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테르는 이 책에서 사람들의 광신이 한 가장이자 무고한 시민을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을 비판하였다. 광신은 사람의 등 뒤에서 소리 없이 다가온다. 일단 한 번 광신에 물들면, 자신이 잘못된 것인 줄 모르게 된다. 자신과 같은 의견이 아닌 모든 사람이 틀렸다고 단정하게 되고 결국에는 불신자들을 죽여야 한다는 무시무시한 결론에 다다르게 되는 것이다.
영혼은 볼 수 없고 알 수도 없다. 길이를 잴 수 없고 무게를 달 수 없다. 인간은 이것을 볼 수 없지만 신에게는 눈앞에 있는 것처럼 뚜렷하게 보인다. 죽은 자가 신 앞에 무릎 꿇고 최후의 심판을 받을 때, 신은 그의 몸을 들어 천국과 지옥으로 나눌 것이다. 인간의 영혼을 심판할 영원하고 신성한 권리는 인간이 아니라 오직 신에게 있다. 영벌의 권리를 인간이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칼라스 사건과 같은 것이 일어났다.
가정의 규율은 문을 나서면 적용되지 않고, 과거의 법은 시간이 흐르면 달라진다. 시간에 따라 바뀌고, 장소에 따라 변하는 것이 보편된 진리일 수 있는가? 오직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과거와 현재에 모두 들어맞는 것만이 진리다. 그런 면에서, 관용은 진리라고 할 수 있다. 돌아온 탕아의 이야기나 로마의 법에서도 관용을 발견할 수 있다. 나는 관용을 실천하고도 멸망하고 무너진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하지만 관용은 다른 생각을 내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관용은 믿음을 유지하고 의심하는 자에게 반대하지만, 그를 폄하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채원준 생글기자(대화고 2년) karren72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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