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초등생 살인사건…공범에 살인죄 인정된 이유

입력 2017-09-23 14:59  

8살 초등생 유괴·살해 사건의 공범인 10대 재수생은 사건 발생 당시 범행 현장에 없었는데도 재판 끝에 살인죄를 인정받았다.

재판부는 이 공범의 살인죄를 인정할 객관적 증거가 사실상 없는 상황에서 "'사람을 죽이라'는 지시를 (공범이) 했다"는 주범 진술이 합리적으로 믿을 만하다고 판단했다.

23일 인천지법에 따르면 전날 살인 및 사체유기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이 사건의 공범 B(18)양은 애초 살인방조 등의 혐의로 기소됐다.

주범인 고교 자퇴생 A(16)양과 사건 당일 통화를 하거나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아 살인 범행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이를 말리지 않고 내버려뒀다고 수사기관이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에 더해 사건 당일 서울의 한 지하철에서 피해자인 초등학교 2학년생 C(8)양의 훼손된 시신을 A양으로부터 건네받은 혐의가 드러나 사체유기죄도 적용됐다.

그러나 초기 경찰 조사에서 공범을 보호하던 A양은 검찰에서 받은 3번째 조사 때부터 태도가 바뀌기 시작했다. 수사 도중 B양의 진술내용을 전해 듣거나 진술 조서를 직접 확인한 뒤 배신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A양은 당시 검찰 조사에서 "B양에게 피해가 덜 가는 방향으로 해 주고 싶었지만, 그의 진술은 저에게만 다 미루고 있는 꼴이기에 지금은 피고인도 죗값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러나 이때까지도 그는 공범인 B양이 살인 범행을 지시했다고 주장하지 않았다. 다만 "사건이 벌어진 직후 대화를 나눌 때 '역할극'인 줄 알았다는 B양의 진술은 거짓이며, 사건 며칠 전 B양이 폐와 손가락을 달라고 하면서 소장하겠다고 했다"고 실토했다.

이 진술은 B양의 살인방조와 사체유기죄를 인정할 수 있는 증거는 됐지만, 살인 행위의 공범이 될 증거는 아니었다. 검찰도 살인이 아닌 살인방조죄 등을 적용해 B양을 재판에 넘겼다.

그러나 지난 6월 공범의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A양은 "B양이 사람을 죽이라고 했고 그런 지시를 받아들였다"는 발언으로 모두를 놀라게 했다. "살인 범행은 혼자 했고 공범은 시신만 건네받았다"는 취지의 기존 진술을 뒤집은 것이다.

A양의 돌발적인 발언에 담당 검사도 "공소사실과도 다르고 처음 듣는 내용"이라며 "거짓말이 아니냐"고 재차 확인했다. A양은 "아니다"라고 답했다.

검찰은 결정적인 A양의 진술을 근거로 기존 사체유기죄는 그대로 유지하고 살인방조 대신 살인죄로 B양의 죄명을 변경했다.

재판부는 처음에 A양이 공범에게 책임을 떠넘기기 위해 허위로 꾸며내 진술을 한 게 아닌지 의심했다.

그러나 이날 선고공판에서는 A양의 진술이 신빙성이 있다고 보고 B양이 살인의 공모공동정범임을 인정했다.

A양이 "우발적인 범행이었다"는 자신의 기존 주장과 배치될 수 있는 "살인 지시를 받았다"는 진술을 것은 유력한 심증을 갖게 하는 근거라고 재판부는 봤다.

재판부는 "검찰 측 공소사실에 부합하는 직접적인 증거는 A양의 진술이 거의 유일하다"고 전제했다.

이어 "A양의 진술이 수사기관에서부터 법정에 이르기까지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구체화했다"며 "A양과 B양 사이에 범행과 관련한 사전교감이 있었음을 충분히 의심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또 "A양은 우발 범죄라는 본인 진술의 대전제가 흔들릴 수 있는 대화 내용을 먼저 진술하기 시작했고 법정에 와서는 B양과의 구체적인 공모 사실도 진술했다"고 덧붙였다.

반면 B양의 진술과 관련해서는 "범행 당일 A양과의 통화내용 등 사건의 핵심을 구성하는 사실관계에 대해 일관성이 없거나 불분명하게 진술한다"고 했다.

재판부는 B양에 대해 "피해자와 유족들이 입은 고통과 상처를 고려할 때 피해자를 직접 살해한 A양과 피고인의 책임 경중을 가릴 수 없다"고 밝혔다.

또 "피고인이 비록 만 19세 미만의 소년이지만 범행 당시 성년을 불과 9개월 앞둔 상태였고 소년의 미성숙함으로 범행했다고 보기에는 범행 내용과 결과가 참혹하다"고 덧붙였다.

한경닷컴 뉴스룸 op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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