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나모리 가즈오 일본 교세라 창업자가 말하는 기업의 존재 이유는
<이나모리 가즈오 회장이 한국에서 강연하는 모습>
요즘 일본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인은 이나모리 가즈오 교세라그룹 창업주(전 JAL 명예회장)이다. 한국 나이로 86세인 이나모리 회장은 글로벌 경영 지식으로 무장한 쟁쟁한 젊은 기업인들을 제치고 일본인들로부터 가장 신뢰와 사랑을 받고 있다. 이나모리가 20대에 창업한 교세라그룹이 고성장을 지속하고 있고, 파산에 몰렸던 JAL(일본항공)도 경영을 맡은 지 2년 만에 정상화시켜 일본국민들의 자존심을 살렸다.
JAL은 200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일본 대학생들이 선망하는 최고의 직장이었다. 그러던 JAL이 경영난에 빠져 파산 직전에 몰리면서 정부의 구제금융을 받을 정도로 위기에 빠졌다. 이런 회사를 2년 반 만에 회생시킨 경영자가 바로 이나모리 가즈오이다. 전자부품 업체 교세라를 세계적 회사로 키워 '경영의 신'으로 불린다.
이나모리 경영 철학의 요체는 사원들의 의식 개혁이다. '종신 고용'으로 대표되는 일본형 경영의 장점을 지켜가면서 사원들의 노력을 최대한 끌어내 기업의 경쟁력을 키우자는 것. 일본 경영학자들은 그의 경영 방식을 '실력 종신 고용제도'라고 지칭하고 있다.
◆인생에 성공하려면, 어떻게 살 것인가
교세라는 2017년 현재 전자, 광학, 카메라, 정보통신, 태양광 발전 등의 분야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자랑한다. 1959년 창업 당시 자본금 300만 엔, 종업원 18명으로 출발했다. 임대 건물을 빌려 시작한 영세 업체였으나 1984년에 제2電電(현 KDDI) 설립 후 급성장했다. 이나모리는 2010년엔 경영 파탄이 난 일본항공 회장 취임 후 무보수로 근무했다.
그는 사원들에게 항상 "어떻게 살 것인가"를 강조한다. 모든 사원들이 이러한 '교세라 철학'을 공유하도록 유도한다. 이나모리는 평소 3대 경영 목표를 강조하고 있다. △사원의 물질적, 정신적 행복 실현과 인류사회 발전 공헌 △경영자 의식을 가진 인재 양성 △전원 참가형 경영 실행 등이다.
이나모리는 경영 목표 달성을 위해 '아메바 경영'을 도입했다. 아메바는 단세포 생물로, '아메바 경영'은 기업 내부 각 사업부문이 독립 경영하는 방식을 뜻한다. <1>사업부문을 대부분과 소부문으로 분할, 이들 부문을 독립채산제로 운영. 예를 들어 뉴세라믹부문은 원료, 성형, 소성, 가공의 4개 소부문으로 분류. 부문장은 소사장 역할 <2>회계의 더블 체크. 회계 담당은 2인 또는 2개 부서로 2중 체크. 인간의 약점을 제도적으로 관리해 부정 발생을 사전에 방지 <3>사원실적주의 중시. 단기 실적이 아닌 장기적인 성적이나 사원의 업무 자세 강조.
2010년 초 생존 위기에 빠진 JAL의 사령탑에 오른 이나모리 회장의 일성은 "앞으로 비즈니스 마인드로 무장한 체질로 바꿔 놓겠다"는 것이었다. 그는 취임 이후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실시했다. 이나모리 회장은 "항공업계는 전혀 경험이 없는 초보자이지만 '수입을 늘리고 비용을 줄인다'는 기업 경영의 기본 원칙은 제조업과 다를 게 없다"고 강조했다.
◆기업의 존재 이유는 회사 직원의 행복에 있다
일본 근무 시절 여러 차례 이나모리 회장을 직접 만나 취재한 경험이 있다. 일반 경영자들과는 다른 강력한 카리스마를 느꼈던 기억이 난다. 그는 마쓰시타 고노스케(마쓰시타그룹 창업자자), 혼다 소이치로(혼다그룹 창업자)와 더불어 일본에서 3대 '경영의 신'으로 불린다<i>.</i>
이나모리 회장은 지방대인 가고시마공대를 졸업한 뒤 20대에 교세라를 창업했다. 그는 20대 청년 시절의 불운과 좌절을 극복하고, 작은 동네 공장으로 시작한 교세라를 세계적 기업으로 일궈냈다. 이나모리 회장은 경영 방식인 '아메바 경영'뿐 아니라 인생의 지침이 되는 잠언록으로도 유명하다. 그의 경영 철학을 연구하는 모임인 '세이와쥬크'는 일본 국내는 물론 세계 50여개 지역에 설치돼 각국 사람들로부터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일본에서 세이와주크 모임에 참석한 적이 있다. 이나모리 회장의 경영과 인생 철학을 배우기 위해 모여든 학도들의 표정이 너무 진지했다. 몇년 전 일본 지인으로 이나모리의 경영 철학에 대해 좋은 얘기를 많이 들었다. 특히 기억에 남는 말이 '기업의 존재 이유'였다.
그는 2008년 미국에서 발생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일본식 경영'이 다시 조명을 받고 있다고 자신있게 말했다. 기업의 존재 가치는 미국식 경영 목표인 '주주가치의 극대화'가 아니라 '회사 종업원들의 행복’에 있다'는 설명을 듣고 느낀 바가 많았다.
오늘날 세계적인 이슈로 떠오른 자본주의의 문제를 이나모리식 경영으로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자본주의 부작용으로 지적된 빈부 격차 확대나 사회 양극화 심화는 기업의 존재 가치에 대한 재정립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기업의 존재 이유가 직원들의 행복이기 때문에 고용 유지를 위해 기업이 영속해야 하고, 지속적으로 성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기업의 지속적인 성장이 필요하다는 측면에선 미국식이나 일본식 경영 모두 큰 차이가 없지만 회사의 최우선 경영 목표를 어디에 두느냐는 다소 차이가 난다. 사회적 강자와 약자, 대기업과 중소 기업의 상생이 필요한 한국의 현실에서 이나모리식 경영 철학을 한번쯤 되새겨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다.
◆인생에서 성공하려면 3毒에 주의해야
지인으로부터 이나모리의 경영철학을 연구하는 세이와주크에서 만든 신년 달력도 하나 받았다. 이나모리의 철학을 일별로 적어 놓은 달력이다. 새해를 앞두고 달력에 적힌 이나모리의 글귀를 떠올리곤 한다.
그가 전달하려는 메시지의 핵심은 "3毒을 주의하라"였다.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기 위해선 욕망(탐욕)을 억제하고, 화를 누르고, 어리석음을 깨우치라는 뜻으로 이해하고 있다.
이나모리는 "기업을 경영하는 진정한 목적은 기술자의 꿈을 실현하는 것이 아니며, 자기 잇속을 챙기고 부자가 되는 것도 아니다"고 말한다. 그는 몇년 전 서울 강연을 통해 자신의 경영철학을 소개했다. 그는 "경영자의 목적은 현재는 물론 미래까지 종업원과 그들 가족의 생활을 지켜주고 믿음을 주는 데 있음을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이나모리는 "보편적인 경영원칙이 기업을 성장으로 이끈다"는 주제로 12개 경영원칙을 소개했다. 그는 "기업의 목표는 회사 전체의 막연한 숫자가 아니라 조직별로 세분화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1년을 아우르는 연간 목표뿐만 아니라 월간 목표도 정해야 하고 매일의 목표도 설정해야한다는 것.
이나모리는 "일반적으로 5개년 계획 또는 10개년 계획 같은 중·장기적 경영 계획을 입안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교세라는 장기계획을 세운 적이 거의 없다"고 밝혔다. 또 "경영컨설턴트들은 '코앞의 표만으로는 큰 사업을 할 수 없다'고 입을 모으지만 교세라는 1년마다 구체적인 목표를 세워 이를 꾸준히 달성했고, 또 다음해에는 반드시 전년도 실적을 상회하는 목표를 세워 이를 확실히 달성하는 것을 일관되게 관철시켰다"고 강조했다.
◆경영 대원칙은<i> </i>매출 최대화, 비용 최소화
이나모리 회장은 "매출 최대, 경비 최소를 경영의 대원칙으로 삼고 있다. 그는 '일반적인 경영상식으로는 매출이 증대하면 경비도 함께 늘어난다" 며 "그런 선입견을 버리고 매출을 최대한으로 늘리고 경비를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한 창의적 노력을 계속하는 자세가 고수익을 낳는다"고 말했다. 그는 "수주가 늘고 매출이 확대돼 회사가 발전하는 시기야말로 합리화를 도모하고 고수익의 기업 체질을 갖출 수 있는 천재일우의 기회" 라며 "하지만 대부분의 경영자는 이런 호황기에 불필요하게 경비를 낭비하고 과다한 설비투자를 하는 등 방만한 경영에 빠지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나모리 회장은 교세라 창업 초기부터 '아메바 경영'으로 불리는 경영시스템을 도입했다. 몇명에서 십여명 정도로 구성된 '아메바'로 불리는 소그룹이 이 시스템에 따라 일을 하며 월간 매출과 경비 명세를 조직별로 명확히 알 수 있게 한 시스템이다. 그는 '매출에서 소요 경비를 모두 차감하고 남은 금액을 월간 총 근로시간으로 나눈 숫자로 경영지표를 삼고 있다" 며 "이것을 우리는 '시간당 채산제도'라 부른다"고 소개했다.
◆가격 결정이 경영이다
이나모리 회장은 가격 결정을 할 때 '구매'와 제조 사업부의 '비용 절감'이 연동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경영자가 가격 결정을 하는 순간에는 이미 자재 구매나 제조 비용 절감에 대한 생각이 있어야 한다" 며 "어떻게 하면 제조비용을 줄일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도 중요한 업무 중 하나"라고 강조했다.
이나모리 회장은 "제품의 가치를 정확히 판단한 후 개당 제품의 이윤과 판매 수량을 곱한 것이 극대치를 이루는 한 점을 찾아 가격 결정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제조업체를 예로 들면 영업파트에서 싼 가격으로 수주하면 제조 파트에서는 아무리 노력해도 이익을 내기 어렵다. 따라서 영업 파트는 가급적 높은 가격으로 팔아야 하지만 정해진 가격 내에서 이익을 낼 수 있는지는 제조 파트의 책임이다다.
그는 "재료비는 얼마, 인건비는 얼마, 기타 경비는 얼마 하는 식의 고정관념과 상식은 모두 버려야 한다" 며 "사양과 품질 등 주어진 요건을 충족시킨 범위 내에서 제품을 가장 낮은 비용으로 제조하는 노력을 철저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나모리 가즈오 약력
△ 1932년 가고시마현 출생 △1955년 가고시마대 공학부 졸업 △1959년 교토세라믹(현 교세라) 창업 △1966년 대표이사 사장 회장 (1985) 명예회장 (1997년) △2010년 일본항공 회장
최인한 한경닷컴 이사(일본경제연구소장) janu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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