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중국 정부의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보복으로 수많은 한국 기업이 공들여 일군 중국 사업에서 결실을 맺기도 전에 쫓겨날 처지에 몰리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지난 3월 사드 배치 이후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의 피해 규모가 올해 말까지 8조5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사드 보복’ 한국 기업 피해액 8조원 넘어
피해를 본 업종이 한두 곳이 아니다. 국방부에 사드 배치 장소를 제공한 롯데는 중국 정부의 ‘집중 표적’이 됐다. 롯데마트는 중국에 진출해 112개 매장을 운영했지만 사드 보복으로 87곳의 영업이 중단됐다. 연말까지 매출 손실액만 1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되자 최근 롯데는 중국 마트를 매각하기로 했다. 중국에 대규모 생산공장을 둔 현대·기아자동차도 현지 판매량이 절반 수준으로 급감했다. 또 중국 합작사인 베이징현대가 부품 납품단가 인하, 협력사 교체 등을 무리하게 요구하며 갈등을 빚고 있다. 전기차 배터리를 생산하는 삼성SDI, LG화학, SK이노베이션 등도 중국 정부의 보조금 지원 대상에서 제외돼 어려움을 겪고 있다.
쌍용자동차는 올 하반기 합작투자를 통해 현지 공장 착공에 들어갈 계획이었지만 합작법인 설립조차 못하고 있다. 중국 기업에서 1조원대 투자 유치를 추진하던 SK플래닛도 협상이 중단된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 정부는 최근 중국에 진출한 모든 한국 기업을 대상으로 강도 높은 ‘환경보호 감찰’에도 들어갔다. 통상적인 작업 과정에서 미미한 오염물질이 배출됐다는 이유로 영업정지, 사업장 폐쇄 등을 당한 한국 기업이 속출하고 있다.
WTO 제소할 수 있지만… 청와대 “안 한다”
통상전문가들은 “중국의 사드 보복이 단기간 내에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한국 기업의 대중국 투자도 반토막 났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 1~7월 중국 내 한국의 직접투자 규모는 전년 동기(31억1000만달러) 대비 43.7% 급감한 17억5000만달러로 집계됐다. 같은 기간 유럽연합(-1.2%) 일본(-3.7%) 미국(-37.5%) 등의 감소폭보다 훨씬 컸다. 한은은 “중국의 사드 보복 여파로 중국 내 반한 정서가 퍼지면서 국내 기업의 중국 투자심리가 얼어붙었다”고 분석했다.
국내 관광업계와 면세점업계를 먹여살리던 유커(중국인 관광객) 역시 뚝 끊겼다. 올 3~7월 한국 관광을 포기한 중국인 관광객은 333만 명, 이로 인한 관광 손실액은 65억1000만달러(약 7조6000억원)로 추산된다. 주요 면세점의 영업이익이 급감하거나 아예 적자로 돌아서면서 사업권 포기, 인력 감축 등에 나서는 업체가 늘고 있다. 한류 열풍에 고속 성장하던 화장품 업체들도 실적이 푹 꺾였다.
기업들의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데도 정작 우리 정부는 손을 놓고 있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정부가 피해 규모를 공식 집계한 통계조차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중국의 경제 보복에 대응하는 ‘정공법’은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등이 있지만 청와대는 제소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북핵 문제에 집중하기 위해 중국과의 공조를 강화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한국으로 유턴해도… 규제·인건비 부담
상황이 이렇다 보니 기업들 사이에선 “중국 관련 사업의 중장기 계획을 원점에서부터 다시 짜야 한다”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문제는 ‘홈그라운드’라 할 수 있는 한국에서도 사업이 녹록지 않다는 점이다. 중국에 대규모 투자한 기업들은 국내에서 성장동력을 찾기 어려운 때문인 경우가 많다.
유통업체는 대형마트, 백화점, 아울렛 등 주요 매장에 영업 제한이 강화돼 사업 확장이 어렵다. 자동차업계 역시 고비용 저효율 구조에 빠진 국내의 대안으로 해외 생산기지를 확장해왔다. 최저임금 인상, 경제민주화 입법 등으로 전반적인 기업 경영여건이 불투명해지는 것도 이들로선 큰 부담이다. 재계 관계자는 “중국 사업에서는 사드 보복에, 국내 사업에서는 각종 규제에 노출돼 기업들이 이중고를 겪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NIE 포인트
한국 경제의 중국 의존도를 각종 통계를 통해 알아보자. 중국의 사드 보복에 맞서 한국이 취할 수 있는 대응 방안과 우리 기업들이 나라 안팎에서 겪는 어려움을 토론해보자.
임현우 한국경제신문 기자 tardi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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