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BIZ School] 사회공헌 패러다임 변화… 새 협력모델 찾아야

입력 2017-09-21 16:21  

Let"s Master (4) 기업의 사회공헌 활동

사회문제 다양하고 복잡해져 기업 전문성 부족으로 성과 못내

정부·비영리조직과 결합 통해 기업가정신·경영 노하우 등 접목
탄탄한 파트너십 구축 필요



[ 최규술 기자 ] 오래전 미국 어느 작은 마을에 백인 어린이들만 다니는 학교가 있었다. 정부는 인디언 포용 정책에 따라 그동안 학교 교육을 받지 못하던 인디언 부족 어린이들을 입학시켰다고 한다. 몇 개월 뒤 시험시간이 됐다. “자, 다들 시험 볼 준비를 하세요.” 선생님이 이렇게 얘기하자 백인 학생들은 늘 하던 대로 서로 시험지를 볼 수 없도록 책상 위에 가방을 올려 놓았다. 그런데 인디언 학생들은 갑자기 교실 바닥에 둥그렇게 둘러앉기 시작했다. 선생님이 놀라서 물었다. “너희는 왜 시험 볼 준비를 안 하고 엉뚱한 짓 하고 있지?” 그러자 인디언 학생들은 천진난만한 얼굴로 이렇게 대답했다. “선생님, 저희는 어려운 문제가 있을 때 힘을 합쳐서 풀어야 한다고 배웠어요.”

우리 핏줄에도 협력의 DNA가 흐른다. ‘개미 천 마리면 바윗돌도 굴린다’ ‘열의 한술 밥이 한 그릇 푼푼하다’ ‘참새 백 마리면 호랑이 눈깔도 빼간다’ ‘힘과 마음을 합치면 하늘도 이긴다’ 등의 속담이 있다. 동제(洞祭), 동회(洞會), 계(契), 두레, 품앗이, 향약(鄕約) 등의 전통을 봐도 우리 민족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힘을 모으고 역할을 분담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향약 내용을 보면 연장과 농기구를 빌려주는 데 인색하지 않고, 나그네에게 식사와 잠자리를 제공하고, 이웃집에 불이 나면 함께 불을 끄고 복구작업을 했다. 이웃집 굴뚝에서 사흘 동안 연기가 나지 않았는데 이를 모르고 지냈다면 이는 향약 위반으로 벌을 받았다고 한다.

기업 사회공헌은 사회문제 해결에 기여하는 활동이다. 현대의 사회문제는 복잡하고 다양하다. 대부분 서로 긴밀히 연관되는 사회시스템의 부작용 때문이다. 문제의 원인이 복잡하게 얽혀 있으니 해결 방안도 난해하다. 게다가 정부는 예산 부족과 행정적 한계, 비영리조직은 자원의 부족, 기업은 사회문제에 대한 전문성 부족 등의 이유로 좋은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협력이 중요한 이유다.

기업 사회공헌은 사회문제 해결

최근 조사자료(2016 주요 기업·기업재단 사회공헌백서, 전경련)를 보면 기업이 선호하는 파트너십 대상은 비영리조직(59.2%), 정부·지방자치단체(25.6%), 기업(2.3%) 순이다. 파트너십을 필요로 하는 이유는 관련 분야 전문성(경험·네트워크) 활용이 69.2%, 대외 투명성 및 신뢰성 확보가 22.6%로 기업이 가지지 못한 역량을 파트너십을 통해 시너지를 내려는 노력임을 알 수 있다. 한국비영리학회 연구 결과에서도 기업은 비영리조직과의 파트너십을 통해 기업의 이미지와 신뢰도 향상, 사회공헌 효과성 제고, 임직원 결속 강화에 도움이 된다고 밝히고 있다.

파트너십 구축이 녹록한 건 아니다. 2016년도 조사자료를 보면 기업 사회공헌 중 파트너십을 통한 사업 규모가 13.6%에 불과하다. 전년도에 비해 2.4% 감소한 수치다. 반면 기업 자체 사업 비중은 48.2%로 전체 예산의 절반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파트너십을 통한 사회공헌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기업은 그 이유로 기업 특성에 맞는 사업 추진 어려움(39.2%)과 사회공헌 사업에 대한 기업-외부기관 간 시각차(39.2%), 전문성 있는 외부 기관에 대한 정보 부족(13.1%) 등을 들고 있다. 외부 기관과 협력하고 싶은데 기업 특성을 이해하고 함께 고민할 파트너 찾기가 쉽지 않다는 말이다.

어려움을 극복하고 파트너를 찾아 사업을 함께 진행하게 됐다 해도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추구하는 바나 일하는 방식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기업은 철저한 계획, 정량적 목표, 홍보 요소 등을 중시하는 반면 비영리조직은 진정성, 공감, 비전 등 정성적 요소를, 정부 기관은 명확한 절차와 결과, 성과보고회 같은 행사를 중요시하는 경향이 있다. 시장경제, 사회적 경제, 공공경제의 작동 원리와 특성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협력 과정에서 오해와 다툼이 생기기도 한다.

여러 사회 주체와 협력모델 찾아야

어떻게 해야 협력 사업을 성공시킬 수 있을까. 한국비영리학회 연구보고서 ‘기업과 비영리조직의 파트너십 구축’에서 제안한 7단계의 가이드라인을 축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파트너 선정 과정에서 파트너 당사자가 해결하고자 하는 사회문제가 무엇인지를 명확히 규정하고 △기업이 추가하는 미션과의 적합성과 상대가 건실한 파트너인지를 검증하고 △파트너가 선정되면 비전과 목표를 함께 설정하고 △사업 추진을 위한 조직과 거버넌스를 구축하고 △기업은 자사의 핵심역량을 활용해 차별성을 확보하고 △중간 지원기관을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공동이익의 원칙을 추구해야 한다.

기업 사회공헌은 정부와 비영리조직에 대한 지원자 역할에서 사회문제 해결 주체 중 하나로 발전하고 있다. 정부와 비영리조직이 추진해온 사회문제 해결 방식에 기업의 핵심 역량인 기업가정신, 경영 노하우, 재원, 시장원리 등을 접목해 새로운 사회문제 해결 모델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이는 탄탄한 협력이 기반이 돼야 가능한 일이다. 게다가 최근에는 정부, 비영리조직, 기업 간 파트너십에 일반 대중까지 참여하는 확장된 통합 운영모델이 나타나고 있다. 대중들은 크라우드 펀딩, 사업 기획 및 진행, 지지와 평가 등에 참여함으로써 파트너의 일원이 된다.

많은 예산을 약속하며 이벤트성 선행을 하던 시대는 갔다. 기업 스스로를 알리기 위한 사회공헌은 인정받지 못한다. 사회문제 해결에 얼마나 실질적으로 기여했느냐로 평가받는다. 이런 성과는 기업 혼자서 이룰 수 없다. 정부와 비영리조직, 대중까지 결합된 협력 모델이 기반이 돼야 한다. 파트너십 구축 역량이 없으면 사회적 성과도 낼 수 없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김도영 < CSR포럼 대표 dykim99@nate.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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