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w & Biz] "회생법원은 파산자 낙인 찍는 곳 아닌, 재기의 기회 주는 곳"

입력 2017-09-26 19:13   수정 2017-09-27 07:05

이경춘 서울회생법원장

회생법원 200일…성공적 안착
개인·중소기업 등 맞춤형 지원 강화
P플랜 활성화 중점적으로 추진
전문가 세미나로 판사 역량 키워



[ 이상엽 기자 ]
지난 3월 문을 연 서울회생법원이 출범 200일을 넘기면서 성공적으로 안착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서울회생법원은 서울중앙지방법원 파산부를 확대 개편해 국내 첫 회생·파산 전문법원으로 출발했다. 26일 서울 서초동 청사에서 만난 이경춘 서울회생법원장은 “서울중앙지법 파산부 시절에 구축해놓은 인프라를 바탕으로 한 차원 더 높은 기업회생과 파산 절차를 확립하고 개인채무자가 국민경제의 건전한 일원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돕겠다”고 강조했다.

이 원장은 회생법원을 공적 구제기관이라고 정의했다. 파산자로 낙인찍고 법인을 해체하는 처벌기관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도산은 경기 불황기는 물론 호황기에도 생긴다”며 “회생법원은 아픈 사람이 병원에서 질병의 원인과 치료법을 찾는 것과 비슷하다고 이해하면 쉽다”고 말했다.

그는 경제 주체별로 파산에 대한 접근법이 달라야 한다고 했다. 회사의 경우 파산과 함께 법인격이 사라지면 남아 있는 자원을 재편해 사회에 어떻게 기여할지 고민하는 절차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 원장은 “개인은 법인과 달리 파산 후에도 인격이 남는다”며 “사회적으로 매장할 것이 아니라 이들을 구제해 사회적 비용을 줄이고 선순환을 유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다만 명확하고 합리적인 기준을 적용해 사기성이 있는 파산은 걸러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원장은 중소기업 회생에 주목하고 있다. 대기업과 달리 중소기업은 도산 절차에 대한 이해도가 낮고, 채권자들이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는 경향이 있어서다. 회생 과정에 대한 정보도 취약해 재정 지원이 열악할 뿐 아니라 경영자 개인의 도산 절차도 함께 해결해야 하는 등 그 절차가 복잡하다. 이런 애로점을 해결하기 위해 서울회생법원은 부채 30억원 이하의 기업을 위한 간이회생절차를 시행하고 있다. 이 원장은 “중소기업에 특화된 프로그램을 실무진이 연구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 원장은 개원 직후부터 소속 판사들의 전문성 제고를 강조하고 있다. 각 분야 전문가를 초청해 점심식사를 함께하며 토론하는 ‘워킹런치’와 합동세미나 등을 수시로 여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 원장은 “유능한 판사는 법리적 판단만 잘해선 안 되고 법률서비스 수요자인 국민이 원하는 방향을 제대로 읽는 능력까지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P플랜(프리패키지플랜)으로 불리는 사전회생계획제도 활성화도 서울회생법원이 중점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프로젝트다. P플랜은 기업이 채권자와 협의해 사전계획안을 마련해 회생 절차에 들어오는 제도다. 채무자와 채권자가 미리 의견을 나누기 때문에 회생 성공 가능성이 높다. 회생 절차 개시 뒤 계획안을 세우는 것보다 신속하게 진행된다는 장점이 있다. 서울회생법원이 지난 14~15일 개원 기념 국제 콘퍼런스를 열고 P플랜을 자세히 소개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콘퍼런스에서는 기업회생과 관련해 이사회가 경영권 유지 등을 내세우며 회생신청 시기를 놓칠 경우 이에 대한 법적 책임을 묻는 미국의 사례 등도 소개됐다.

이 원장은 서울회생법원 출범 후 아직 P플랜 첫 사례가 나오지 않았지만 조만간 신청이 들어올 것으로 기대했다. 그는 “P플랜 신청이 접수되면 서울회생법원의 역량을 결집해 최선의 결과를 도출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 회생제도

법원이 채무를 재조정해 파산을 구제하는 일종의 법정관리 제도. 재정적 어려움으로 파탄에 직면해 있는 채무자에 대해 채권자, 주주 등 이해관계인의 법률관계를 조정함으로써 채무자의 효율적인 회생과 채권자의 이익을 도모하는 제도다.

이상엽 기자 ls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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