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시에 사는 K씨는 2015년, 630여 차례나 병·의원을 오가며 6000일치 약을 처방받았다. 서귀포시에 거주하는 P씨는 지난해 13개 의료기관에서 574회 진료를 받고 1863일치 약을 탔다. 제주특별자치도가 올 초 밝힌 ‘의료쇼핑’ 사례들이다. 의료쇼핑은 상점에서 상품을 고르듯, 환자들이 여러 병원을 돌아다니며 진료를 받거나 의약품을 처방받는 것을 말한다.
한국인의 ‘병원 찾기’는 유별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최근 내놓은 ‘건강 통계 2017’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람 1명당 외래진료 횟수는 16회로, 2012년부터 6년 연속 1위에 올랐다. 2위인 일본(12.7회)과 3위 헝가리(11.8회)와도 격차가 컸다. OECD 국가 평균(7회)의 2배를 넘었다. 스웨덴(2.9회)과 미국(3.4회), 노르웨이(4.3회) 국민이 병원에 한 번 갈 동안 한국인들은 3~5차례 병원 문턱을 넘은 셈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환자들의 과잉진료를 2015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확산 원인의 하나로 지목하기도 했다. 그해 5월, 평택성모병원에서 시작된 메르스는 불과 1~2개월 만에 전국 84개 병원으로 번졌다. 186명을 감염시켰고, 39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100명 이상 감염시킨 ‘슈퍼 감염자’들이 병원을 여기저기 옮겨 다닌 탓이었다.
의료쇼핑이 되풀이되는 근본 원인은 건강보험 진료비가 낮아서다. 종합병원과 동네병원 등 병원 규모에 따른 진료비 차이가 크지 않아 환자들이 대학병원부터 찾는 것도 우리나라만의 현상이다. 집중 진료와 난도 높은 수술이 필요한 암 심장병 등 중증(重症)환자들은 제때 치료받지 못하는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
낮은 진료 수가(酬價)는 ‘박리다매 진료’를 일삼는 일부 병·의원의 행태와 합쳐져 불필요한 진료로 이어지고 있다는 주장도 있다. 의료계 일선에선 병원에 꼭 다시 오지 않아도 되는 환자를 2~3차례 더 부르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약국 외 의약품 판매를 엄격하게 규제하는 ‘약사법’도 과잉 진료를 부추기는 원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편의점 등에서 살 수 있는 감기약 등 일반의약품(OTC)이 제한돼 있어 환자들이 어쩔 수 없이 처방을 받으러 병원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미국 등 선진국처럼 소비자들이 마트에서 다양한 일반의약품을 구입할 수 있다면 과잉진료가 상당부분 줄어들 것이란 얘기다.
내년부터 ‘문재인 케어(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대책)’가 시행되면 환자들의 자기부담이 더욱 줄어 진료여건이 우수한 대학병원 쏠림 현상이 심화될 것이란 우려가 적지 않다. 불필요한 진료를 줄여 의료서비스가 필요한 사람들이 제때 혜택을 받을 수 있게 하는 ‘묘안’이 필요한 시점이다.
김태철 논설위원 synergy@hankyung.com
관련뉴스