융위기다.

주목해야 할 것은 올 들어 잇달아 발생하고 있는 비트코인 폭락 사태가 북한과 깊은 연관이 있다고 보는 시각이다. 특히 외화 조달 차단에 초점을 맞춘 유엔의 제재 이후 북한이 가상화폐 해킹으로 외화 조달에 본격 나설 것이라는 예상도 만만치 않다. 주 타깃은 ‘한국 시장’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우리 정부가 주목해야 할 대목이다.

각국의 대응도 빨라지고 있다. 중국은 가상화폐 거래소(장외 포함)를 잠정 폐쇄했다. 첫 법정화에 나섰던 일본도 가상화폐 투자 시세차익의 45%를 세금으로 거둬들이는 보완책을 발표했다. 영국, 독일,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도 조만간 규제에 나설 움직임이다. 각국 중앙은행은 가상화폐의 공식 화폐 인정 문제를 본격적으로 검토하기 시작했다.

화폐개혁의 필요성이 증대되고 논의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목적이 다르긴 하지만 실제로 단행한 국가도 의외로 많다. 미국은 20달러, 50달러, 100달러짜리를 새롭게 도안해 2013년 발행했다. 이듬해 일본은 20년 만에 1만엔, 5000엔, 1000엔짜리 신권을 선보인 데 이어 2015년에는 중국, 작년 말엔 인도네시아가 신권을 내놨다.

화폐 거래단위를 축소하는 리디노미네이션을 단행한 국가도 있다. 터키, 모잠비크, 짐바브웨, 북한 등이 대표적인 국가다. 작년 11월 인도에선 전체 화폐 유통 물량의 86%를 차지하는 구권 500루피, 1000루피를 신권 500루피, 2000루피로 교체하는 급진적인 화폐개혁 조치가 의외로 큰 성과를 거뒀다. 비슷한 시점에 베네수엘라도 화폐개혁을 단행했다.

‘현금의 저주’를 해결하기 위해 고액권 발행을 중단하거나 폐지하자는 논쟁도 거세지는 추세다. 2000년 캐나다, 2014년 싱가포르에 이어 작년 5월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는 최고권종인 500유로 발행을 2018년 말까지 한시적으로 중단했다. 미국도 최고권종인 100달러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계속되고 있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그 어느 국가보다 우리도 가상화폐 투기가 심하다. 투기 광풍 뒤에 ‘거품’이 터지고 심한 후유증에 시달리는 것은 자본주의의 피할 수 없는 길이다. 부패도 심하다. 기득권 혐오증도 최고조에 달한다. 문재인 정부도 기득권을 개혁하고 부패를 청산해 정의롭고 깨끗한 사회를 구축해달라는 국민의 촛불 열망 속에 태어났다.

법화 시대에 화폐개혁을 추진하는 것만큼 국민의 관심이 높은 것은 없다. 리디노미네이션을 단행할 경우 더 그렇다. 특히 경제활동 비중이 놓은 대기업과 부자, 권력층일수록 저항이 크다.

이 때문에 경제가 안정되고 국민의 공감대가 형성돼야 어떤 형태든 화폐개혁의 추진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지금은 때가 아니다.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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