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는 성경에도 등장할 정도로 오래된 직업이다. 신약성서를 보면 “닷새 후에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더들로라는 변호사와 함께 총독 앞에서 바울을 고소하니라(사도행전 24:1)”고 돼 있다. 세상사에는 분쟁이 필연적으로 수반될 터이니, 이를 해결해주는 직업인 변호사 역시 인류 역사만큼 길 수밖에 없다.
우리 역사에도 오래전부터 변호사 역할을 하는 직업이 존재했으며, 1907년 9월23일 국내 최초의 변호사단체로 서울지방변호사회의 모체인 한성변호사회가 창립됐다. 총칼보다 강한 정의의 붓으로 인권을 쓰는 1만7000명의 변호사가 가입돼 있는 서울지방변호사회가 올해로 창립 110주년을 맞이했다.
변호사들은 일제강점기 때는 독립운동가 그 자체였다. 김병로, 허헌을 비롯한 많은 변호사가 3·1운동 지도자들과 독립투사의 무료 변론에 나섰고 신간회 활동을 하다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광복 이후엔 제헌헌법을 만들고 법치주의의 초석을 놓는 데 앞장섰다.
변호사들은 무엇보다 국민의 인권 옹호와 정의를 위해 헌신했다. 국내 여러 정치적 격변기에 변호사들은 정권의 반인권적 행태에 맞서 ‘인권지킴이’ 역할에 앞장서왔다.
현재 서울지방변호사회는 형사당직변호사제도, 마을변호사제도, 프로보노 지원센터를 운영하는 등 공익 활동에 앞장서고 있다. 소년소녀가장, 순직 경찰관과 소방관 자녀 후원 등 다양한 기부활동도 하고 있다.
‘익산 약촌오거리 살인사건’처럼 공권력의 잘못으로 억울한 옥살이를 한 국민의 마음을 풀어주는 재심전문 박준영 변호사도 서울변호사회 소속이다. 박 변호사는 2000년 8월10일 전북 익산시 영등동 약촌오거리 버스정류장 앞에서 택시기사를 살해한 혐의로 15년형을 선고받은 최모씨의 재심사건을 맡아 지난해 수사기관의 부실수사를 파헤치고 무죄를 이끌어냈다. 변호사가 검·경의 강압수사에 맞서 인권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인 점을 극적으로 보여준 사례다. 서울변호사회는 지금도 인권 침해를 감시하고자 인권지킴이단을 구성해 언제든지 현장으로 달려가고 있다.
물론 변호사가 정의의 사도 역할만 한 것이 아님도 분명하다. 지난해 불거진 ‘정운호 게이트’ 등 심심찮게 터져 나오는 법조 비리에 변호사들이 연루되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국내 변호사의 약 75%가 소속된 서울변호사회의 창립 110주년을 맞아 인권의 최후 보루로서 변호사의 소임에 대해 다시 한번 각오를 다지게 된다.
이찬희 <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 chanhy65@nate.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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