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인 후보자 20여명 이미 고사
주식 백지신탁 조항이 걸림돌
중소기업 정책·인사 올스톱
4명의 실장 중 3자리 공석…산하기관 구조조정도 늦어져
원점으로 돌아간 후보인선
민주당 박영선·윤호중 의원 등 청문회 통과 쉬운 정치인 재거론
[ 문혜정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이 새 정부 마지막 국무위원인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을 지명하지 못한 채 지난 18일 미국 출장길에 올랐다. 지난 7월26일 출범한 중소벤처기업부는 두 달 가까이 장관 없는 부처로 방치되면서 표류하고 있다. 정치권에선 박성진 중기부 장관 후보자가 인사검증 부실 논란 속에 사퇴함에 따라 새 후보자 지명에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가장 까다로운 인사가 된 만큼 추석연휴를 넘길지 모른다는 우려도 나온다.
주식 백지신탁에 막힌 기업인 후보자 지명
“박성진 후보자는 아시다시피 27번째 후보자였다. 한국 벤처의 새로운 아이콘을 찾아 모시려 했는데, 답을 찾지 못했다.”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은 지난 15일 박 후보자가 청문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자진 사퇴한 직후 해명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중소벤처기업부는 벤처 중심의 기업생태계를 조성하겠다는 새 정부의 경제정책을 실현할 핵심 부서다. 그래서 문 대통령은 초대 장관에 상징적인 벤처기업인(출신)을 임명하려고 했고 청와대는 이런 기준에 부합하는 인물을 찾았다. 일부 유력 정치인이나 관료 출신들은 일찌감치 후보군에서 배제됐다.
그러나 20여 명에 이르는 기업인 후보자들은 난색을 보였다. 주식백지신탁 조항이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2006년부터 시행된 ‘공직자 주식백지신탁’ 제도는 고위 공직자가 직무와 관련한 기업의 주식(5000만원 초과 상당)을 보유할 수 없도록 했다. 장관에 임명되면 보유 주식을 한 달 안에 매각하거나 금융기관에 신탁해야 한다. 금융기관도 2개월 안에 주식을 매각한다. 한때 장관 후보자로 유력하게 거론됐던 변대규 휴맥스홀딩스 회장 지명이 무산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결국 청와대는 교수 출신이지만 창업 경험이 있고 대학 내 기술지주 대표를 맡고 있는 박 후보자를 대안으로 선택했다. 그러나 업무능력을 검증받기도 전에 종교와 사상 문제에 발목이 잡혀 낙마했다. 청와대는 부실 검증 논란에 휩싸였다. 교수 출신 장관 후보자 인선은 더욱 어려워질 전망이다.
박 후보자의 경우 일부 포스텍 교수들이 공개적으로 반대하고 제보에 나서면서 분위기가 악화됐다. 박 후보자가 사석에서 “동료 교수들의 반대에 큰 배신감을 느꼈다”고 말했을 정도다. 한 대학교수는 “박 전 후보자로 인해 중기부 장관 청문회 검증 과정이 더 까다로워질 것 같다”며 “교수들 사이에서 청문회 공포증이 커졌다”고 전했다
후속 인사 막혀 업무 공백
중기부는 인사 및 주요 정책이 멈춰 선 상태다. 차관급인 중소기업 옴부즈만, 정책을 총괄하는 1급 실장 4자리 중 3개가 공석이다. 청와대 중소기업비서관도 임명이 늦어지고 있고, 중소기업계 의견을 정부에 전달하는 중소기업중앙회 상근부회장 자리도 비어 있다.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원장, 서울창조경제혁신센터장도 마찬가지다. 대부분 장관이 임명된 다음에야 인사를 할 수 있는 자리다.
중기부는 ‘일상적 업무 외에는 손을 놓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등에 따른 중소기업 및 소상공인 대책은 대부분 다른 부처와 업무협의를 통해 결정해야 하는데 장관이 없는 상황에선 쉽지 않기 때문이다. 테크노파크와 기술보증기금 등 산하기관의 구조조정도 늦어지고 있다. 다음달 16일로 예정된 국정감사도 장관 없이 치를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중기부 관계자는 “장관이 없는 상태에서 새 정책의 기조를 짤 수는 없다”며 “장관이 언제 올지 모르니 답답하다”고 말했다.
정치권에선 28번째 장관 후보자로 박 후보자가 지명되기 이전의 인물들이 다시 거론되고 있다. 대부분 상대적으로 청문회 통과가 수월할 것으로 예상되는 정치인들이다. 김병관·박영선·윤호중 의원, 오영식·홍종학 전 의원 등이 대표적이다. 중소기업계에서도 정치인 출신을 선호하는 분위기다.
한 중소기업계 관계자는 “새 정부가 중기부 수장을 선임하는 데 ‘벤처’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사실 부처 현안은 중소기업 및 소상공인과 관련한 일이 더 많다”며 “대부분 부처 간 협의를 거칠 수밖에 없어 기업인이나 교수 출신보다는 정치인이 더 나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문혜정 기자 selenm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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