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가까운 사람들조차 서로 이해하지 못하는 인간 내면 치밀하게 그려
[ 심성미 기자 ]
“타인을 완전히 이해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자신조차 신뢰하지 못하는 게 인간이기 때문이죠. 완전한 이해를 욕망하지 않으면 기대를 덜 하게 되고, 너그러워질 수 있는 게 인간인 거 같습니다.”
관념적인 문장으로 치열하게 인간의 내면을 파헤치는 소설가 이승우(사진)가 8편의 단편을 묶은 소설집 《모르는 사람들》(문학동네)을 펴냈다. 8편의 소설에서는 가장 가까운 사람들조차 서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이 쳐놓은 불신의 덫에 갇혀 타인을 보듬지 못하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19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이 작가는 “8편의 단편을 썼던 2014년 봄부터 올초까지의 국내 정치정세가 내게 큰 영향을 줬다”고 말했다.
“세월호 사건부터 탄핵 정국까지 일어났던 일들은 제가 성인이 된 뒤 가장 크게 받은 충격이에요. 당시 상황이 옳고 그르다는 판단을 떠나 ‘이해할 수 없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우리는 타인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다는 생각말입니다. 그러다 보니 단편집 소설의 주제가 비슷해진 것 같습니다.”
그의 소설에서는 한집에 사는 가족마저 ‘가장 멀리 있는 사람’으로 그려진다. ‘강의’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누리게 해주려고 고금리로 돈을 빌린다. 감당할 수 없는 순간이 온 어느 날, 집에 돌아온 아버지는 마룻바닥에 누워 “손가락 하나 움직일 힘이 없구나”라는 말을 뱉은 뒤 숨을 거둔다. 아들인 나와 어머니는 같은 집에 살면서도 아버지가 숨질 때까지 그의 괴로움을 알지도, 이해하지도 못했다. ‘가장 단순하고 가장 투명해 보이던 아버지야말로 우리가 가장 모르는 사람이었다’(110쪽).
이 작가는 “아버지는 ‘가족 이데올로기의 순교자’”라고 설명했다.
"본인은 죽을 정도로 허덕이면서도 자식에게 남들이 해주는 건 모두 해주고 싶었던 아버지는 경제적 가치에 함몰돼 숨을 거뒀어요. 소설집을 쓰면서 가장 뭉클하고 울컥했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다른 사람에 대한 이해는 마치 ‘번역’과도 같다”고 빗대어 얘기했다. “번역할 때 한 국가의 문화와 관습을 담아 모든 뉘앙스를 완벽하게 번역하는 건 불가능해요. 그러나 ‘충분한 번역’이란 건 존재하지요. 인간에 대한 이해 역시 완전을 추구하는 건 불가능하지만 충분할 순 있다고 봐요.”
소설을 관통하는 큰 주제는 ‘타인에 대한 이해’지만, 8편의 소설은 작은 줄기에서 더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모르는 사람들’에서 ‘나’는 11년 전 흔적도 없이 갑자기 사라진 아버지의 부고를 듣는다. 어머니는 남편이 어린 여배우와 바람이 나 유럽으로 여행 가던 도중 비행기 사고로 사망했다고 믿고 있다. 하지만 아버지의 부고가 들려온 곳은 아프리카 레소토다. 가족은 아버지가 아내의 가업에서 일하길 원했지만 적응하지 못한 아버지는 가족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선교사로 떠난 것이다.
“가치 있는 것을 좇는 사람과 현실 세계에 발붙인 사람 중 누가 옳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고상한 것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아버지처럼 가족을 버리고 떠날 정도로 이기적이어도 괜찮은지 묻고 싶었어요. 동시에 현실의 삶을 꾸역꾸역 이어나가는 것 또한 천박함으로 치부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넘어가지 않습니다’에선 타인에 대한 두려움이 가까스로 희석되는 주인공의 모습을 그린다. 폭력을 일삼는 동거남에게서 달아나 전원주택으로 숨는 주인공 여인. 한 외국인 노동자가 그 부근 담벼락을 밤마다 배회한다. 알고 보니 그는 고국에 있는 가족과 통화하기 위해 와이파이를 찾아 집 근처를 서성인 것이었다. 비바람이 치던 어느 날, 여자는 변함없이 담벼락 밑에서 서성이는 그의 애처로운 눈빛을 보고는 그를 집안으로 들인다.
"남을 불신하게 만드는 자기 안의 상처는 결국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이 준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상처 입었더라도 그 흉터를 안은 채 나아가야겠죠."
8편의 이야기에서 극적인 서사나 몰아치는 박진감은 찾아보기 어렵다. 주인공들은 고작 한 발자국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부단히 내면의 싸움을 거친다. 작가는 그런 주인공의 내면을 치밀하게 그려낸다.
“속도감 있고, 신나는 무용담이 전개되는 이야기를 쓰려고 하니 허망하고 허전하더군요. 성의 없어 보이기도 하고요. 저에겐 현상을 표현하는 것보다 현상의 이면 내지는 인간 행동의 동기가 늘 관심거리였습니다. 그걸 쓰는 게 소설이라고 생각합니다.”
심성미 기자 smsh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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